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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교수사회 일그러진 知性 쐈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교수사회 일그러진 知性 쐈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2.01.02 10:5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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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석궁사건’ 다룬 법정 실화극 「부러진 화살」 정지영 감독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수학과)와 ‘석궁사건’은 1월과 묘한 인연이 있다. 조교수로 성균관대 수학과에 부임한 김 교수가 대학별고사 수학 문제의 출제 오류를 지적한 때가 1995년 1월, 희대의 사건으로 기억될 만한 이른바 석궁사건이 일어난 날도 1월 이맘때였다.

2007년 1월 15일 오후 6시 30분, 김명호 교수는 박홍우 부장판사 집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손에 들린 석궁. 시위를 떠난 화살은 부러진 채 발견됐고, 판사는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김 교수는 징역 4년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1월 24일 만기출소 했다.

5년이 지났다. 「남부군」(1990년), 「하얀전쟁」(1992년) 등 시대의 금기와 그로 인한 사회의 멍에를 정면으로 다뤄온 정지영 감독(66세)이 13년 만에 문제작을 들고 나타났다. (대법원 판결이 2008년에 내려졌으니) 김 교수의 힘겨운 법정투쟁 13년 세월이 정 감독의 ‘13년’과도 겹친다. 세 상자 분량의 판결문을 바탕으로 석궁사건의 전말을 파헤친 「부러진 화살」은 오는 1월 19일 개봉을 예고했다. 공교롭게도 석궁사건이 일어난 날과 김 교수 출소일의 한 가운데다.

이상한 재판? … “공판기록에 충실했다”

석궁을 들고 부장판사를 찾아간 그날도 오늘처럼 추웠을까. 경기도 고양시에 영화사 ‘아우라 픽처스’로 재기의 둥지를 튼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노장’ 정 감독을 만났다.

  ⓒ 최성욱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법정에서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 벌어지거든요. 김 교수가 판사와 검사를 상대로 벌이는 ‘공방전’은 철저하게 공판기록을 토대로 한 거에요.”

정 감독은 기다렸다는듯 묻지도 않은 답변을 인사로 대신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만큼 연출의 기름을 쫙 뺐다는 말이다. 인터뷰는 속도를 냈다.

“감독님이라면 영화로 만들고 싶을 거에요.”

2년 전 어느 가을, 배우 문성근 씨가 서형의 르포소설 『부러진 화살』(2009)을 정 감독에게 건넸다. 사실 『부러진 화살』은 소설이라기보다 석궁사건의 전말과 판결문을 모아놓은 200쪽짜리 보고서다.

법정 공방을 읽어내려 가던 정 감독이 보다 못해 직접 펜을 들었다. 시나리오는 공판기록 너머의 픽션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박훈 변호사에게 넘겨받은 공판기록과 ‘김명호 교수 구명운동본부’ 인터넷 사이트에서 판결문, 1인 시위 등 무려 10여년에 걸친 김 교수의 행적을 좇았다. 꼬박 1년을 매달렸다.

정 감독의 완전한 몰입은 법정 실화극에 새 장르를 불어넣었다는 평을 이끌어냈다. 기존의 법정영화가 사건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조명했다면, 정 감독의 시선은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덕분에 김 교수, 박 변호사, 판사, 검사가 벌이는 공방전은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묘사됐다. 이 공방전만 극의 3분의 2 가량 된다. 법정 밖에서 전략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법정 공방전이 펼쳐진다. 재판 사이사이에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삽입되는 식이다. 정 감독은 극의 서사를 판결문에서 읽은 모양이다.

“재밌지 않아요? 법정에서 피고인(김 교수)이 판사와 법 해석을 두고 설전을 벌이질 않나, 자기들(재판부)이 불리해질 것 같으면 ‘말 한마디’로 증거신청 다 무시해요. 그렇게 재판을 이어가는데… 이상하죠. 그런데 공판기록을 보면 누구나 느낄 거에요.”

