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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지원자의 ‘임용기대권’ 인정했다
교수 지원자의 ‘임용기대권’ 인정했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02.13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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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제주대, 교수임용에 재량권 남용”

“대학교수의 임용 여부는 임용권자가 교육기본법상 합목적적으로 판단할 자유재량에 속하는 것이나 ‘임용거부’가 사회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재량권을 남용 또는 일탈했다고 볼 수 있다.”(제주대에 대한 ‘전임교원 신규임용처분무효확인’ 1심 재판부)

지난달 12일 대법원은 2009년 제주대 인문대학 전임교원 임용에 대해 “심사위원의 구성, 심사과정, 평정 결과 모두 위법하다”는 원심을 받아들였다. 3년이 흘렀고 당시 임용자는 지난해 조교수로 승진했지만, 이번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제주대는 임용절차를 다시 밟게 됐다.

대법원 제1부(주심 안대희)는 지난달 12일, 배○○ 씨(50세)가 제주대 총장을 상대로 낸 ‘전임교원신규임용처분무효확인’ 소송에서 제주대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사건 기록과 원심 판결 및 상고 이유를 모두 살펴봤으나 이유가 없다고 인정되므로 상고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배 씨의 공개발표심사 탈락처분이 잘못됐다고 판시하면서 당시 최종 선발된 정○○ 교수(42세)의 임용도 무효라고 선고한 것이다. 재판부는 1심(2010년 10월)과 항소심(2011년 8월)에서도 배 씨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중국어 공개강의’ 심사위원 중 중국어 가능자 1명

배 씨는 지난 2009학년도 1학기 인문대학 동양문화사 분야 신임교수 임용에 응시했다. 전임강사직 한 자리를 놓고 공개발표심사에 배 씨를 포함해 3명이 올랐다. 최종면접 대상자로 이들 3명 중 정 교수만 선발됐다. 이에 반발한 배 씨는 제주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전임교수임용 2차과정인 ‘전공심사’에서 심사위원 1명만이 자신의 외국대학 교육경력을 심사했고, 다른 심사위원들은 이 심사위원이 불러주는 성적을 그대로 기재했다. 또 3차 공개발표심사 ‘중국어 원어강의’에서 심사위원 5명 가운데 중국어 구사능력이 있는 심사위원은 중문과 교수 1명에 불과했다. 한 심사위원은 배 씨의 공개발표심사 5개 항목 모두 1점(4점 만점)을 부여하기도 했다. ‘외국어 강의능력 평균점수 3점 미만자는 최종면접에 응시할 수 없다’는 평가지침에 따라 2.40점을 받은 배 씨와 박○○ 씨는 탈락했다.

재판부는 “서류심사에서 심사위원 1명의 평가가 나머지 심사위원에게 그대로 반영됐다는 점은 재량권 일탈로 보기 어렵다”면서도 “경력증명서 추가제출분에 대한 심사는 심사위원들의 합의를 거쳤어야 했다”는 원심을 받아들였다. 재량권 일탈·남용이다.

이밖에도 △해당학과와 합의 없이 강의능력 평가기준을 신설한 점 △평가기준과 관련없는 이유를 들어 평가항목을 임의로 평가한 점(모든 문항에 1점 부여) △공개발표 이후 다른 심사위원에게 발표해 평정결과에 영향을 미친 점 등에서 모두 재량권 일탈·남용이라고 판시했다.

특히 공개발표심사는 ‘재량권 범위’를 두고 다툼이 치열했다. 우선 심사위원들의 자질문제다. 제주대 측은 “중국어 구사능력이 없는 심사위원이라도 배포된 자료가 있고, 한문해독이 가능하기 때문에 중국어 공개강의에 대한 심사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한문독해능력과 중국어구사능력이 명백히 다르다는 것은 굳이 부연할 필요조차 없다”며 선을 그었다.

‘4점 만점에 3점 미만자 부적격’ 기준 “재량권 일탈”

또한 제주대는 변경한 공개발표심사 기준을 신규공채심사위원장이던 김○○ 교수로부터만 ‘좋다’는 이메일 답신을 받고 곧바로 지침을 확정·공포했다. 논란이 된 ‘4점 만점에 3점 미만자 부적격’ 판정이다. 재판부는 “심사위원 1인이 자의적인 평점을 할 경우 지원자가 부적격 판정을 받게 되고, 중국어해독능력이 아닌 중국어강의능력이 다른 기준에 비해 그렇게 중요하게 취급돼야할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며 역시 재량권 일탈의 여지가 많다고 봤다.

결국 재판부는 “심사위원의 구성, 심사과정, 평정 결과 모두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해당 교수임용 자체가 효력을 잃게 됐다. 소송이 오가는 사이 당시 임용된 정 교수가 지난해 10월 조교수로 승진했다.

제주대는 후속대책을 두고 법률자문을 구하는 한편 교육과학기술부에 질의서를 제출해 놓은 상황이다. 교과부의 입장이 정리 되는대로 후속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제주대 교원인사담당자는 “배 씨를 심사단계에서 탈락시켰다. 임용단계까지 가지 않았는데 ‘임용처분무효’라는 확정판결이 났다. 만일 임용심사를 다시 해야 한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어느 단계부터 해야할지 난감한 상황”이라며, 일단 교과부의 의견을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교과부 관계자도 “다각도로 법률자문을 구하고 있다. 결정이 나는 대로 제주대에 답변서를 넘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임재홍 한국방통대 교수(행정법)는 “전임교원 임용에서 공정한 절차와 기준을 강조하고, 공정한 절차를 통한 지원자의 임용기대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판결”라며 “제주대는 공정한 절차를 통해 이들 교수들을 재심사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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