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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고급인력, 꿔다 논 보릿자루?…대학·학계 우려
국내 고급인력, 꿔다 논 보릿자루?…대학·학계 우려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2.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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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해외 우수인재 확보 경쟁에 난처한 대학들
대기업들이 ‘우수인재 확보만이 살길이다’며, 우수인재 유치를 위해 해외로 나가고 있다. 기업들의 해외대학 석·박사 졸업생 선호현상은 이미 수 년 전부터 일고 있는 현상. 그러나 국내 대기업들이 이처럼 해외대학 졸업자로 연구인력을 충원하는 경향이 커질수록, 국내 우수학생들의 외국 유학행을 부추기고, 결국 국내대학 석·박사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학계의 우려가 크다.

삼성은 최근 현재 1만1천명 규모의 석·박사인력을 해마다 1천명씩 늘리기로 방침을 정하고 해외 우수대학 유학생들과 현지인력을 대상으로 연구개발, 마케팅, 금융, IT분야 인력학보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엘지전자도 연구개발인력과 경영학 석·박사인력 1백여명을 뽑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현재 ‘해외 우수인력 유치단’을 미국에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현대자동차, 에스케이, 포스코 등 다른 대기업들도 해외주요대학을 대상으로 한 채용 설명회를 준비하고 있거나 이미 채용을 마쳤다. 각 기업들은 국제화에 따라 외국에서 근무할 인원을 현지인력으로 충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한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들의 해외인력확보 행보에 대해 국내 학계에서는 국내 대학의 교육과 연구에 찬물을 끼얹고, 국내 대학들이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최형진 성균관대 정보통신대학원장은 “인력이 부족하다는 정보통신분야에서도 국내 박사의 경우 학위를 따고도 자리 잡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국내기업들이 “해외박사에 대한 선호가 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일부 기업에서 같은 박사급 연구인력이라고 하더라도 국내대학 학위자냐, 해외대학 학위자냐에 따라 연봉에 차등을 두는 것도 이러한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경섭 한양대 공과대 학장도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기보다 장기적으로 국내인력을 양성하는데 일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나친 해외대학 졸업자 선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는 우려도 이어진다.

이병희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 전문위원은 “과거 기업들이 짧은 시간안에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했다면, IMF 이후에는 즉시 산업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찾고 있다”며 기업의 지나친 욕심을 지적했다. 반상진 전문위원(순천대 교직과)도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배출하는 기본적인 책임은 대학에 있다”는 전제하에 “외국에 비해 국내 기업들은 대학에 대한 투자에 인색하다”며, 고급인력 수급에 따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물었다.
이러한 학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한국대학의 경쟁력이 높아지지 않는 한 기업들의 해외대학 출신 인력충원경향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업들이 내세우고 있는 전략분야가 정보통신 등 고가의 실험장비가 뒷받침 돼야 실질적인 교육이 될 수 있는 학문인 것을 고려할 때 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대학의 인프라 구축을 위해 투자하는 것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진미석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직업진로정보센터소장은 “최근 국내 유수 대학에서조차 이공계 분야에서 대학원 미달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실험기자재가 낙후돼 교육이 뒤쳐지고 있는 것도 한가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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