「부러진 화살」은 법위에 군림하는 사법부의 폭거를 맹렬하게 뒤쫓는다. 재판부는 부장판사의 와이셔츠에 묻은 혈흔을 검증해 달라는 김 교수 측의 요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한 마디로 잘라버리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화살 개수가 맞지 않고, 배를 맞고 튕겨 나간 화살이 벽을 맞고 부러진 경과 등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묵살해 버린다. 법정을 빠져나오던 김 교수는 취재진들에게 재판 진행상황을 이 한마디로 알렸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교수사회를 향한 일침 … “이기적인 지성, 반성해야”

깐깐한 원칙주의 수학자 김 교수는 수감생활 동안 법전을 독파해가며 사법부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정 감독은 수차례 김 교수를 면회하거나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소문으로만 듣던(?) 김 교수의 깐깐한 원칙주의를 경험했다. 꼬여온 사건의 굴레는 여기서 읽어냈다. 교수사회의 그늘이다.

“대학은 학교의 권위를 내세우면서 잘못을 덮으려고 모범답안을 짜맞추죠. 학교가 틀린 걸 맞다고 하니까, 학교 방침이 그렇다고 하니까 동료교수들이 학교 편을 들어 김 교수를 왕따 시키지 않았습니까. 김 교수가 홀로 되고 재임용에도 탈락했을 때 아무도 안 도와줬죠. 교수사회가 지금은 다를까요?”

법정 공방전을 통해 사법부의 권위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교수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극 전체에 깔려있다.

“김 교수는 특이한 사람이에요. 깐깐한 걸로 치면 웬만한 교수보다 더 하죠. 교수들이 원칙을 중시하려면 열심히 원칙을 고수하고, 누군가 새로운 제안을 하면 골똘히 고민하면 되는데… (교수들이) 원칙을 중시하는 척하면서 이기적인 사고에 사로잡힌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교수사회에 대한 비판은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정치의식으로 옮겨갔다. “작품을 내놓지 않으니 사람들은 저더러 ‘정치운동’하고 돌아다닌다고 해요. 근데 전 작품을 열심히 찾고 있었어요. 잘 안됐을 뿐이지…”

정 감독은 이를테면 자신의 리얼리즘적 작품활동과 한국사회의 정치의식이 엇박자를 내는 지점에서 「부러진 화살」의 의미를 찾는다.

“사회문제에 대해서 소신껏 발언하는 것이 당연시 돼야 하는 사회가 바람직한데,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싫어해요. 난 그게 이해가 안가요. 그러니까, ‘너 정치하려고 그러냐?’라고 묻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거든요. 정치적인 얘기는 정치인만 해야 하나요? 술자리에서 흔히들 정치가 어떠니, 이명박, 노무현이 어떻고, 맨날 욕하고 떠들잖아요. 그걸 왜 공식적인 자리에서 떳떳하게 못해요. 술 먹다 하는 얘기를 기자 앞에서나 공공장소에서는 정제해서 하면 되잖아요. 그걸 하면 마치 ‘너 정치하냐?’이러고… 사회문제에 대한 소신있는 발언은 개인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의무라고 봐요. 그것의 일환이지 특별할 게 없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

ⓒ 최성욱
정 감독은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 공동위원장을 맡아 청와대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영화인들의 선봉에 섰던 경험이 있다.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해요. 정지영 감독은 정치·사회·역사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다. 그런 것만 건들이고 싶어한다고 하는데, 일부러 이런 것만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돌이켜보면, 제가 관심 있는 게 그런 것 같아요. 대중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 사람들을 끌고 가고 있는 것인가. 거기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 같아요. 멜로드라마 같은 것보다 이런 주제에 자꾸 신경이 쓰이거든요.”

그럼 정 감독이 「부러진 화살」에 거는 기대는 뭘까.

“‘원칙’이라는 표현도 쓰고 싶지 않아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소품 하나를 만들어도 관객의 시선과 반응을 고민한다는 정 감독이 「부러진 화살」에 꽂힌 이유이기도 하다.

