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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총장실
열린총장실
  • 교수신문
  • 승인 2002.07.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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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06 11:55:44
박찬석 / 경북대 총장

여기에 쓰는 글은 총장 8년을 재임하면서 꼭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들에 관한 것이다. 교수가 총장실에 찾아오는 경우는 대개 세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예산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인사, 셋째는 공간에 관한 일 때문이다. 총장은 대학의 물적·인적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이다. 총장선거를 할 때, 자기대학 소속의 교수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이와 같은 자원배분의 문제가 있다.
막상 총장 자리에 있으면, 자원배분은 유일한 권한인데도 불구하고 그 권한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다. 돈을 나누고 사람을 배치하는 것에도 이견이 있어 불만은 있지만, 계속적으로 협의와 설득을 하면 총장이 사심을 갖지 않는 한 별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공간의 배치 문제는 예산 문제나 인적 자원의 배분 문제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공간에 대한 애착은 예산이나 인사보다 배분에 있어서 더 어렵다. 교수가 집단으로 항의를 하고 합리적인 안을 내도 좀처럼 납득하려 하지 않는다. 대학이 민주화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학은 엄청난 발전을 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역기능도 일어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교수 집단이기주의이다.
국립대학 총장은 해마다 5월이 되면 자기 대학의 시설비를 정부예산에 넣기 위해, 또는 증액시키기 위해, 교육인적자원부, 기획예산처, 청와대, 국회예산분과위원회를 동분서주하면서 뛰어 다닌다. 국고의 시설비를 얼마나 자기대학에 확충하느냐는 바로 총장의 능력을 가늠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는 아직도 사고가 경직돼 있어서 건물을 짓겠다고 하여 예산에 반영하는 수는 있어도, 강의에 필요한 조교나 연구에 필요한 연구원을 채용하겠다고 예산으로 반영해 달라고 하면, 모두가 고개를 돌린다. 정말 필요한 예산은 강의와 연구를 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시설예산에 비해 항상 뒤로 밀리고 있다.
건물을 많이 짓는 것이 기본시설이 부족한 대학에는 필요한 일이겠지만, 일반 대학으로서는 큰 부담이 된다. 대학의 자랑은 교육과 연구에 있는 것이지, 건물이 많다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건물은 역으로 대학의 비용을 증가시키고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건물을 새로 지으면, 유지비 즉, 전기비, 가스비, 수도비, 경비비용과 보수비용이 늘어난다. 그러니까 효율성이 높은 대학이란, 같은 공간에서 더 높은 교육을 하고, 더 양질의 연구를 하며, 토지와 건물의 생산성이 높고, 따라서 교육과 연구의 생산성이 높게 되는 대학이다.
대학 총장 8년동안 가장 어려웠던 일 중의 하나가 대학 공간의 재배치의 문제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대학의 공간은 건축할수록 부족하다.’ 대학의 건축물은 대학의 기본임무인 교육과 연구를 위해 공간을 제공한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교수연구실은 미국 대학의 것에 비해 크다. 그리고 대학의 공간이 교육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연구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K대학의 경우 타 대학에 비해 작은 편이지만, 지난 8년간 학생이 15.2% 증가한 데 비해 학교 시설면적은 43.7%가 증가했다. 강의실 점유율이 50%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공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공간은 유연성있게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1)교수가 장기간 출장나갈 때는 연구실의 열쇠를 대학의 행정실에 반납하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연구실 공간 배분은 간접연구비의 기여에 따라 배분해야 한다. 3)수강하는 학생 수와 교수 수에 따라서 공간이 조정돼야 한다. 4)학과의 특수성은 합리적으로 인정돼야 한다.
학생들이 쓰고 있는 동아리방에 관해서도 그렇다. 동아리마다 방을 갖고 있으면 안 된다. 학장들은 학생들에게 밀려서 동아리방을 만들어 주고, 회수하지 못한다. 학생들이 쓰는 방도 일정한 면적을 넘어가면 수익자 부담금으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동아리 방을 얻는 데도 엄청난 경쟁이 있다. 당첨된 동아리방을 일반학생의 등록금으로 유지 보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학이 유연성 없이는 대학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학교시설이라는 것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 수의 증가와 교수 수의 증가에 비례하게 돼 있다. 그러나 건물을 지을수록 부족한 것이 대학의 현실이다. 대학의 건물예산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 동안 공간관리는 대학당국, 즉 공급자 측에도 문제가 있어 왔다. 공간 배분에는 국가의 재정이 엄청나게 들어가는데도 공짜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사용자인 교수는 사용하는 공간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사람은 월급으로 계산되고, 예산은 정산이 돼도, 건물은 공짜라고 생각하게 했다. 일부사립대학에서는 공간예산제를 시도하고 있다. 공간도 엄격하게 비용으로 계산해서 알려야 한다. 교수와 학생의 연구실과 강의실 등 기본공간도 모두 대학의 예산개념으로 집행돼야 한다. 해마다 책정하는 예산과 마찬가지로 공간을 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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