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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 아이’ 명함 아시나요? … 희망 잃은 사람들의 등불
‘보이스 아이’ 명함 아시나요? … 희망 잃은 사람들의 등불
  • 김지혜 기자
  • 승인 2011.12.19 16: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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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특수교육의 메카 대구대

‘한국사회의 발전을 이끌 저력’을 조명하기 위해 <교수신문>이 기획한‘대학의 유산, 한국의 미래다’는 대학 내부의 집합적 노력, 유산의 역사성과 사회적 기여 가능성, 잠재성,  세계적 가능성 등을 평가해 최종 선정했다. 13편의 유산 가운데, 다섯 번째로 대구대의‘특수교육’을 들여다본다. 1956년‘대구맹학원’을 모체로 설립된 대구대는 시초부터 지금까지한국의 장애인 교육과 복지 분야를 선도해 왔다. 대구대는 지난 50년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적인 특수교육학을 적립하고, 장애 없는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대구대 교수의 명함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영문이 적힌 면의 왼쪽 하단에 위치한‘보이스 아이(voice eye)’다. 최근 다방면에서 사용되고 있는 큐알(QR)코드를 닮았다. 보이스아이의 역할은‘소리 눈’이란 의미에서 짐작할 수 있다. 보이스 아이는 시각장애인에게 또 다른 눈이다. 전용 스캐너를 보이스 아이 마크 위에 올리면, 해당 지면에 쓰인 문자가 소리로 번역돼 나온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대구대의 세심한 배려는 이뿐만이 아니다. 교수 연구실의 손잡이 위쪽에는 점자가 표시돼 있다. 건물 출입구 등에는 시각장애인용 유도블록(보통 노란색으로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동그란 돌기가 양각돼 있다)이 깔려 있다. 캠퍼스 내에서만은 시각장애인이 어려움 없이 오갈 수 있도록 한 배려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오래된 건물에도 엘리베이터 또는 경사로가 설치돼 있는 것은 기본이다. 얼마 전에는 대학 최초로 저상 버스를 스쿨버스로 도입했고, 장애학생지원센터에는 장애인 학생들의 학교생활과 취업 등을 보조하고 있다.

김병하 교수(특수교육과)는 장애학생을 위한 지원이 이뿐만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수업에 청각장애 학생이 들어오면, 학생이 원하는 바에 따라 속기사나 수화 통역사가 수업에 동참한다. 청각 장애 학생이 적어도 강의실 내에서만은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또 뇌성마비가 심한 학생이나 시각 장애 학생의 경우에는 시험 시간을 비장애 학생보다 더 충분히 확보할수 있도록 한다.”청각 장애 학생을 위한 수화 통역 및 속기사 지원은 지방자치단체와 대학이 비용을 부담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대다수 대학에서는 이와 같은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대가 장애 학생을 위해 이와 같이 빈틈없는 지원을 해나가는 이유는 장애인 교육이 대구대의 뿌리이자 중추를 이루기 때문이다. 대구대의 설립자인 이영식 목사는 장애인 교육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던 광복 직후, 대구맹아학교를 설립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특수교육을 시작했다. 십년 뒤인 1956년에는 특수교육 분야의 지도자 양성을 위해 한국사회사업대학을 설립, 1961년에는 한국 4년제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특수교육과를 설치한다.

이영식 목사의 장남이자 대구대의 전 총장이었던 故이태영 총장은 1955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이 목사와 함께 특수교육를 비롯한 장애인 복지 분야에 몸담았다.

대구대의 특수교육은 설립자인 이영식 목사(왼쪽)에서 시작해, 이태영 전 총장으로 이어졌다.

대구대의 초지일관

“한국사회사업대학은 설립 당시 특수교육과 단설이었다. 즉, 대구대의 모태는 대구맹아학교이고, 대구대의 모체는 특수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대구대 특수교육역사관 설립추진위원장을 맡았던 김 교수는 대구대와 특수교육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올해 50주년을 맞은 대구대 특수교육과의 역사에는 한국 특수교육의 변천사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국가가 장애인의 교육에 관심을 갖고 법을 제정한 것이 1970년 말. 그 전까지 장애인 교육은 대구대와 같은 민간 독지가들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1977년 우리나라 최초의 특수교육 관련법인‘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될 때도 대구대 특수교육과는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일본 특수교육 현장 시찰을 이끄는 등 적극 참여했다.

