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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양성을 위한 대학, 기업, 정부의 역할
인재양성을 위한 대학, 기업, 정부의 역할
  • 교수신문
  • 승인 2002.07.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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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12 09:28:02
박준우
이화여대 자연과학부
전 과학재단기초연구단장

국내 유수 대기업들의 해외 인재 유치 노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21세기 지식기반사회 대비 고등인력 양성 체제의 구축’이란 기치를 내걸고 3년 전 출범한 BK(두뇌한국)21 사업에 따른 인력 배출이 본격화되고, 국내 연구진의 국제학술지 논문 발표가 획기적으로 증가한 즈음에 다시 부각돼 이들이 고급인력 양성과 무관하다는 느낌을 들게 해 안타까운 심정이다.
기업의 이윤은 투입된 자본을 바탕으로 채용된 인력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이다. 따라서 대기업들의 해외인재 선호 경향은 국내 배출 인력의 부가가치의 창출 능력을 보다 낮게 평가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점에서 필자를 포함해 국내 인력 양성에 종사하는 대학인들이 일차적인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국내 배출 인력의 낮은 경쟁력을 언급할 때, 많은 이공계 교수들은 열악한 실험기자재와 적은 연구비를 탓하나,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대학에서 연구(과장하면 논문 발표)를 지나치게 강조해 교육기능을 약화시킨 결과로 생각된다. 대학 교수의 임무로 교육, 학술연구, 사회봉사를 들고 있지만, 이중 타 집단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이다. 학술연구도 교육과 연계되지 않으면 대학에서 수행해야할 당위성을 찾기 어렵다. 팽배한 연구 지상주의의 풍조에서 학생은 교육과 훈련의 대상이 아닌 연구노동자로 전락했고, 이러한 환경에서 폭넓은 지식을 갖춘 창의적이고 유능한 인력이 배출되기는 어렵다.
정부도 일단의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정부는 대학을 ‘국가 과학기술 개발의 산실’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매료돼 대학을 미래 사회를 이끌 인력 양성기관이기보다는 연구기관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는 대학에 대한 많은 연구 지원 사업에서 대응비와 시설공간 제공, 그리고 교수의 수업 경감을 요구하나, 간접비 지원은 미미하고 교수 인건비 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다. 이는 실질적 운영비의 대부분을 학생 등록금에 의존하는 대학(특히 사립대학)들로 하여금 학생 교육에 투입해야 할 재원과 교수 시간을 ‘국가과학기술개발’에 전용하도록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속된 교수 충원과 투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립대학의 강사 의존률이 50%에 육박하고 교육 공간과 시설 개선이 미약한 것이 이를 반영한다. 또한 거의 획일화된 연구 계획 및 결과 평가제도, 실패를 용인하지 않고 단기간에 논문 발표만을 강조하는 듯한 연구 지원, 기초적 학술 연구를 폄하하고 기술개발과 응용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등도 전문성, 창조성, 도전성을 갖도록 학생들을 교육·훈련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기업도 수요자로서 대학에 원하는 수준의 인력 양성을 위한 조언, 요구, 그리고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대학 졸업자를 채용할 때의 ‘전공불문’과 ‘잠재적 능력과 다양한 경험 중시’의 강조, 채용 후의 사내 교육비용의 과대 포장 등은 대학 교육의 정상화에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이 원하는 능력과 수준의 인재 양성을 대학이 해주기를 원한다면, 기업은 적극적으로 대학의 현실을 파악하고 이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학회 등을 통한 대학교육 과정의 개선 추진, 원하는 분야 육성을 위한 교육 여건의 개선, 강좌(chair)개설, 장학금과 포상 지원 등이 구체적 방법의 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대학지원과 산학협동의 미명하에 기업이 학술적 가치가 빈약한 국산화와 모방 성격의 연구를 대학에 위탁하는 것은 기업이 원하는 창의적이고 독자적 연구 역량을 갖춘 최고급 인력 양성을 주도해야 할 대학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며, 충분한 간접비와 인건비를 지원하지 않으면 이 또한 대학의 교육기능의 약화를 초래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대기업 해외인재 유치는 국내 배출 인력에 대한 업무 능력의 기대치가 낮은 것에 기인하며, 이는 대학의 교육 기능의 취약성에서 비롯된다. 고급 인력 양성의 주체인 대학, 이들 인력을 바탕으로 국가 발전을 추진해야 할 정부, 그리고 양성된 인력의 최대 수요처인 기업은 대학이 학생 교육과 훈련을 통해 양질의 인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제반 제도와 지원 방향을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대학의 인력을 활용한 ‘국가과학기술개발’과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응용기술 개발도 대학의 교육 기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히딩크’에 의한 한국축구의 신화 창조는 기초체력의 강화에서 출발하였음을 他山之石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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