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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한 연구 기초'에서부터 '기술긍정론'에 이르는 문제작들의 풍경
'튼튼한 연구 기초'에서부터 '기술긍정론'에 이르는 문제작들의 풍경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12.26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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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올해의 책

2011년 교수신문 서평위원으로 활동한 김환규 전북대 교수(생물학과), 염정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중국사상), 이영석 광주대 교수(서양사), 이창남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교수(독문학),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문화이론)와 2012년 대한화학회 수장으로 활동하게 될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과)가 '올해의 기억에 남는 책'을 각 3권씩 추천했다. 다양한 전공분야 교수들이 고른 올해 기억에 남는 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 고문자학(중국어학)을 전공한 염정삼 서평위원(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 HK교수)은 『가게로 일기』(미치쓰나의 어머니 지음, 이미숙 주해, 한길사), 『장가르』(칼미크-오이라드 민중 지음, 니콜라이 체데노비치 비트게예프 등편, 유원수 주해, 한길사), 『문선역주(전10권)』(김영문 외 옮김, 소명출판)을 올해 기억에 남는 책으로 꼽았다.

『가게로 일기』는 10세기 후반 일본 헤이안 시대에 가나 문자로 기록된 여성의 일기문학으로서, 현존하는 일본 최초의 여성 산문 문학작품이다. 염 교수는 "이 텍스트를 통해 중국문명과 독립적인 일본 문명 고유의 과도기적 양상을 고찰할 수 있으며, 일상생활 속에 담긴 당시 일본의 문화생활 및 일본인의 미의식 등을 엿볼 수 있다"고 의미를 매겼다.

『장가르』는 몽골인들의 3대 문학(장가르, 게세르, 몽골비사) 가운데 하나이자 중앙아시아의 3대 영웅 서사시중의 하나다. 공골 전통 문학과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염 교수가 꼽은 『문선역주』는 지금으로부터 약 1천500년 전 중국 南朝 梁나라 昭明太子 蕭統의 주도로 편찬된 고대 한문 시문 선집이다. 이 책은 역대로 한문 문장의 교범으로 인정되면서 文選學[選學]이라는 독립적인 학문 분야까지 탄생했다. "완역본이 출간됨으로써 중문학ㆍ한문학 분야뿐만 아니라 동양학의 거의 전 분야에 튼튼한 연구 기초가 마련됐다"는 게 염 교수의 설명이다.

□ 독문학을 전공한 이창남 서평위원(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교수)는 『벌레와 제국-식민지말 문학의 언어, 생명정치, 테크놀러지』(황호덕, 새물결), 『사유하는 구조-유리 로트만의 기호학 연구』(김수환 지음, 문학과지성사),『나는 시인이다』(김규동 지음, 바이북스)를 꼽았다.

 『벌레와 제국』은 푸코의 후기 사상의 핵심 키워드와, 조르주 아감벤의 사유의 주요한 고리를 연결해 식민지말기 한국문학을 조명한 책이다. ‘주권’, ‘통치성’, ‘말하는 동물’, ‘생명정치’ 등의 철학적 용어를 문학연구와 기묘하게 접합한 저작이다.

『사유하는 구조』는 현대 러시아 지성계의 대표적 학자이자 '문화기호학'의 창시자 유리 로트만의 기호학을 집중 분석한 책이다. 그의 사상과 이론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독보적 연구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이창남 교수는 개념(주제와 문제)에 따라 종합적 연구를 시도함으로써 연구 지평을 확대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

『나는 시인이다』는 1950년대 박인환, 김경린 등과 함께 '후반기 동인'으로 우리 시 문학의 전성기를 이끌어온 시인 김규동의 자전 에세이다. 한 자연인이 시인의 길에 들어서는 과정, 월남과 민족 분단의 삶, 戰後 한국 사회의 모습과 1950년대 함께 활동했던 '후반기 동인' 멤버들과 김기림, 김수영, 오장환, 한하운, 천상병 등 저자가 만난 여러 시인들의 다양한 일화들을 담겨 있다. 한 시인의 자전적 에세이로서뿐 아니라 우리 현대 시 문학의 사료로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책이다.

□ 영미문화이론 전공자이자 다양한 문화비평 글쓰기로 정평난 이택광 서평위원(경희대)은 『사유의 악보』(최정우, 자음과 모음),『맹자의 땀 성왕의 피』(김상준 지음, 아카넷),『지배와 저항: 한국 자유주의의 두 얼굴』(문지영 지음, 후마니타스)을 기억에 남는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이택광 교수는 "최정우의 책은 소멸해가는 에쎄의 유산을 가장 잘 계승한 저작이며, 김상준의 책은 근대와 동아시아에 대한 장대한 스케일을 보여주는 논의들이다. 문지영의 책은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로 자유주의를 본격적으로 거명한 수작"이라고 평했다. 

