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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이도종과 수기치인
엄이도종과 수기치인
  • 정진농 부산대 명예교수·영문학
  • 승인 2012.01.0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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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정진농 부산대 명예교수

 

정진농 부산대 명예교수·영문학
<교수신문>이 해마다 연말이면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가 ‘掩耳盜鐘’이라 한다. 엄이도종이란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으로, 나쁜 짓을 하면서도 남의 비난이 듣기 싫어 자신의 귀를 틀어막는 어리석은 행위에 대한 비유다. 그동안 우리 정부와 정치권에서 저질러진 각종 의혹과 무리수로 인해 민심이 들끓어도 정작 그 당사자들은 귀를 틀어막고 소통 부재로 일관하는 태도를 꼬집은 말로 여겨진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그러한 태도는 비단 올해 이 정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나라 역대 정권 치고 그렇지 않았던 때가 언제 있었던가 싶다.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역대 정권 치고 의혹과 비리 없이 일관하며, 진정으로 민심에 귀 기울이고, 깨끗하고 올바른 정치를 펼쳤던 때가 언제 있었던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 와서는 민심을 외면하고 민심을 등진 정권은 민의의 표출로 나타나는 선거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여도 야도 내년에 다가올 선거의 심판이 두려워서 야단들이다. 여는 ‘쇄신’을 한답시고 야단이고, 야는 ‘통합’을 한답시고 법석이다. 그런데 그런 야단법석이 먼 변방에서 바라보는 이 촌로의 눈에는 그 어느 쪽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든 다시 한 번 민심을 현혹시켜 정권을 움켜잡을 수 있는 묘책을 찾는 데 골몰하고 급급한 모습들로 밖에 보이지 않아 씁쓸하다.

정치권은 그렇다 치고, 그러면 엄이도종의 사자성어로써 정치권을 비판한 교수들이 몸담고 있는 대학과 교수사회는 어떠한가. 대학과 교수사회는 정치권과는 다른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던가. 대학에서 치러진 총ㆍ학장의 선거는 정치권의 선거와는 전혀 다른 깨끗한 모습이었던가. 대학에서 선거로 선출된 총ㆍ학장들은 대학 구성원들의 기대와 의사에 제대로 부응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가. 대학과 교수사회는 각종 비리와 의혹에서 벗어나 온전히 본분에 충실했던가. 내년의 양대 선거를 맞아 대학 교수들 중에서 또 자신의 본분은 팽개치고 정치권과 선거판을 기웃거릴 인사들은 과연 없을 것인가.

이제 이 해도 정말 며칠 남지 않은 것 같다. 하루하루, 일각일각 시간의 강물이 흘러 마침내 또 한 해가 저무는 歲暮에 다다랐다. 이럴 때는 지금까지 정신없이 달려오던 삶의 질주를 잠시 멈추고, 지금까지 바깥으로만 지향하던 삶의 촉수를 안으로 거둬들여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고 성찰할 때다.

그동안 내 자신이 살아온 삶은 과연 어떠했던가. 남을 탓하고, 세상을 한탄하기에 앞서 내 자신은 과연 세상의 소금이 되고, 세상 사람들의 등불이 될 수 있도록 살아왔던가. 오히려 세상의 혼탁한 바람에 휩쓸려 그 속에서 자기 이기심을 채우기에 급급하지는 않았던가.

밝아오는 새해의 화두로서 또 하나의 사자성어를 제시할까 한다. ‘修己治人’이다. 먼저 자기를 닦고, 나아가 남을 다스리고 세상을 다스리라는 뜻이다. 대학 사회도 포함해 우리 사회 전체의 병폐는 먼저 자기 스스로를 제대로 닦지 않은 사람들이 나서서 남을 다스리고 세상을 다스리려는 기세가 지나치게 치열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모습, 그런 기세들이 조용하고 경건해야 할 세모를 어지럽게 뒤흔들고 있는데, 이 점에 있어서 대학사회 만이라도 예외가 돼 줬으면 하는 심정이다. 이제는 우리 대학들이 진정한 수기치인의 도장이 되고, 그 도장에서 교수들이 진정한 수기치인의 師範이 돼 줬으면 한다.

정진농 부산대 명예교수ㆍ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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