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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고전]<31>노엄 촘스키의 『통사 구조론』(1957)
[우리 시대의 고전]<31>노엄 촘스키의 『통사 구조론』(1957)
  • 교수신문
  • 승인 2002.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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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7 10:46:09

노암 촘스키(Noam Chomsky, 1928~)
1928년 12월 7일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출생, 펜실바니아 대학에서 1955년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51년에서 1955년까지 하바드대학에서 특별연구원을 지내는 동안 낸 ‘변형분석’이란 제목의 박사 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1957년 ‘통사구조’라는 이름의 책을 출간했다. 1955년 MIT의 교수로 취임, 1961년 현대언어학부의 정교수로 임명됐으며, 1976년에는 석좌교수가 됐다. 세계 유수의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미국심리학회에서 DSCA(학문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주는 상), 기초학문을 대상으로 한 교토상, 헬름홀츠 메달 등 다수를 수상했다. 시카고 트리뷴은 촘스키를 인류 역사상 가장 자주 인용되는 여덟번째 인물로, 뉴욕 타임스는 그를 ‘생존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언어학뿐만 아니라 정치학· 철학·인지과학 등에서 70여 권의 저서와 1천여편의 논문을 발표한 정력적인 학자이자 미국의 소수민족 문제, 외교정책에 걸쳐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행동파 지성으로 알려져 있다.

소쉬르를 언급할 때 랑그와 빠롤이 연상되듯, 현대 언어학은 촘스키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구조주의 언어학이 과학적 엄밀성을 탐구하면서 관찰 가능한 언어자료만을 연구의 대상으로 하여 언어 기술(description)에 치중했는데, 이러한 기술주의 전통을 일거에 바꾸어 놓은 것이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이다. 그의 새로운 언어이론은 유한수의 언어 코퍼스를 이용하여 규칙과 법칙을 찾아내고, 그것에 의해 무한수의 문장을 생성해낼 수 있는 구조적 관계를 찾아내고자 한다(49쪽). 이러한 목표와 정신은 이후 ‘통사이론의 제양상’(1965), ‘지배와 결속이론’(1981), ‘최소주의 언어이론’(1995) 등을 거치면서 크고 작은 변화를 겪게 되지만, 기본적으로는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층구조와 표층구조, 변형, 보편언어, 언어생득설, 언어능력, 언어수행 등으로 촘스키의 언어이론이 점차 확대되고, 정교해지고, 또 추상화되면서, 이러한 개념들이 언어학 뿐 아니라 인접학문인 인지과학, 철학, 정치학, 생물학 등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 의미에서 변형문법의 효시가 된 ‘통사구조’(1957)는 매우 중요한 저서가 아닐 수 없다.

‘통사구조’는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출판된 1백여쪽 분량의 작은 책자로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3장은 마코브(Markov) 식의 유한상태문법을 간략히 소개하고, 이러한 문법은 ‘if ~then’ 등의 상호 의존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4장과 5장에서는 미국 구조주의 학파가 사용하던 구구조문법 및 직접구성성분 분석법을 소개한 후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I found the boy studying in the library”와 같은 문장이 내포하는 중의성에 대해 구구조문법은 아무런 설명도 해줄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촘스키는 구구조문법의 한계를 지적한 후(82쪽), 대안으로 구구조규칙과 변형을 갖춘 새로운 문법, 즉 변형문법을 제안한다. 이어 7~8장에서는 영어에 관한 몇 가지 변형의 예를 보여준다. 변형에는 “The man hit the ball”과 같은 문장에서 ‘hit+past→hit’로 되는 필수적 변형이 있고, 수동변형과 같은 수의적 변형이 있다. 수동태의 경우 구구조문법은 수동태와 능동태 문장 사이의 상관성을 포착할 수 없는데 반해, 변형문법은 기저구조(혹은 핵문장)에서 변형에 의해 수동태 문장을 도출함으로써 문법을 간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어 9장에서는 통사론과 의미론의 관계를 논의하면서, 기존의 주장과는 달리 의미와 유리된 자립적 통사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통사구조’는 기존의 언어이론이 언어 코퍼스를 이용해 문법을 결정하는 발견절차나, 문법과 언어 코퍼스를 비교함으로써 주어진 문법이 올바른 것인지를 결정하는 결정절차를 제공할 뿐이지만, 변형문법은 경쟁관계의 문법들을 평가하는 평가절차를 제공하는데, 우리의 소박한 목표는 바로 이러한 평가절차를 찾는 것이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목표는 촘스키 언어이론의 1차적 집대성본은 ‘통사이론의 제양상’에서 유아의 언어습득을 설명할 수 있는 설명적 타당성을 갖춘 이론의 정립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으로 확장된다. 설명적 타당성을 갖춘 언어이론을 정립하기 위한 시도는 80년대에 이르면서 규칙을 배제하고 보편문법을 구성하는 원리들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고, 90년대 이후 언어 생성의 생물학적 조건을 규명하려는 새로운 연구과제로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통사구조’는 MIT에서의 강의를 기록한 것으로 초기 변형문법이론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보여준다. 따라서 현재의 기준으로 이 책을 평가한다면 여러 가지 이론적 미비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가령 보편언어를 추구하는 촘스키의 생성문법에서 보자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각종 변형의 예들은 언어-특정적이고, 구문-특정적인 현상들에 머물고 있고, 변형규칙 자체의 존립 근거가 미약하다. 수동변형을 도입함으로써 구구조문법이 누릴 수 없던 간결성과 일반성을 얻을 수 있었지만, 오늘날 수동변형규칙은 격이론이라는 모줄(module)로 흡수됐다. 의문문 변형규칙과 같은 선형 순서를 이용한 변형규칙들은 이제 구조의존적이고 언어보편적인 새로운 원리로 흡수되었다. ‘통사구조’에서 제시된 언어이론(혹은 문법)이 다분히 통사론 중심의 언어이론이 되고, 음운론이나 의미론이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통사구조’는 당대를 풍미하고 있던 구조주의 기술언어학의 종언을 고하고, 언어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중요한 저서이다. 기저구조에 변형을 가해 표층구조를 생성한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언어보편적인 기저구조 즉 보편언어(universal language)를 상정하게 됐고, 인간은 보편언어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언어생득설로 이어지면서 스키너 등의 행동주의 심리학이 주장하는 언어학습이론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촘스키 언어학은 탄생과 더불어 미국 북동부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유럽과 아시아 등 전세계에 걸쳐서 왕성하게 논의돼왔으며, 오늘날은 언어의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생물학적 조건을 규명하기 위한 새로운 탈바꿈을 하고 있다.

장영준 / 중앙대·영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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