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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서양의 지식체계 반성…중화사상으로 새로운 문명의 이념 마련할 것”
“근대 서양의 지식체계 반성…중화사상으로 새로운 문명의 이념 마련할 것”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1.12.12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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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대에서 중국 ‘인문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말한다 ②

올해 연구년을 맞아 북경대 방문학자로 있는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 前교수신문 편집기획위원)가 북경대에서 중국‘인문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 보는 특별 대담을 마련했다. 루오위리에(樓宇烈·77)의 제자로, 동서양 철학ㆍ미학ㆍ인문학에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북경대 철학과의 중진이자 북경대 철학과·미학과 학부장으로 있는 장치췬(章啟群) 교수와 5시간 넘게 대담했다. 중국의 역사 속에서 중국의 인문학이 걸어 온 길, 그리고 현재 중국 지식인의 지형도를 살펴보고, 당대 중국 지식인의 문제인식과 고민, 중국 학술의 방향을 전망하는 자리였다. <교수신문>은 중국 근현대 인문학의 역사와 인문학 지식인의 지형도를 소개한 지난 호에 이어 이번호에는 중국 3세대 인문학자의 과제를 전한다. 두 인문학자는 이후 여러 차례 대담을 가졌고 대담 내용을 보완해 내년에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출판하기로 했다.

일시 : 2011년 11월 16일 오전 11시30분 ~ 오후 5시 30분 장소 : 북경대 미학 연구실 대담 : 장치췬 북경대 철학과ㆍ미학과 학부장, 최재목 영남대 교수 기록·사진 : 서희정 북경대 박사과정 정리 :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한국과 중국의 두 인문학자가 북경대에서 만났다. 사진 왼쪽이 장치췬 북경대 철학계 교수, 오른쪽이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다. 최 교수는 현재 연구년을 맞아 북경대 방문교수로 있다.

최재목(이하 최): 지난 시간에는 중국 인문학의 근ㆍ현대 역사와 함께 오늘날 중국 지식인의 지형도 속에서 현실적 고민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장 교수님께서 구상하는 새로 구축할 중국철학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예컨대 현재 중국의 모습이 이러하다면 앞으로의 연구는 새로운 움직임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지, 아니면 1세대들이 빠뜨렸던 내용을 보완해 완성하는 형태로 갈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제 3의 방법이 등장할까요?

장치췬(이하 장): 현재 1세대 학자들이 이미 이루어놓은 업적에서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이를 보완하는 작업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외에 1세대 학자들이 이루어 놓은 사상을 통합해나가는 작업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내는 경우라면, 이미 앞에서도 말씀드렸던 3세대 학자들이 고뇌하고 풀어나가고자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이런 경우는 반드시 1세대를 넘어서야만 합니다. 이것이 3세대 학자들이 풀어나가야 할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새로운 학문체계를 만들어나갈 것인가의 문제가 관건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에 대해 저의 지도교수인 루오위리에 선생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학문체계를 세우려면 중국의 지식, 서양의 지식, 인도의 지식 모두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이 뿐만 아니라 역사, 철학, 문학적 지식 역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중국ㆍ서양ㆍ인도의 지식)은 고대에 사실상 하나였기 때문에 그래야만, 하나의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학문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학문체계가 생겨날 수 있다. 이러한 사람만이 진정한 철학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이를 실천해나가기는 실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해내지 못한다면 최선을 다해 학생을 교육하고 키워서 학생이 우리의 뒤를 이어 이 일을 해나가도록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이 작업을 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우리의 이상을 이룰 수 있는 그 날이 올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 기대가 됩니다.

장치췬 북경대·철학계 교수
56세. 북경대 철학박사다. 현재 북경대 철학과ㆍ미학과 학부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미학사와 해석학, 위진사상(魏晉思想)이다. 미국일리노이대와 네덜란드 라이덴대 방문학자를 지냈다. 주요 저서로『철학가와 시-당대 서양의 일부 미학문제에 관한 철학적 근원』『서양고전 시학과 미학』『백년중국미학약사』『오늘이란 무엇인가?』등이 있다.
장: 참, 한 가지 빼 놓고 말씀드리지 못한 부분이 있군요. 사실 3세대의 학자들도 그들의 지식구조가 아주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중국의 사회적, 현실적인 요인에 의한 결과로도 볼 수 있어요. 교육의 문제도 이에 포함되지요. 3세대 학자들은 2세대 학자들의 학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2세대 학자들은 여러 방면에서 1세대와는 먼 거리에 있었죠. 사실상 지금의 상태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세대 학자들은 중국 사상만을 파고든 채 서양사상에는 관심이 없거나, 서양 사상만을 파고들지 중국사상은 공부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한 서양에서 학문을 배우고 돌아와 중국사상을 다루더라도 그들이 다루는 내용은 아주 협소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을 전공하고 돌아와 장자만을 연구하는 식 말이죠.

