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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냉각레이저ㆍ생체컴퓨터 등 새 분야 개척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냉각레이저ㆍ생체컴퓨터 등 새 분야 개척
  • 임동욱 사이언스타임즈 기자
  • 승인 2012.02.13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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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과학계_ 기초과학에 부는 ‘융합’ 바람

덴마크 닐스 보어 연구소 전경. 기초과학 분야 융합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융합’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의 담장을 허물어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자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인기를 끈다. 철학과 경제학이 결합하고 심리학과 생물학이 손을 잡는다. 창의적인 시각을 통해 최선의 결과물을 얻어내려는 노력이다.

기업과 대학들도 융합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중이다. 작고한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신개념 전자기기를 내놓으며 “우리는 기술(Technology)과 인문학(Liberal Arts)의 교차점에 서 있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국내에서는 의사 출신이자 컴퓨터백신 개발자인 안철수 전 CEO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에 부임했고, 연세대·고려대 등은 삼성전자와 협력해 올해 ‘IT융합학과’를 설립할 계획이다.

융합의 바람은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계속된다. 응용과학뿐만 아니라 물리학, 생물학 등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융합연구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덴마크 닐스보어 연구소(NBI, Niels Bohr Institute)가 개발한 ‘냉각 레이저’가 한 예다.

물리학과 나노과학 융합해 ‘냉각 레이저’ 개발

1960년 미국 과학자 시어도어 메이먼(Theodore Maiman, 1927~2007)이 최초로 만들어낸 레이저(Laser)는 루비, 아르곤 등 특정 재료에 일정한 파장의 빛을 충돌시켰을 때 생기는 강력한 복사선이다. 사방으로 퍼지는 보통의 빛과는 달리 진행방향이 일정해서 한 곳으로 에너지의 초점을 모으면 물체의 표면온도가 급상승한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제다이들은 광선검을 휘둘러 금속 로봇을 동강내고, 등장하는 우주선들은 총알이 아닌 레이저 광선을 발사해 적기를 폭파시킨다. 레이저의 에너지 집중현상에서 영감을 얻은 아이디어다. 실제로 미국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연구소(SLAC)는 기존 엑스선보다 10억배나 밝은 레이저를 개발해 알루미늄 포일의 온도를 섭씨 200만도까지 올리기도 했다. 태양이나 거대행성의 내부에나 존재할 만큼 뜨거운 온도다.

그런데 닐스보어 연구소가 최근 개발한 레이저는 물체의 온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낮춘다. 학술지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에 최근 게재된 ‘반도체의 기계적 움직임을 이용한 광공동 냉각법(Optical cavity cooling of mechanical modes of a semiconductor)’ 논문에는 섭씨 영하 269까지 낮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연구소 내 양자광학 연구센터(QUANTOP)의 물리학자와 나노과학자들이 융합연구를 진행하며 힘을 합친 결과다.

과정은 이러하다. 우선 나노과학자들이 반도체 소재를 이용해 가로세로 각 1밀리미터 크기에 두께가 160나노미터에 불과한 초소형 초박형의 막을 제작한다. 참고로 1나노미터는 1백만분의 1밀리미터다. 여기에 레이저를 쬐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반도체 물질의 원자 구조가 변한다.

물리학의 ‘도플러 효과’에 의하면 움직이는 물체는 파장의 간격을 변화시킨다. 정밀한 거울장치를 이용해 레이저의 주파수를 조절하면 빛 입자들이 충돌하면서 원자가 움직이는 속도를 빠르게 또는 느리게 변화시킬 수 있다. 원자의 속도가 빨라지면 물질의 온도가 상승하며 반대로 느려지면 냉각이 되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원자 차원의 기계적인 움직임을 연구해 메커니즘을 밝히고 레이저와 물질 사이의 공명현상을 유도한다. 레이저에 의해 온도가 높아진 물질이 다시 레이저 광선에 영향을 주는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 막의 온도는 영하 269도까지 떨어진다.

