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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이 멈춘 하늘 화산재 아래 남은 無의 의미를 묻다
화산이 멈춘 하늘 화산재 아래 남은 無의 의미를 묻다
  •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
  • 승인 2011.12.19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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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유랑·방랑·인문학 ⑧ 폼페이의 殘像을 되새기며

푸른 볼펜으로 침상에 엎드려 스케치해 본, 폼페이의 얼굴을 감싼 사람의 석고상. 그림=최재목
폼페이를 떠나, 밤 열차로, 4월에 들렀던 파리로 다시 향한다. 침상에 누워도 잠들지 못하고. 내 귀는 홀로,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이어지는 열차의 긴 선로에 포개어 덜컹대는 바퀴의 무수한 회전, 그 중심에 틀고 앉는다. 그리고 고요히 폼페이의 잔상을 음미한다. 몸이 사라져야 비로소 욕망의 숟가락을 놓는 인간. 욕망의 主食은 바로 자신의 육신. 얼굴을 감싸며 괴로워하던 석고상에서 그 원리를 읽는다.

폼페이를 발굴해 가자, 인간이나 동물의 사체는 없고, 화산재 안에 남은 ‘空洞’ 뿐. 주물 틀처럼, 질료는 증기가 되어 하늘로 가고, 형상은 화산재가 알아서 떠 놨다.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구멍 뿐. 훗날, 여기에 석고를 붓자, 원래의 형상이 그 모습을 드러냈고, 달라붙은 화산재를 툭툭 털어내니 멸망의 순간 허우적거린 고통의 무늬, 숨결이 생생히 복원되었단다. 나는 침상에 엎드려, ‘空洞’, 그 ‘無’에 있었던 한 존재를 푸른 볼펜으로 스케치해본다. (왼쪽 그림)

화산이 멈춘 하늘. 여전히 눈부신 태양은 떠올랐을 터.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것은 끝장난 뒤. 비극이었으나 도시를 통째로 순간포착 상태로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화산밖에 없을 거라는 역사가도 있다. 말은 맞다. 그런데 누가 그런 순간을 맞고 싶겠나.

인터넷에 폼페이의 남녀 교합 유골로 잘못된 정보로 떠도는 즈지스와프 백신스키의 작품(1984), 무제

인터넷에 ‘폼페이 유적에서 발굴된 두 남녀’로 잘못 유통되는 그림 하나(오른쪽 그림)를 본다. 폴란드 출신 화가 즈지스와프 백신스키(Zdzislaw Beksinski, 1929~2005)의, 죽음의 풍경을 표현한 무제 작품(1984). 이것이 폼페이의 미라로 둔갑하여 떠도는 이유는 뭘까. 발굴된 미라를 보고 그린 것이긴 할까? 불명.

다만 분명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미라라고 ‘믿고 싶어 했다’는 사실.

그렇다. 사랑은, 멸망에 빨려들지 않고 버텨내려는 환상에서, 상대를 부둥켜안고 하나가 되는 것. 그런 환상 속에 멸망의 폼페이가 얼핏 겹치면 인지적 혼성을 일으킬 수도. 6000년 전 이탈리아 만토바 부근 발다로의 연인들(Lovers of Valdaro) 유골에, 도교의 음양화합(아래 그림)도에 눈길이 가는 것도 사랑 때문. 

道敎의「陰陽和合圖」. 陰婦人과 陽氏는 결합하여 太一을 지향한다. 껴안은 두 사람은 우주를 품는 알(卵) 혹은 太極圖를 상징한다.
5월 폼페이의 폐허지 틈 틈엔 푸르른 나무들, 붉은 꽃들, 의연했다. 버들잎은 푸르고, 꽃은 붉다. ‘柳綠花紅’. 푸르고 붉음이란 인간의 해석이겠지만. 물리적 자연은 ‘말이 없다’. ‘감정이 없다’. 사체가 증발한, ‘아무 것도 없는’ 그 존재는 누가 대변해줄까. 사자들은 결국 패자일 뿐인가. 아무런 하소연도 못하는 그들.

인간들은 자신의 권력을 투영한 부활전을 거쳐 ‘신들의 족보’를 만들기도 한다. 사자들을 ‘기억’해주는데 인색한 생자들. 오만하다. 산자들만의 잔치고, 죽은 자들만 서럽다. 그나마 사자들에 대한 ‘기억’을 끈으로 도덕·윤리를 구상하는 사람도 있어 다행이다. 화산재 안에 남은 ‘空洞’- ‘無’의 의미를 묻는 건 시간 낭비가 아니다. 인간 자신에 대한 ‘반성’. 이런 능력이 몸의 조언과 권고에 주목하여, 정신의 폭주를 막도록 하기도 한다. 가끔 초월의 길을 걷는 착시나 환청에 빠지기도 하지만. 

폼페이 폐허지에 자라난 푸른 나무들. 사진=최재목

몽테뉴『수상록』을 펴본다. “로마의 미신에는 죽어가며 말 한마디 남기지 않든가, 눈을 감겨줄 친척하나 없이 죽는 것을 큰 불행으로 여겼지만, 나는 그 반대로 남을 위로해주기는커녕 나 자신을 위로하기도 힘겹다” “우리는 이미 하고많은 죽음을 겪고 있다. 죽음을 두려워함은 어리석은 짓이다.” 죽음의 두려움에 휘둘리지 말라고 한다. 같은 프랑스 사람, 데카르트는 말한다. “이제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나의 모든 감각들을 멀리할 것이며, 나의 생각에서 모든 물체들의 영상을 지울 것이며,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그러한 물체들을 헛된 것으로, 또는 거짓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리하여 오직 나 자신만을 생각하고 나의 내부를 고찰함으로써, 나 자신에 조금씩 더 친근하게 되도록 더 노력할 것이다.”(『성찰』,「제3성찰」중). 운명보다도 ‘자신’을 정복하란다.

하지만 생각은 꼬리를 물고, 微分을 계속하는데. 먼 인도로 향하던 혜초 스님이 베트남 하노이 쯤에서 썼던가, 바닷물 철썩대는 아스라이 먼 고향을 그린 시. “내 나라는 하늘 끝 북쪽에 있고, 다른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我國天岸北, 他邦地角西)”. 창밖의 가로등이 點點 찍어 그린 이탈리아의 허리처럼, 꾸부정, 등 푸른 언어들. 뇌리에 붙어 남에서 북으로 천리를 간다.

‘小프리니우스 서간집’을 읽어 가던 빙켈만의 손을 떨고 눈을 멈추게 했다는 폼페이의 존재. 그의 발굴과 탐색으로, 고전이 된 로마 제국·헬레니즘 문화의 美는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Edle Einfalt und Stille Größe)”로 정리된다. 망각에 묻힐 뻔 했던 폼페이는, 신고전주의의 패션으로 복귀하고. 그건 꼭 멸망한 것들을 기리며 휘날리는 輓章의 한 구절 같다. 옛날은, 호랑이 가죽처럼, 그 의미로만 남았다.

최재목 영남대ㆍ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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