최: 그렇군요. 그렇다면 새로 구축할 중국철학의 모습은 지도교수와 제자들이 하나의 팀워크를 형성해 해나가는 일련의 작업이 과학적으로 분업화돼 결국은 유기적으로 연결, 통합되는 것인가요? 여기서 유기적인 연결이란 ‘學派’의 출현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다수가 각각 분업적으로 작업을 진행시키면서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그림이 그려지는 그런 형태 말입니다. 아니면 영웅적인 인물, 즉 전통적인 비유를 하자면 聖人, 哲人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 출현해 이를 집대성시키는 형태가 될까요?

장: 루오위리에 교수의 의견에 따르면, 이 모든 작업은 반드시 한 사람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괜찮은 학자, 교수 정도가 아닌 세기를 대표할 진정한 대철학가가 출현하려면 반드시 이 모든 사상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최: 루오위리에 교수는 학파 형성 같은 것에 대한 구상은 없었나요?

장: 루오위리에 교수는 100여명의 석사와 박사를 배출했습니다. 거의 20년 세월 동안 말입니다. 이 안에는 유가, 현학, 도가를 연구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대다수는 불교를 전공으로 연구했습니다. 저의 경우는 玄學을 연구했지요. 루오 교수님이 학생을 키우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아무런 의도 없이 하나의 학파를 형성시키게 됐습니다. 루오위리에 교수가 학문을 해나가는 방법과 관념이 큰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지요. 따라서 그의 학생들 역시 어떠한 의미상의 공통점을 지니게 됐습니다.

그 공통점의 특징 중 첫째는 고전 원문의 해독을 중시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더욱 엄밀한 전통문화 이해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루오 교수는 또한 핵심적인 의견을 지니고 있었는데, 서양문화의 배경아래서 인도사상과 중국에 전파된 불교사상을 포함한 중국의 전통이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대해 명확한 의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중국문화와 인도문화는 서양문화에 의해 동일화될 수 없다는, 즉 서양문화에 먹혀버릴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중국문화는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써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독립적인 존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국 전통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보전,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최: 루오위리에 교수가 학문을 해나가는 방법과 관념이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이해됩니다. 장 교수가 생각하는 3세대 학자의 특별한 과제라면 무엇일까요? 루오 교수와 구별되는?

장: 3세대 학자의 입장에서 하나의 체계적인 새 이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대 중국의 문제라는 것은 곧 아시아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현재 중국이 대면한 문제는 중국의 문제인 동시에 한국, 동남아시아 모두가 안고 있는 공동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세계의 문제로까지 이해할 수도 있지요. 세계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근대 이전의 각 대륙과 영역들은 왕래가 이루어지지 않았었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세계화의 의미란 무엇입니까? 결국 세계를 서양의 문화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 아닙니까? 사실상 이러한 움직임은 반성이 필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서양문화로의 통일화가 과연 세계 사람들에게 행복, 평화, 발전을 가져다주었는가에 관한 문제는 반성이 필요한 문제이며 일부 서양 철학가들은 이미 이에 대한 반성을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서양이 주도하는 세계화가 사람들에게 행복, 평화, 발전을 가져다주지 못하였다면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새로운 사상의 도래를 갈망하게 됩니다. 이것은 또한 신유가 사상가들이 고뇌하던 문제이기도 하지요.

역사적인 관점에서 또 현실적인 관점에서도 지금의 서양문화는 수많은 결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말을 풀어보면 어떨까요. 사실상 서양의 역사란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그들의 발전은 전쟁과 함께 해온 발전이었고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약소국을 침략하고 식민지로 만드는 형태 말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앞으로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서양의 문화가 대면하게 된 곤경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인류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서양문화 밖에서 찾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인도 문화, 중국 문화 등에서 말이지요. 사실 중국문화는 다른 여러 아시아 국가들의 정수가 녹아있다고 할 수 있지요.

