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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人은 없는가?
公人은 없는가?
  • 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
  • 승인 2012.01.02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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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신년사] 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

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
임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흑룡의 해라고 합니다. 과연, 2012년은 나라의 운명적 좌표가 걸린 변화가 예상되는 해입니다. 북한의 권력 변화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출렁일 수 있는 해이며, 안으로는 19대 총선, 18대 대선이 함께 있어 선량과 비전 있는 리더를 선택해야하는 참여의 해이기도 합니다. FTA를 비롯 나라살림의 알뜰함과 법도를 엄격히 실현해나가는 일에도 국민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지식인 사회인 교수사회에 주어진 책무도 막중할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공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 공인에게 요청되는 자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이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잠시 이 나라 교육을 생각해봅니다. 우리의 교육은 전통 시대 이래 ‘立身揚名’ 즉 ‘尊名’을 지향하는 측면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어려운 시절, 뜻을 펼치고 집안과 가문을 일으켜야 한다는 작은 가족이기주의가 작동했던 까닭이지요.

학교 교육 시스템을 미국적인 것으로 수용한 오늘날에도 19세기초 토크빌이 통찰했던 미국의 학교교육의 특질, 즉 공적 생활에 필수적인 자질, 공인을 기르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핵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私人과 효율만을 강조하는 척박한 바람이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어느 원로 교육학자의 지적대로“토크빌의 관찰은 한국 학교교육의 현실에 신랄한 충고를 던진다.

학교교육이 거의 전적으로 개인적인 출세나 치부의 수단으로 간주돼 왔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정범모,『 내일의 한국인』)습니다.

과연 우리 교육은 올바른 공인을 키우는 데 어디까지 와 있을까요? 아니 私人교육마저도 제대로 되기나 한 것일까요? 얼마전 대구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을 접하고는 가슴이 너무나 먹먹했습니다. 벗이 벗이 아닌 존재로 전락한 시대, 교육이 사라져버린 세상이라고 하면 지나칠까요? 학교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평생을 고민해왔던 교육자로서 갖는 참담한 심정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우리 교육은 건강한 개인을 길러내는 데서도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고 한하면 지나친 단정이 될까요?

대구 중학생 사건을 언급하는 논의들을 보면, 건강한 개인의 형성은 실패했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아 보입니다. 가해자 학생의 폭력, 학교의 방치 등에 초점을 맞춘 지적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정말 중요하고 결정적인 책임의 주체가 결여돼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일반론일수도 있지만, 어른의 문제, 교육을 담당하고 교육 시스템을 앞에서 조율했던 학자들,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비판 부재를 지적해야 합니다.

우리말에 龜鑑이란 말이 있습니다. ‘거울로 삼아 본받을 만한 모범’이란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우리 뇌에 거울뉴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거울뉴런은 모방학습(사회학습)의 가능성을 더욱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경험으로 직접 배우는 행동학습과 달리 모방학습은 ‘보기만 해도 흉내내고 배운다’는 것으로 특징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뱀이 무서운 줄 몰랐던 원숭이가 뱀을 보고 기겁하는 다른 원숭이를 보고 나면 그 역시 뱀을 피한다’는 실험을 확인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귀감’이란 말입니다.

올바른 개인을 육성하는 일은 본받을 수 있는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나라 청년들은 존경할만한 어른이 없다고 응답합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온갖 탈법과 비리, 폭력, 기만, 시기, 부정직한 욕망의 온상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공직자, 정치인 등 어른들의 세계 곳곳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자라는 아이들이 그런 어른들로부터 그릇된 자아상을 형성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차제에 교육의 초점을 공인에 맞추는 것은 어떨까요.

정범모 교수는 모방학습은 공인교육의 핵심인 도덕학습·정서학습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고 말하면서 “공인의 자질을 함양함에는 지도층의 의식적인 ‘시범’의 노력이 가장 긴요한 관건일지도 모른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공적인 인간, 공인을 길러내는 교육의 전환은 동시에 우리시대 공인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시대와 역사, 양심과 이성에 따른 합리적 행동이라는 투명한 틀을 세우는 일은 이제 학교에서, 사회에서, 산업현장에서 나아가 우리의 가정에서 동시에 전개돼야 할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공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성취가 없이 선진사회로의 진입은 무망합니다. 이에 <교수신문>은 2012년, 이 과제를 좀 더 연구하고 고민하고자 합니다.

지난해 연말 <교수신문>과 교수사회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掩耳盜鐘’을 선정했습니다. 힘을 가진 자의 자기기만을 풍자하는 이 말은 그대 ‘귀감’의 본이 되지 못한 우리 지식인 사회에도 적용됩니다.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2012년, 귀감과 신뢰의 본을 실현하는 원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2년 새해 아침
교수신문 발행인 이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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