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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올해의 사자성어 ‘掩耳盜鐘’
2011년 올해의 사자성어 ‘掩耳盜鐘’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1.12.17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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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거부’와 ‘무능’이 만나다

 

 

김풍기 강원대 교수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엄이도종’을 『사고전서(四庫全書)』에서 집자했다.(그림 위) 『사고전서(四庫全書)』는 청나라 건륭제가 중국과 주변 국가의 중요한 책을 모아서 편찬한 방대한 전집이다. 이 책은 1772년(건륭37) 1월 처음 책 수집을 명한 이래 1782년(건륭47)까지 10년의 세월을 거쳐 완성됐다. 대진(戴震), 왕념손(王念孫), 옹방강(翁方綱), 주균(朱筠) 등 당대 최고의 학자 360여 명이 편찬에 참여했으며, 총1만223종 17만2천626권이나 되는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掩耳盜鐘. 자기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이다. 2011년 한 해를 정리하는 ‘올해의 사자성어’에 엄이도종이 선정됐다. 엄이도종은 나쁜 일을 하고 남의 비난을 듣기 싫어서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음을 의미한다.

<교수신문>이 지난 7일부터 16일까지 교수신문 필진과 일간지 칼럼리스트, 주요 학회장, 교수(협의)회 회장, 교무ㆍ기획처장 등 주요 보직교수, 대학원장, 대학신문 주간교수, 정년퇴임한 원로교수를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다. 304명의 응답자 가운데 36.8%가 2011년 한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를 규정지을 수 있는 사자성어로 엄이도종을 선택했다.

엄이도종은 자기가 한 일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비난이나 비판을 두려워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呂氏春秋』, 『通鑑紀事本末』, 『文獻通考』를 비롯해 많은 문헌에 널리 사용된 고사성어다.

엄이도종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김풍기 강원대 교수(국어교육과)는 “FTA 문제라든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공격에 대한 의혹 등이 겹쳤지만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은 거의 없었다. 여론의 향배에 관계없이 자신들의 생각만 발표하고 나면 그뿐이었다”며 “소통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소통 부족과 독단적인 정책 강행’을 이유로 엄이도종을 선택한 강신준 동아대 교수처럼 응답자들의 생각도 김 교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독단적으로 처리해 놓고 자화자찬 식으로 정당화하면서 국민의 불만에 전혀 유념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김용찬 순천대 교수는 “선관위 해킹 사건 역시 개인의 단독범행이라는 비상식적인 주장을 서슴지 않고 있다. 6월과 10월의 두 차례  선거에서 민의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여전히 권력 다툼에 매몰돼 있다”라고 말했다.

최민숙 이화여대 교수는 “올 한 해도 대통령 측근 비리, 내곡동 사저 부지 불법 매입, 한미 FTA 비준동의안 날치기 통과 등의 문제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는데, 아직도 선관위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거부) 공격 등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소통 부재에서 연유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정문현 서원대 교수는 “교육과학기술부 정책 결정권자들이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대학인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일률적인 평가 잣대를 만들어 대학을 무한경쟁의 시장으로 내몰아 가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백승호 가톨릭대 교수는 “소통 부재는 현 정부 들어서서 계속 제기되던 문제인데 올해 들어 그 결과들이 더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엄이도종 다음으로는 25.7%가 ‘如狼牧羊’을 선택했다. 여랑목양은 이리에게 양을 기르게 하는 격이란 뜻으로, 탐욕스럽고 포학한 관리가 백성을 착취하는 일을 비유한다. 갈림길이 많아 잃어버린 양을 찾지 못한다는 ‘多岐亡羊’도 21.1%가 선택했다.

☞ 엄이도종의 유래… 춘추시대 진나라 범무자의 후손이 다스리던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했다. 그 때 백성 중 한 명이 종을 짊어지고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짊어지고 가기에는 종이 너무 크고 무거웠다. 망치로 깨서 가져가려고 종을 치니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 백성은 다른 사람이 종소리를 듣고 와서 종을 빼앗아 갈까봐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고 종을 깼다고 한다. 『呂氏春秋』에 나오는 일화다.

올해의 사자성어 어떻게 선정했나

‘올해의 사자성어’ 선정은 세 단계를 거쳤다. 각 분야 교수들의 추천, 사전 조사, 본 설문조사를 거쳐 확정했다. 우선 사자성어 추천 교수를 대폭 확대했다. 지난해에는 국문학ㆍ한문학ㆍ철학ㆍ역사학ㆍ정치학 분야 교수 10명에게 추천받았다. 올해는 사회학ㆍ경제학ㆍ교육학ㆍ민속학ㆍ이학ㆍ공학 분야 교수 12명을 포함해 모두 23명에게 30개의 사자성어 후보를 추천받았다. 대중적으로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자성어를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정년퇴임한 명예교수 7명을 포함해 세대 간 균형을 맞추려 했다.
설문조사에 앞서 <교수신문> 논설위원과 편집기획위원, 원로칼럼ㆍ문화비평ㆍ서평 필진 32명을 대상으로 사전 조사를 실시해 5개의 후보를 추렸다. 본 설문조사는 지난 7일부터 16일까지 이메일 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가나다순으로 제시된 사자성어 후보 5개 가운데 한 가지를 고르도록 했다. 교수신문 필진과 일간지 칼럼리스트, 주요 학회장, 교수(협의)회 회장, 교무처장, 기획처장, 대학원장, 대학신문 주간교수, 정년퇴임한 원로교수를 대상으로 실시해 304명이 응답했다.

▶ 사자성어 후보 추천해 주신 분들: 강명관 부산대(한문학), 김교빈 호서대(동양철학), 김열규 인제대 명예교수(인류학), 김영수 재야사학자(『사기』 번역자), 김종법 서울대(정치사상), 김풍기 강원대(고전비평), 노진철 경북대(사회학), 박부권 동국대(교육학), 박상익 우석대(서양사상사),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정치학), 박홍이 연세대 명예교수(물리학), 손홍렬 청주대 퇴임교수(한국사), 석경징 서울대 명예교수(영문학),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사회학), 송혁기 고려대(한문학), 안대회 성균관대(한문학), 유관종 충남대(컴퓨터공학), 이문원 중앙대 명예교수(교육학), 이승환 고려대(유교철학), 이택휘 서울교대 명예교수(정치학), 전호근 경희대(한국철학), 최몽룡 서울대(고고학), 허수열 충남대(경제사).

※ 사자성어 후보 추천과 설문에 응해주신 교수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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