결국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현대의 중국학자들이 새로운 학문을 세우는데 있어서 서양의 학문체계를 공부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렇게만 한다고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국학자가 새로운 학문체계를 성립시킴에 있어서 다른 문화를 배척해서는 안 되며 서양만이 아닌 여러 문화를 고루 흡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중국이 서양의 문화를 접한 지는 100년의 세월이 돼갑니다. 과거 인도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이를 성공적으로 중국 문화의 일부분으로 전환시키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중국 문화로부터 떼어낼 수 없는 유기적 구성의 부분으로 말입니다. 이러한 흡수와 전환이라는 과정은 또 하나의 중국문화의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학자라는 신분으로 하나의 문화를 받아들인다면 이는 반드시 이와 같은 형태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원래 동아시아 한어문화권이 가지고 있었던 공통 경험, 근 100년간의 생활 발전 경험, 역사와 생활의 경험을 종합하는 동시에 서양문화 안에서 우수한 부분을 배우고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 후에 이를 전화시켰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중국인, 한국인, 심지어 세계 사람들 모두에게 의의가 있는 학문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최재목 영남대·철학과 교수
51세. 일본 츠쿠바대에서 석사와 박사를 했다. 동아시아 철학ㆍ사상사(양명학)를 전공했다. 하버드대와 동경대, 네덜란드 라이덴대에서 연구했다. 현재 연구년을 맞아 북경대 방문학자
로 있다. 주요 저서로『동아시아의 양명학』『내 마음의 등불이다: 왕양명의 삶과 사상』『퇴계 심학과 왕양명』『늪-글쓰기와 상상력의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등이 있다.
최: 사실 한국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근대 이후로는 계속 서양만을 바라보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것’에 대한 자각이 생기면서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많아지게 됐습니다. 다만 한국의 경우 중국처럼 서양철학을 마스터한 사람이 동양철학으로 방향을 전환시킨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일부 학자들이 함께 공동으로 논문을 쓰거나 저작을 내거나, 서양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방법론을 배워서 서양의 논리대로 재해석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의 경우처럼 서양철학을 한 사람이 동양철학으로 전향을 하거나 혹은 그 반대로 동양철학을 한 사람이 서양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거나 하는 경우는 중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습니다.

다만 여기서 아까 말씀하셨던 서양철학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같은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중국의 독자성이라는 것이 서양의 방법을 통하지 않고 발현할 수 없다면, 다시 말해 서양이 없었다면 거꾸로 중국의 독자성을 발현할 수 없었다는 말도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서양의 도움에 의해 중국이 더 잘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은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중국의 본질적인 부분은 서양의 방법이 아닌 중국의 독자적인 방법에 의해서도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닌지요?

 물론 한국에서도 이런 고민이 있어왔습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민주, 인권, 권리, 환경, 생태, 생명이라는 개념에 천착해 들어가면 중국이라는 정치현실 등과 괴리가 있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대응이 잘 안 되는 개념들 말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오히려 중국의 독자적인 개념, 학술의 방법론을 보다 더 명확히 해나가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과정에서 서양의 방법은 하나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장: 깊이 있는 사고를 하고서 던지는 질문이군요. 제 개인적인 관점은 이렇습니다.

첫째로, 역시 해석학의 관점입니다. 지금의 시점에서 중국 고대 사상에 관한 완벽한 이해가 과연 가능할 것인가, 다시 말하자면 공자, 맹자 시대의 문제를 지금의 시점에서 과연 완벽하게 해독해낼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중국이라는 영역 안에서 과연 예전의 그 시대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의 문제는 해석학의 관점에 따라 생각해볼 때 절대 돌아갈 수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원본의 이해과정에 있어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은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공자의 사상이 맹자의 사상체계에 들어서서는 다른 해석을 낳게 됐고, 순자에 와서 또 다른 해석을 낳게 됐으며, 다시 한대에 들어서면서 또 다른 해석을, 그 이후에 역시 다른 해석을 낳게 됐던 것입니다. 매 시대마다 서로 다른 해석이 있어왔다는 것이지요. 새로운 것을 해석해 내는 순간 또 다른 방면으로 원래 내용의 일부를 상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해석의 과정입니다.

둘째로, 매 시대의 사람들은 그 시대의 철학을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철학은 지금 시대의 철학을 의미합니다. 한 시대의 철학은 그 시대의 철학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맹자는 맹자시대의 철학을, 순자는 순자시대의 철학을 해왔습니다. 신유가 역시 이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신유가라고 한다면 반드시 이 전의 유가와는 다를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 방면에서 분명히 예전의 사상가들에 이르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그들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얘기죠.