특히 김상준의 『맹자의 땀 성왕의 피』는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우리의 도덕적 몸에 숨겨진 근대성'을 찾는 논리 즉 동아시아의 유교문명에서 세계 보편윤리를 찾으려는 지적 실험의 색채가 짙다. 유교의 정초지점을 독창적으로 모색한 그의 학문적 입지는 사회학에 놓여 있다. 학문을 가로지른 그의 실험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 서양사를 전공한 이영석 서평위원(광주대)이 고른 책은 『미국 예외론의 대안을 찾아서』(배영수 지음, 일조각), 『시빌라이제이션』(니얼 퍼거슨 지음, 구세희·김정희 옮김, 21세기북스), 그리고 피터 윈치의 『사회과학의 빈곤』(박동천 옮김, 모티브북)이다.

『미국 예외론의 대안을 찾아서』는 미국사 전공자인 저자가 미국 예외론에 관한 다양한 연구 성과를 검토하면서 미국 예외론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살펴보고 그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연구서이다. 미국 예외론은 미국을 역사의 보편적 발전 과정에서 벗어나는 예외적인 경우로 간주하는 관념이자 미국인들이 유럽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정체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이데올로기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여러 분야에서 축적된 다양한 이론을 검토해 미국을 바라보는 틀을 새로 만들고자 한다.

『시빌라이제이션』은 중국이라는 새로운 용의 부상을 눈앞에 두고 만연하는 종말론을 경계하며, 현명하게 서양 문명의 황혼을 맞이하는 자세를 제시한다. 이영석 교수는 600년간의 세계사를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되짚어가며, 서양 문명의 비밀을 밝혀내는 흥미로운 접근에 의미를 매겼다.

『사회과학의 빈곤』은 박동천 전북대 교수(정치외교학과)가 피터 윈치의 『사회과학이라는 발상』과 「원시사회의 이해」를 번역해서 묶은 책이다. 윈치는 이 책에서 철학과 삶에 관한 자신의 독특하면서도 심오한 입장을 바탕으로 사회연구가 본질적으로 과학보다는 철학에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연구자와 연구대상사이에 소통이 필수적이며, 그 와중에 연구자 스스로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성찰해야할 논리적 필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 생물학 전공자인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이 뽑은 책은 『중용, 인간의 맛』(김용옥 지음, 통나무), 『진화의 종말』(폰 에얼릭·앤 에얼릭 지음, 하윤숙 옮김, 알라딘), 『흑산』(김훈 지음, 학고재)이다.
『중용한글역주』를 어렵게 느낄 일반대중을 위해 쉽게 쓴 책이 『중용, 인간의 맛』이다. 단순한 요약본이 아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서도 그 전체의미를 새롭게 발전시킨 것이다. 중용사상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들어있고, 현대인의 삶에 짠한 도움을 주는 자기계발의 풍요한 내용이 번득인다.

『진화의 종말』은 부부 생물학자가 함께 쓴 책이다. 이 책의 묘미는 전반부보다 후반부에 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진화의 정점에 선 이 존재가 지배하는 지구는 과연 지속가능할 것인가, 라는 물음이 진화생물학을 바탕으로 인구, 기후, 생태, 정치 문제 등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흑산』은 작가 김훈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조선 사회의 전통과 충돌한 정약전, 황사영 등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을 다룬다. 작가는 천주교에 연루된 정약전과 그의 조카사위이자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인 황사영의 삶과 죽음에 방점을 찍고 『흑산』을 전개한다.

이덕환 대한화학회장(서강대)은『기술의 충격』(케빈 켈리 지음, 이한음 옮김, 민음사), 『기계, 인간의 척도가 되다』(마이클 에이더스 지음, 김동광 옮김, 산처럼), 『0.1퍼센트의 차이』(베르트랑 조르당 지음, 조민영 옮김, 알마)을 기억에 남는 책으로 골랐다.

케빈 켈리의 『기술의 충격』은 기술옹호론으로 적절하게 읽힌다. 저자는 기술이,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될지라도 더 중요한 사항을 발견할 가능성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기술을 옹호한다.

『기계, 인간의 척도가 되다』는 유럽인들이 자기 문화의 물질적 우월성, 특히 과학적 사고와 기술 혁신에서 나타난 우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이것이 해외에서 마주친 사람들에 대한 태도와 그들과의 상호작용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검토한다. 500년에 걸친 유럽인과 비서양인 사이의 교류를 추적함으로써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의 성취가 어떻게 경멸됐고, 비서양인의 가치체계와 조직 형태가 어떻게 비판받았는지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0.1퍼센트의 차이』의 저자 베르트랑 조르당은 인종주의의 역사를 훑으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현대 과학에 근거해서 DNA가 99.9 퍼센트 일치하는 인간들이 스스로를 종으로 구분하는 인종주의를 엄격하게 비판하면서, 동시에 인간 집단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반인종주의의 한계도 넘어서고자 한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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