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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를 가려내는 광명의 빛은 우리 속에 있다”
“알맹이를 가려내는 광명의 빛은 우리 속에 있다”
  • 김교빈 호서대·동양철학
  • 승인 2012.01.01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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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시론_ 破邪顯正의 새 날을 기다리며

신동엽 시인은 일찍이 ‘껍데기는 가라’고 했다.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고 절규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껍데기와 알맹이가 뒤섞여 있을 뿐 아니라 껍데기가 판을 치고 있다. 한 줌의 권력이 국민을 우롱하고 한 줌의 재벌이 부를 틀어쥐고 있으며 한줌의 언론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현대사를 보면 해방 직후 숨죽이던 친일 부일 세력이 다시 활개를 치고 다니더니 얼마 안 가 국민이 맡긴 총칼을 국민에게 겨누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한다고 언구럭을 떤 이들이 둘이나 나왔다. 그럼에도 위대한 우리 국민이 지난한 싸움 끝에 민주화의 초석을 만들어 냈으나,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역사의 거대한 물살을 거스르려 했던 것이 이 정권이다. 그러다 보니 다시 ‘껍데기는 가라’는 시가 그리워진 것이다.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가 대접받는 세상. 있을 것은 있고 없을 것은 없는 세상. 주인이 참 주인으로 올곧게 서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우리는 그런 세상을 유토피아로, 무릉도원으로, 대동사회로, 불국토와 극락으로, 천국으로 불러 왔다. 그리고 그 사회에 이르는 방법으로 破邪顯正을 말했다. 파사현정은 그릇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을 지닌 불교의 근본 교리로서, 삼론종에서는 파사 밖에 따로 현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파사현정이 불교에서만 쓰인 것은 아니었다. 유학에서는 斥邪衛正 또는 ?邪衛正을 말했고 기독교에도 이단 배척의 오랜 역사가 있으며, 천도교와 증산교는 후천개벽을 말했다. 

특히 파사현정의 이념은 우리 역사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큰 행사가 있을 때 깃발을 내거는 사찰 입구의 당간에도 담겨 있었고, 신라인들은 불법을 억압하는 나라들을 물리치고 온 세상에 참 진리를 펴겠다는 염원을 담아 황룡사 9층 목탑을 지었다. 또한 민족의 위기에 맞서던 승병들의 실천과 조선 말 외세에 대항해 목숨을 걸었던 의병전쟁도 모두 여기에서 나왔다. 그리고 3ㆍ1운동과 지난했던 독립운동, 4ㆍ19혁명과 광주 민주화운동, 87년 6월 항쟁과 촛불항쟁까지 근현대사에 기록된 민족민주 운동이 모두 그 연장선에 있다. 

파사현정에서 ‘邪’와 ‘正’은 양립할 수 없는 반대 개념이다. ‘사’가 거짓, 악함, 탐욕, 자만과 독선, 불의와 부정 등을 뜻한다면 ‘정’은 진실, 선함, 사랑과 자비, 정의 등을 뜻한다. 그러니까 파사현정에는 거짓과 탐욕, 불의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강한 실천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일러스트 이재열

알맹이가 아니라 껍데기가 대접받는 세상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파사현정의 새날은 어떤 모습일까. 주변의 세태를 보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대학은 취업준비 학원이 돼 가고 있다. 70년대의 낭만도, 80~90년대의 치열한 사회의식도 자취를 감췄다. 학점 경쟁이 판을 치면서 한 번 결석에도 어떤 이유를 달아서든 결강원을 제출하는 학생들이 넘쳐난다. ‘어린쥐’ 파동 이후 스펙을 쌓기 위해 어학연수를 떠나는 것은 다반사가 됐고, 취업이 쉽지 않으니 스스로 졸업을 미루는 꼼수가 판을 친다. 부지런한 아르바이트로도 감당이 안 돼 휴학하는 제자들과 졸업과 동시에 학자금 융자의 빚을 떠안은 채 사회로 나가는 제자들을 보면 해줄 말이 없다. 보편적 복지를 퍼주기라고 강변하는 집권세력을 보면 반값 등록금 공약은 어디로 간 것인지 묻기조차 민망하다.