셋째로, 외부에서 들어온 특히 서양에서 들어온 사상과 방법론이 중국 고유의 사상과 격리되는 상황, 마치 정육점에서 고기를 잘라내듯이 떨어져나간 상황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두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외부에서 들여온 방법론으로 고전사상을 분석, 연구하는 것은 성공적인 결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마치 불교를 들여와 유교적인 시각으로 접근한 결과 理學, 心學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사실 불교는 인도에서 들여온 오래된 사상 아닙니까? 그러나 이에 유교적, 도교적 해석을 통해 이들 사상이 종합됐을 때 결과적으로 그 사상은 발달하게 된 것입니다. 서양의 방법론으로 중국 고대 사상을 연구할 때, 그 과정에서는 반드시 잃어버리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면에서는 성공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까 말씀드린 비트겐슈타인식의 장자연구를 봅시다. 개인적으로 한 교수의 장자연구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그 예로 장자가 논한 바 있는 ‘오상아(吾喪我)’라는 개념을 들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다(I lost myself)”는 것. 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상 예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를 해석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에 한 교수는 ‘吾’를 ‘다자인(Dasein)’(=현존재)이라는 존재론적인 존재로 해석했던 것이죠. ‘오’는 존재하는 그 자체로 어떠한 방법으로도 잃을 수가 없습니다. 죽지 않는 한은 말입니다. 잃어버림(喪)의 대상 ‘我’는 무엇이겠습니까. 이때의 ‘아’는 나 자신에 대한 체험의 대상으로써의 자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남은 것이 무엇인가? 사실상 ‘나’라는 존재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죽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경험의 대상으로써의 나는 이미 해체된 것입니다. 이는 20세기 언어철학을 중국사상사 안에서 성공적으로 활용한 하나의 실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은 서양의 방법을 들여와 활용하는 그 자체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관건은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가 아닌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가 되겠지요. 이는 yes, no의 문제가 아닌 ‘How’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서양철학을 적절히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장악하고 있어야 하며,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국 고대서적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갖추지 못했을 때 서양의 방법론과 동양 사상의 내용은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대륙의 학자들이 이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은 서양 철학의 문제로 돌릴 수 없는 것이고, 서양철학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적받겠죠.

최: 저도 진정한 중국철학 즉 실체화된 중국철학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 결국 철학이라는 것은 각 시대의 반영이고 경험, 방법의 투영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 제가 동의하고 있는 바는 바로 ‘how’라는 것. 방법이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요.

장: 예. 동의합니다. 오로지 심도 있는 대화와 교류를 통해서만이 그 내용을 확실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중국, 한국, 일본의 교류는 더욱 증가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이러한 교류활동이 중국 학문의 발전에 있어서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사회생활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은 아직도 낙후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경제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하더라도 사실 우리의 발전이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니까요.

사실 한국과 일본이 일찍 발전해 상당한 단계에 와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의 경우 사회발전 과정에서 겪게 될 문제를 이미 일찍이 깨닫고 고뇌해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이러한 문제들을 이제야 막 깨달았고 따라서 한국과 일본이 유사한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 해결했는지 자세히 살펴봐야 비로소 우리들도 이에 비춰 우리에게 의미 있는 방향으로 사고를 진행시켜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가벼운 사회생활에서의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제가 보기에 한국 학자들의 서양철학에 대한 이해방면에서 중국과 비교해보았을 때 전반적으로 더 높은 소양을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제를 말할 때 아주 명확한 방식으로 그들의 사상을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그들이 받아온 더 높은 수준의 현대교육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들이 해왔던 철학적 훈련도 매우 현대적이고 다시 말하면 서양적인 것이었지요. 그래서 그들이 서양철학과 동양철학 모두 명백하고 정확한 사고를 진행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 아 그런가요?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이러한 문제들이 문화의 번역, 번안의 문제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 와서도 느낀 것이지만 샤브샤브를 중국식으로 풀어 사용한다던지, 혹은 大丈夫의 ‘丈夫’를 한국에서는 ‘사나이’를, 중국에서는 ‘남편’을, 일본에서는 ‘괜찮아’(다이죠부/大丈夫)로 달리 쓰이는 것처럼 개념 발전의 차이를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또 ‘존재’, ‘보편’ 등도 서로 다른 개념의 발전을 보여 왔습니다. 따라서 어찌 보면 이는 언어의 문제이죠.

 한국은 역사적으로 원본주의, 즉 실천적으로 원어 그대로를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강했기 때문에 번역과 이러한 원어주의가 낳은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그 대신에 개념은 일본이나 중국을 통해 많이 들여왔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그 개념을 고치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이처럼 결국은 ‘번역’이라는 문제에 기인하는 게 많은 것 같습니다.

 중국의 경우 독자적인 문화로 번역을 해왔지만 한국은 번역을 하는 데 일본과 중국을 거쳐 번역 된 것을 취사선택하는 경향도 보입니다.

장: 아,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시간이 없군요. 다음에 또 대담의 기회를 갖기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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