덴마크 닐스 보어 연구소가 개발한 '냉각 레이저'
냉각 레이저의 최초 아이디어는 1975년에 등장했지만 나노 차원에서 반도체의 온도를 이만큼 낮춘 것은 처음이다. 물리학자와 나노과학자가 손을 잡은 덕분에 반도체막을 초소형으로 제작해서 양자 차원의 광학적 공명현상을 규명하는 복잡한 과정을 완성할 수 있었다.

생물학, 화학, 컴퓨터공학 융합으로 탄생한 ‘생체컴퓨터’

한편 생물학과 화학 분야에서는 컴퓨터공학과의 융합을 통해 ‘생체컴퓨터’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세계적 학술지 <앙게반테 케미(Angewandte Chemie)>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된 ‘DNA 컴퓨팅을 이용한 분자 차원의 이미지 해독시스템 개발(A Molecular Cryptosystem for Images by DNA Computing)’ 논문이다.

일반적으로 ‘컴퓨터’라 하면 금속, 플라스틱, 반도체 등으로 만들어진 전자장치를 가리킨다. 그러나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TSRI, The Scripps Research Institute)와 이스라엘 공과대학의 테크니온(Technion) 연구소가 합작으로 만든 컴퓨터는 생체분자를 이용해 제작되었다. 컴퓨터가 작동하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필요한데, 생체컴퓨터의 하드웨어는 4가지의 생체분자로 구성되고 소프트웨어 역할은 각 분자가 지닌 고유한 결합특성이 맡는다.

생체컴퓨터 제작방법은 일반 컴퓨터와 전혀 다르다. 납땜이나 용접 작업도 없다. 생체조직을 화학용액에 넣고 섞으면 4가지의 DNA 분자들이 특정 효소들과 결합하며 일종의 계산과정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일반 컴퓨터의 에너지원은 전기지만 생체컴퓨터는 세포의 에너지원인 아데노신3인산(ATP)을 사용한다.
현재의 컴퓨터는 천재수학자 앨런 튜링(Allan Turing, 1912~1954)이 만든 기계장치에서 출발했다. ‘튜링머신’이라고 불리는 이 장치는 네모칸이 그려진 종이테이프를 입력하면 계산과정을 거쳐 답을 출력한다. 각 칸에는 알파벳 한 글자가 기록되어 있으며 장치의 헤드가 칸마다 멈춰 글자를 읽거나 다른 글자로 고쳐 쓰는 식으로 작동한다.

장치에 입력하는 종이테이프는 DNA와 구조가 비슷하다. 칸마다 한 글자씩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A, C, G, T의 4가지 염기가 반복적으로 연결된다. 튜링머신의 헤드가 칸마다 멈춰서며 계산 작업을 수행하듯 생체컴퓨터는 각 염기에 반응하며 결과값을 산출한다.

연구진은 스크립스 연구소와 테크니온 연구소의 서로 다른 로고 모양에 따라 DNA 생체분자를 배치하고 하나로 섞었다. 특정 생체분자를 감지하는 효소가 담긴 통에 이 시료를 넣자 결합이 시작되었다. 결과물에는 두 개의 개별적인 로고가 명확하게 구별되어 나타났다. 암호화시킨 생체분자를 특정 효소들이 해독해서 그대로 재현해낸 셈이다.

이번에는 단순한 이미지를 해독했지만 차후에는 복잡한 계산까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전기를 소모하는 일반 컴퓨터와 달리 생체컴퓨터는 별다른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다. 하나의 계산은 반도체 CPU보다 느릴지 모르지만, 효소 용액 안에 수십 수백만 개의 생체분자를 한꺼번에 집어넣어도 하나하나 계산하지 않고 동시에 반응이 시작된다. 계산해야 할 양이 많을수록 속도와 효율이 빛을 발하는 셈이다. 또한 결과값도 DNA 분자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정전이 된다고 해서 정보가 사라지는 일도 없다.

아직은 연구수준이 초기 단계에 불과하지만 서로 다른 분야가 융합해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어느 시인이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노래했듯 언젠가는 융합연구를 통해 인류의 생활을 바꿔놓을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될 지도 모른다.

임동욱 사이언스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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