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7:55 (목)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55 세균의 짝짓기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55 세균의 짝짓기
  •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2.01.02 11: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놈들이 무슨 이런 요망한 짓을 한단 말인가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굳이 말한다면 이 세상은 속절없이 눈에도 안 보이는 세균들 차지다. 細菌은 ‘작은 병균’이란 뜻인데 그것의 원래 말은 박테리아(bacteria)다. 이는 복수형이고 단수는 박테리움(bacterium)으로 ‘한 개의 생물(singleorganism)’이란 뜻이란다. 세균은 여러 종류가 있고 크기ㆍ됨됨이도 몹시 다양하지만 개략적인 특징을 보면, 1)세포 하나로 된 單細胞이고, 2)크기가 워낙 작고(보통 0.5~10μm, 1㎛는 1/1000의 mm) 핵막이 없어 핵물질(DNA)이 세포질에 퍼져있는 原核세포이며, 3)많은 세균들이‘말총 꼴’의 현미경적 털인鞭毛(flagellum)를 가져서 이것으로 움직인다(세포 전체를 꿈틀거려 움직이는 것, 전연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있음).

세균은 생김새에 따라 둥근모양의 구균(coccus), 막대 모양의 간균(bacillus)으로 나뉘고, 산소를 좋아하는 호기성 세균(aerobic bacteria)이랑 그것을 싫어하는 혐기성 세균(anaerobic bacteria)으로 대별한다. 대부분 사람 체온 근방에서 잘 자라지만(수가 늚) 종류에 따라서는 0°C의 저온이나 무려 50~90°C의 고온에서도 끄떡없이 사는 것도 있다. 여간내기 微物이 아니다.

믿기 어렵지만 유성생식까지 하는 세균

그런데 세균 번식은 대부분 세포가 반으로 갈라지는 二分法(binary fission)인 무성생식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개체의 유전물질인 핵산(DNA)을 주고받는 유성생식에 가까운 생식을 하기도 한다. 말해서 정상적인 동물의 교잡이나 식물의 꽃가루받이(受粉) 같은 고급스런 생식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서로 DNA를 교환하는 것은 믿기 어려운 세균 세계의 특이한 점으로, 몇 십억 년 전부터 이날 이때까지 해온 일로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쉽게 말해서 세균도 일종의 짝짓기를 하니, 첫째가 形質導入(transduction)이다. 바이러스는 단백질과 핵산만으로 구성된지라 ‘세포’라 이르지 않고 그저 ‘粒子(particle)’라하고, 세균 안에 들면 번식을 하기에 생물이라 하지만 세포 밖에 있으면 단순한 물질(무생물)이다.

그런데 바이러스들 중에서 유독 세균 안에서만 번식(자기복제)을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로 이것들은 세균의 세포질을 써 번식하면서 한 세균의 DNA를 갖고 나와서 다른 세균에 들어가면서 앞 세균의 DNA를 전달하니 이것이 형질도입이다. 이렇게 박테리오파지에 의해서 냉큼 한 세균에서 다른 세균으로 DNA가 곧장 전달되고 따라서 형질이 달라지기 십상이다. 섞어야 새것이 난다.

둘째로 形質轉換(transformation)이다. 무슨 셈인지는 몰라도 세균들이 허물어져 죽는 시각은 새벽 무렵이라 한다. 암튼 죽은 세균에서 DNA가 흘러나오면 이때 그 옆에 있던 산 세균들이 부리나케 ‘시체 물질’을 써서 새로운 DNA를 합성하니 이것이 형질전환이다. 일례로 사람에 抗生劑를 꾸준히 쓰게 되면 세균 중에는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그 항생제에 대한 저항성(내성)을 갖는 놈이 생겨나고, 또 이 내성균이 죽으면 성한 세균이 내성유전자(DNA)를 받아들여 발칙한 내성균은 무서운 기세로 줄줄이 자꾸만 늘어간다. 그러므로 항생제를 쓸 때는 끝까지 마저 투약해 가차 없이 내성균의 씨를 말려버려야 하는 까닭을 알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세균의 생존 작전

세 번째로 세균도 유성생식의 하나인 接合(conjugation)을 한다. 세균은 보통 둥그스름하고 커다란 1개의 염색체(2~3개짜리도 있음)와 항생제나 독, 중금속 등의 악조건에도 저항성을 갖는 둥근 고리 모양(길쭉한 것도 있음)을 하는 DNA로 된 플라스미드(plasmid)라는 것을 함께 갖고 있다. 헌데, 두 마리 세균이 넌지시 서로 만나 한 놈이 삐죽 나온 작은 실 돌기(pilus)로 슬며시 상대를 잡아당겨 재빨리 세포막에 꽂아 구멍을 내고는 단숨에 염색체와 플라스미드를 고스란히 대상세균에 삽입한다. 무슨 이런 요망한 짓을 요놈들이 한단 말인가.

그러면 우리가 흔히 쓰는 항생제는 어떻게 세균을 죽일까. 항생제는 세균의 리보솜(ribosome)에 달라붙어서 단백질 합성을 못하게 하거나(테트라사이클린 계열) 세포막의 형성을 억제해(페니실린, 뱅코마이신) 세균의 번식이나 성장을 억제한다.

그런데 맹랑한 세균 또한 만만치 않아서 항생제에 마냥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스스럼없이 홀연히 돌연변이를 일으켜 좀처럼 죽지 않는 이른바 耐性菌(resistant bacteria)이 돼 버린다. 내성균은 새로운 효소를 만들어서 항생제를 분해해 무력화시키거나 변질시켜버리고, 또 항생제가 세균에 달라붙을 자리를 바꿔버리며, 더해 숫제 항생물질을 송두리째 밀어내버리기도 해 지지 않고 끄떡없이 살아남는다. 세균의 생존 작전 또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아무튼 세균도 형질도입, 형질전화, 접합을 하면서 마땅히 변한다는 얘기다. 제행무상이라 하더니만, 그들도 한자리에 머물지 않는군! 해서, 세균들도 고정 불변치 않고 변함을 터득해 연신 바뀐다는데…. 너나 할 것 없이 변하지 않으면 밀리고 만다. 변함은 기회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