1979년 해당 법의 발효를 시작으로 특수교육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시작됐다. 1980년대에는 장애아동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과 일반 학교에의 특수 학급 설치가 급격히 늘어났다. 1990년대 들어 특수교육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장애 아동에 대한 의무, 무상 교육이 실시됐다. 당시 일본은 시도하지 않았던 장애학생과 비장애 학생의 통합 교육도 이때 법률적 기반이 마련됐다. 이 시기 대구대는 장애학생 교육과정 자료와 교과서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60~70년대만 하더라도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장애인 천국, 다른 한쪽은 장애인 지옥이었다. 현재는 거의 비슷한 상태에서 일본과 경쟁하고 있다. 특히 통합교육은 우리가 먼저 시작해 일본 연구자들이 많이 놀랐다”라고 김 교수는 한국 특수교육의 발전을 설명했다.

그동안 대구대는 특히 자신만의 특수교육 모델을 구축해 왔다. 그 특징은‘삼위일체’로 요약할 수 있다. 특수교육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과와 특수 교육이 이뤄지는 현장인 특수학교, 그리고 특수교육 인접 과학인재활과학 학과가 모두 하나의 캠퍼스 안에서 연계돼 있다는 점이다.

 

가운데 사진은 지난 2010년 개관한 특수교육 역사관이고, 오른쪽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점자안내수목원이다. 수목원 맞은편에는 점자도서관이 위치해 있다.

현재 대구대에는 특수교육과, 초등특수교육과, 유아특수교육과 등 특수교육 관련 학과가 3개 개설돼 있다. 직업재활학과, 언어치료학과, 재활심리학과, 재활공학과, 물리치료학과, 작업치료학과 등 재활과학 학과는 6개다. 사회복지 관련 학과와 대학원 과정을 합치면 장애 관련 학과의 개수는 더 늘어난다. 대구덕희학교 등 특수학교도 6개나 된다. 즉, 대구대의 특수교육 모델은 현장과의 연계와 재활과학의 뒷받침으로 설명할 수 있다.

대구대의 이런 사례는 미국의 학습장애 전문 저널인 <Learning Disability>에 김 교수의 글인‘한국의 특수교육과 대구대’가 게재돼 소개되기도 했다. 지금은 퇴직했지만, 시각장애인 교수가 직접 자신의 장애 분야에 대해 강의 및 연구하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임안수 교수는 점자도서관의 관장을 맡는 등 대구대의 맹인 교육 수준을 상당 수준 끌어올렸다.

지난 50년간 특수교육 분야를 선도해온 대구대의 과제는 무엇일까. 첫째는 한국 특수교육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대구대는 1990년대 말부터 한국특수교육문제연구소 등을 통해 한국만의 특수교육론에 대해 꾸준히 고민해 왔다. 외국에서 수입한 특수교육을 단순히 이식, 소개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한국 특수교육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배경으로 연구 성과를 체계적으로 적립하기 위해서다. 대구대의 이러한 노력은 1단계 BK21 사업 인문사회분야에서 지방대학 중에서는 유일하게 우수연구단으로 선정되는 등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김병하 교수는 한국특수교육론을 해외 연구자들과 평등한 수준에서 교류할 뿐만 아니라, 수출까지 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삼위일체’로 장애 관련 분야 전범위 커버

특수교육과 장애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을 한 층 더 끌어올리는 것 또한 대구대가 고민하고 있는 숙제다. 김 교수는“종전에는 장애를 개인의 잘못이나 질병으로 봤다. 최근에는 장애인이 장애를 느끼며 살 수 밖에 없는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한다. 장애를 보는 패러다임이 개인 모델에서 사회 책임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구대가 이끌어나가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방향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대구대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교육에 앞장서며, 그들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의 역할을 해 왔다. 손끝과 소리만으로도 세상을 보고, 익히는 데 불편함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대구대는 그들에게 또 한 번 희망을 선물할 것이다.

김지혜 기자 har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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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민 2016-09-19 19:45:07
명함을어떻게쓰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