학교와 교수들은 어떠한가. 전두환 정권 때 졸업 정원제로 몸집을 불리고 김영삼 정권 때 요건만 갖추면 대학을 설립해 줌으로써 포화상태를 넘어선 대학들이 이제는 부실대학 퇴출이라는 극약처방과 함께 학생 부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입학정원을 못 채우는 대학, 재학생 수가 정원의 절반을 밑도는 지방대학들이 늘어나면서 교수 평가의 필수 요소가 연구가 아니라 학생모집 인원수로 바뀌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사정이 조금 나은 대학들도 계약제와 연봉제를 택하면서 대부분의 젊은 교수들은 SCI 논문 몇 편에 매달리고 있다. 학문 후속세대 양성을 포기한 정책으로 비정규직 강사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사립학교법 개악 이후 비리사학들이 하나 둘 되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의 열망을 등에 업고 새 판짜기를 시작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선언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다른 대학들이 적립금 쌓기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환경개선 기금 183억원을 장학금으로 선뜻 내 놓은 대학도 있다. 더구나 20대를 대상으로 한 모 언론사의 연말결산 여론조사에서 반값 등록금이 올 해의 핫 이슈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러니 포퓰리즘을 떠벌리던 집권세력과 보수 언론도 입장을 바꿀 판이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이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되는 현실과 함께 대학을 실용성과 학문의 진정성을 함께 담보하는 곳으로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대학 정원이 줄고 비리사학이 퇴출되는 뼈아픈 과정이 동반돼야 할 것이다. 본래 개혁이란 살가죽을 바꾸는 과정이니 그 고통이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그러한 변화를 통해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논리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대학 본연의 연구와 교육을 구현할 수 있는 형태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정치 현실은 어떠한가. 노점상도, 막노동도, 그리고 기업 총수까지도 해봐서 안다는 정권의 행태는 오만하기 짝이 없다. 자연을 사랑해서 땅을 샀다는 장관 후보 낙마자의 코미디 같은 발언을 시작으로 고위직 물망에 오르는 사람마다 병역 면제,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탈세, 논문표절 같은 비리 전력 하나 없으면 명함도 내밀기 어렵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민심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 어린 애들 무상급식 문제에 시장 직을 걸고 도박을 한 전 서울시장의 판단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하긴 환경평가도, 유물 발굴도 생략해 가며 4대강에 엄청난 국민 혈세를 퍼부으면서 굳이 ‘살리기’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 ‘살리기’와 ‘죽이기’조차 후세들이 구분하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 앞선다. ‘가장 도덕적인 정권’이라는 낯간지러운 자화자찬의 침도 마르기 전에 측근들과 가까운 친척들이 구속되거나 조사를 받는 것을 보면 ‘엄이도종’도 이런 ‘엄이도종’이 없다.

경제 상황 또한 다르지 않다. 기업 프렌들리와 부자 감세가 양극화를 부채질하는 가운데 범죄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는 국가경제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면죄부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의 횡포에 노동자들이 온몸으로 맞서도 바뀌지 않는 강고한 세태를 보면 가슴 속에서부터 분노가 들끓는다. 수백 명을 일터에서 내몰고 다음날 170여억원을 주식 배당한 기업의 몰염치에 기가 막힐 뿐이며, 우격다짐으로 통과시킨 한미 FTA와 종합편성채널의 비정상적 운영을 보면 더 큰 걱정이 앞선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하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전국에서 몰려든 희망버스 대장정이 크레인 위에서 외롭게 농성해 오던 노동자를 내려오게 했고, 시민단체와 학생들의 연대투쟁이 홍대 청소 노동자들을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 서울시장 선거로 드러난 민심이 정치권을 달구면서 내년으로 다가 온 총선과 대선의 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진보와 중도까지 통합의 모습을 갖췄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집권 여당은 하루아침에 친서민과 복지를 당론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4대강 죽이기를 정말 제대로 된 살리기로 바꿀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기득권에 빌붙어 부정부패의 독배를 마시면서 배를 불린 세력들이 심판을 받는 과정이 있겠지만, ‘나꼼수’와 ‘개콘’을 보고 위안을 받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정치와 경제 상황이 서민들을 웃게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은 역시 국민에게서 나온다.

역사는 늘 낙관적 전망을 지닌 사람들의 실천으로 전진해 왔다. 그래서 조선 선비들은 ‘萬折必東’을 좋아했다. ‘만절필동’은 『순자』 「유좌편」에 나온다. 자공이 “군자가 물을 보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요?”라고 묻자, 공자는 “만 번 굽이쳐도 반드시 동쪽으로 향하는 점이 군자의 뜻과 같다”고 했다. 황하 강물이 어떤 때에는 거꾸로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고 또 어떤 때에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여도 마침내 동쪽을 향해 가는 것처럼 역사 또한 반드시 바른 방향을 향해 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런 정신을 갖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함석헌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다. 그렇다. 생각하는 백성은 옳고 그름을 구분한다. ‘사이비’는 비슷해 보이기는 해도 아닌 것이다. 이것저것 비슷해 보이는 속에서도 아닌 것을 가려낼 수 있는 눈, 껍데기가 판치는 속에서도 알맹이를 가려내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지혜, 그리고 마침내 잘못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실천. 이것이 바로 국민의 숨은 힘이며 파사현정의 새 날을 여는 보습이다.

캄캄한 밤에는 나쁜 것과 좋은 것을 구분하기 어렵다. 하지만 태양이 떠올라 온 누리를 밝게 비추면 어떤 것이 진짜 좋은 것이고 어떤 것이 진짜 버려야할 것인지가 한 순간에 드러난다. 그 광명의 빛은 바로 우리 속에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는 ‘생각하는 백성’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김교빈 호서대ㆍ동양철학
성균관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장, 인문콘텐츠학회장,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를 역임했고, 현재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와 재단법인 민족의학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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