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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부재 넘어 염치와 도덕성까지 상실했다
소통 부재 넘어 염치와 도덕성까지 상실했다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1.12.17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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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로 보는 2011년 한국사회

‘종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는 것은 지도자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掩耳盜鐘’을 추천하면서 김풍기 강원대 교수(고전비평)는 송나라 유학자 주희의 당부를 소개했다.

하지만 주희의 바람과는 달리 올해의 사자성어로 본 2011년은 ‘불통의 한 해’였다. 엄이도종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고른 최병두 대구대 교수는 “현 정부,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 그 주변 정치인들이 많은 잘못을 했는데도 이를 은폐하거나 호도할 뿐만 아니라 최근에 들어서는 소통을 하지 않기 위해 귀를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 한해도 4대강 사업, 역사교과서 수정 논쟁, 대통령 측근 비리, 내곡동 사저 부지 불법 매입 의혹 등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하지만 교수들의 의식에 ‘소통 부재’를 각인시킨 결정적 사건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한나라당이 날치기로 비공개 통과시킨 일이었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국가 장래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한미 FTA 등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국민의 소리는 듣지 않았다. 비준 후 대책을 마련한다고 소동이나 그것 자체가 준비되지 않는 협약을 일방적으로 맺었음을 보여준다”며 ‘소통 부재’를 지적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 후 국민 소득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하면서 국민의 저항과 반대를 외면했다”고 말했다. 고명철 광운대 교수는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자신의 치부가 백주대낮에 드러났는데도 솔직하지 못한 채 이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범부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며 최근의 SNS 심의ㆍ규제를 꼬집었다. 유석호 연세대 교수는 “아무리 자신은 옳다 생각하더라도 남을 인정하지 않는 아집과 오기로는 바른 사회를 세울 수 없다”고 충고했다.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엄이도종’은 자기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이다. 『여씨춘추』에 일화가 나온다.

 

“겉으로는 ‘소통’과 ‘공정사회’를 내세우면서도 실상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해 사리사욕을 달성하는 데 주력한 꼴”이라며 엄이도종을 고른 허진 창원대 교수의 말에서 보듯 엄이도종은 ‘如狼牧羊’과도 통한다. ‘이리에게 양을 기르게 하는 격’이란 뜻의 여랑목양은 두 번째로 많은 응답자(25.7%)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다.

최태룡 경상대 교수는 “여량목양이 더 맞는 것 같지만 표현이 너무 센 것 같다”며 엄이도종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골랐다. 반면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소통 부재를 넘어 염치와 도덕심을 상실했다”고 지적하며 여랑목양을 선택했다.

여랑목양을 선택한 교수들의 문제의식 역시 한미 FTA 비준 동의안 날치기 처리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았다. 박재묵 충남대 교수는 “지구적 차원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기업이나 사람들에게는 득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다수에게는 고통을 가져다줄 FTA를 날치기로 강행했다”라며 여량목양을 골랐다.

여랑목양을 추천했던 이승환 고려대 교수는 “몇몇 대기업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지만, 수많은 중소기업인과 농민 그리고 영세업자와 서민들은 영하의 날씨에 물대포를 맞으며 비준 동의안 철회를 외쳐야만 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잇달아 터진 측근 비리도 한 몫 했다. 최병진 광주대 교수는 “도덕적으로 깨끗한 정권이라던 대통령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측근 및 친인척 비리가 줄을 잇고 있다”라는 이유를 들어 여랑목양을 골랐다. 장옥관 계명대 교수도 “정권 말기의 부패 향상이 또 다시 불거지고 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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