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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평가에 대한 단상
대학평가에 대한 단상
  • 전지용 조선대 사학과
  • 승인 2011.12.2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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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_ 전지용 조선대 사학과

전지용 조선대 사학과
금년의 가을과 겨울에는 전국 각 대학들에 대한평가 이후의 이야기로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 같은 기초 학문 분야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수치로 계량화하려는 행태에 태생적으로 늘 거부반응을 보여 왔었지만 공리주의의 명분과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거의 무기력하게 끌려 다녔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학이 자본주의식 기업과 같은 기준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합리적인가, 혹은 타당한 것인가.   

아마도 불만이 많았던 평가 항목들 중에는 수익성을 따지는 경영적 측면 등은 좀 더 근본적인 것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졸업생의 취업률과 입학생의 충원률 그리고 재학생의 재적률 등에 부가된 점수 때문에 인문계 같은 기초 학문 분야와 예능계 분야는 불만을 속으로 삭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각각 소속 대학으로부터는 점수를 까먹는 문제 대학 내지는 학과로 내몰리었으니 말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1980년대에 처음 대학평가제를 맡아 시작했던 것이, 1990년대에는 당시의 교육부가 직접 맡게 되고 곧 중앙일보 등의 언론사들도 여기에 가세해 자체적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언론사가 제공하는 대학평가가 사회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신뢰와 명성을 얻고 있다. 물론, 이 제도 자체가 어느 정도의 순기능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 과소평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언론사의 평가 항목에는 ‘사회적 평판’이 포함돼 있는데, 예를 들어, ‘신입사원으로 뽑고 싶은 대학’ 등의 항목은 그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그리고 전통이 오랜 대학들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영어 강의의 개설 비율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국제화 지수'는 극소수의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들에서 현실을 무시한 비교육적인 전시 행정이라는 불만을 낳고 있다. 소수의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겠지만, 미국 등 외국의 대학에서는 예를 찾을 수 없는, 자국어를 홀대하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교육 담당 부처가 앞장서 고취하고 있다는 비상식적 상황까지 낳고 있으니 말이다.  

교과부의 평가에서, 특히,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편법은 비교육적이라는 표현 보다 가관이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전체 평가 기준에서 취업률의 점수가 약 20%에 해당하니 평가 대상 대학들이야 이 항목에 그들의 목줄이 걸려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대학들에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4대 보험이 보장되는 3개월에서 10개월 정도의 인턴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평가에 대응했다. 10개월 정도의 인턴은 취업 준비 학생에게 어느 정도의 도움이 됐겠지만, 3개월짜리 인턴은 일할 부서를 찾을 수 없어 학과의 조교 등으로 임의로 배치돼 달리 하는 일 없이 그 3개월을 보내도록 인턴 학생들이 방치 됐다.

취업률을 높여 발표하고 싶은 정부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교육의 마당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편법을 행하지 않았던 어떤 대학은 곧 ‘부실대학’으로 지명된 후에야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했었다고 한다. 그 대학은 이 사실과 함께 다른 일부 대학들의 불평 때문에 의·치·약·한의대가 평가에서 배제됐다고 볼 멘 소리를 높였다.

이 대학의 경우, 대학 운영비에 대한 재단으로부터의 전입 비율이 우리나라에서는 꽤 양호한 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비교적 합리적으로 대학이 운영되고 또 그렇게 성장하는 도중에 있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는 적지 않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취업률에 얽힌 헤프닝은 예술대학들에서 극명하게 나타났었다. 정부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은 정부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할 것이다. 예술대학 관계자들의 불평처럼, 애초에 정부가 ‘종교지도자 양성 관련 학과 재학생 비율이 25% 이상인 대학에 한해서’ 대학평가를 면제해 줬기 때문이다.

예술대학 관계자들은 ‘예술지도자 양성 관련 학과 재학생 비율이 100%인 대학’은 왜 별도로 관리하고 평가하지 않는가를 묻고 있다. 예술인의 특성이 무엇에 묶여 있기를 싫어하고 대체로 프리랜서로 많이 활동한다는 점과 순수예술 분야에 4대 보험이 보장되는 그런 직장이 아예 없다는 점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정편의주의 때문에 추계예술대에서 시작된 항의의 연대운동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 관련 대학들에게 대학평가를 면제해 줬던, 이런 불신과 관계된 측면은 국립대에 대한 평가에서도 나타났다. 우연히도, 부실대학으로 지목된 대학이 상대적으로 도세가 약한 충북과 강원도에서 나왔기에 그리고 그 중 한 지역의 국립대가 총장 직선제 포기를 선언하면서 불신이 증폭됐다.

정부가 이미 직선제 폐지를 강경하게 밀어붙이고 있기는 했지만, 이것과 평가 지표상의 부실대학이 겉으로 보기에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해당 대학은, 교육대학들의 경우처럼,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에 포기 선언이 나왔을 것이고 그 대학 밖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 그렇게 이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부의 정책에 담긴 의지와 그 지향점 그리고 교육적 지표는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연관돼야 하는가!

전지용 조선대·사학과
전남대에서 박사를 했다. 조선대 인문대학장을 지냈다. 전국교수노조 지회장, 호남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맑스와 ‘러시아의 길’」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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