석궁사건을 둘러싼 사법부의 판결이 상식의 선을 어떤 식으로 넘나들고 있는지 정 감독은 관객에게 묻고 있다. 이게 상식이냐고. 60대 감독의 노정이 시작됐다.

글·사진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석궁사건’을 기억하는 법학과 교수들

김종서 배재대 교수(헌법)

“화살이 하나 없어진 것, 와이셔츠에 혈흔이 없었던 것, 석궁에 의한 부상 유무 등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석궁재판의 쟁점들은 최소한 ‘상해죄냐 폭행죄냐’를 가늠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스스로 사실관계 증명을 거부했다. 증거(물)를 통해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입증하는 과정이 왜곡된 채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을 받아들이는 식으로 재판이 진행됐다. 형사재판에서 검사가 범죄를 입증하지 않았는데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판사는 유·무죄를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들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자기 권한 행사로 볼 수 있지만 이것은 공정한 재판을 포기한 것이다.”

고영남 인제대 교수(민법)

“당시 성균관대 인사규정상으로도 재임용을 거부해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 사법부는 김명호 교수의 의견보다는 학교법인의 주장에 중점을 두는 안일한 판단을 했다. 이 때문에 이후 ‘재임용제도’도 악용될 수 있는 여지를 사법부가 남겨버렸다. 일종의 ‘사법부에 대한 지식인의 도전’이라는 정치 해석이 가중되지 않았나 싶다. 증거채택이 잘 안됐다. 4년 실형은 법학자로서도 유감스럽다.”

임재홍 한국방통대 교수(행정법)

“재임용을 ‘계약제’로 이행하던 시기의 사건이다. 재임용을 소송대상으로 보지 않았던 시절이다. 대학에서 교수 승진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선배 교수에게 대들거나 학교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면 ‘보복성 인사’가 가능했다. 학교 정책에 순응하지 않은 사람들은 당연히 보복성 인사의 대상이 됐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학교 내부기준에 따라서만 평가하니 부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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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12장3절(끝 장) 2012-02-09 09:38:01
세상의 학문은 거짓이었습니다. 노래가사처럼 가짜가 판을 치고 있었죠.

타이타닉의 침몰은 비극이었지만 현대물리학의 침몰은 비극은 아니고 과학의 진보가 될 것입니다. 타이타닉이 침몰할 때 마르코니의 무선전신으로 모스 부호를 해서 어느정도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니엘 12장3절(끝 장)

아훌경(김영범) 2012-02-08 22:15:24
지식의 오류는 반드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영국 같은 문학 선진 국에서는 시는 구어체로 써야 하다면 운율 시와 무운 시도 분류 하는데, 한국에서는 왜 김수영님의 <눈> 같은 작품이 운율 시이지 무운 시인지 또는 구어체시인지 증명을 못하는 걸까요? 영문학과도 존재하고 시는 구어체로 써야 한다고 하는 영국 시인 중 대표적인 인물은 워즈워스인데, 왜 그의 작품이-분명 대부분 구어체시일 텐데-구어체 시라는 것은 입증을 못할 까요. 시는 세계 공통의 학문이니까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 운율 시와 무운 시를 분류하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당연히 분류할 수 있어야 하는데요. 어느 나라 지식이 잘못 된 걸까요?
습작 단계도 탈피한 아마추어 수준의 작문과 습작 단계를 탈피한 시인의 시는 무엇을 증거로 증명 하는 걸까요? 증거를 제시 못한다면 <자화상>과 <국화옆에서>도 장르적 특성을 충족시킨 작품인지 아닌지도 모른 다는 뜻이 되지요.
모든 문학 장르에는 장르 고유 특성이 있는데 미당 선생의 작품이 장르 고유 특성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한 수준이라면, 시인의 시라 하기에도 창피한 것 일 텐데 왜 대한민국에서는 진실을 규명 하지 않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