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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기억을 덮친다
봄이 기억을 덮친다
  • 안치운/편집기획위원
  • 승인 2002.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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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안치운`/`편집기획위원·호서대

“젊음은 곁에 뉘 없어도 자기에게 반항해.”

레어티즈는 ‘햄릿’ 1막 3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곁에 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자기자신에게 반항하면서 젊음은 시작되기 마련이다. 젊음의 언어가 고귀했던 것은 그것이 아름답기보다는 상실과 고통의 언어였기 때문이리라. 6월과 7월, 전국의 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서울에 모여 ‘젊은연극제’를 하고 있다.

학생들의 연극을 보면서 나는 내 젊은 날을 떠올린다. 연극공부를 하고, 연극에 관해서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이 된 이래, 내 글은 젊은날 간직했던 연극에 관한 요구와 상처와 희망의 언어일 뿐이라고 여길 때가 있다. 낯부끄러운 일이지만, 돌이켜보면 내 젊은날과 지금은 별 차이가 없다. 공부의 깊이와 넓이도 그러하다.

어제도 국립극장 무대에서 젊은이들의 연극을 보았다.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젊다는 것을 내세워 연극으로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은 누구인가. 아무리 생산해도 이익이 되지 않을 연극행위를 하는 이들이 있다. 태어나자마자 늙어버리는 이들이 양산되는 시대에 늙지 않겠다고 버텨내는 이들이 있다. 도시 한 복판에서 연극하는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은 언제나 큰길에서 한 발 비껴나 있는 뒷골목을 오고가는 이들이 있는 법. 화전민처럼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한 그루 나무로 여기며 온전한 삶을 꿈꾸고, 무정부주의자처럼 권력과 싸우며 아나(Ana)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있다.

불우한 시대일수록 땅 위로 솟아오르려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대개가 얼굴이 비슷비슷하고, 생각의 얼개가 같다. 반면에 땅 밑 언더로 내려가려는 이들도 있다. 고시나 행시에 필요한 과목을 수강하려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대학본부의 슈퍼컴퓨터가 열받아 다운되는 풍경을 아랑곳하지 않고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을 찾아 읽으며 잠 못 이루고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

인연이니 학연이니 하면서 앞서 간 사람들과 연을 맺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이들과 달리 두메산골 길 위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처럼 외로움과 벗하는 이들이 있다.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박남수의 ‘새’) 새처럼 연극과 남은 삶을 노래하는 이들이 있다. 시골길을 걷다 민들레, 양지꽃, 쥐오줌풀, 산괴불주머니, 졸방제비꽃, 귀룽나무, 호제비꽃, 큰앵초, 벌깨덩굴, 속새, 동의나물, 연령초, 금강애기나리, 산겨릅나무, 족도리, 태백제비꽃, 큰황새냉이와 같은 꽃들을 보면서 겸손해지고 행복했을 젊은이들은 얼마나 될까? 아스라이 내 몸을 덮쳐오던 봄 날, 산과 들에서 피어나는 꽃들이 주는 현기증과 같았던 연극을 기억하는 젊은이들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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