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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선 행운의 동물, 서양에서는 악의 상징
중국에선 행운의 동물, 서양에서는 악의 상징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1.12.07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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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53 박쥐

박쥐는 야행성 동물로 해질 무렵 가장 활발한 활동을 시작해 밤새도록 먹이를 찾는 야간 비행의 명수요, 코로 초음파를 쏴 쉬이 먹잇감을 찾고 방해물도 척척 피한다고 하니 신통방통한 동물이다. ‘??之役’이란 우리말로 ‘박쥐구실’인데 이는 제 이익을 노려 유리한 편에만 붙좇는 행동을 이르는 말이다. 무엇보다 하늘을 나는 유일한 젖빨이동물(哺乳類)에다, 더욱이 거짓말처럼 먹이를 찾아 멀리는 800km를 난다. 얼씨구, 하룻밤 새 서울과 부산을 왕복한다고.

한참 어둠이 내리는 한여름 밤, 저녁밥을 먹고 바람을 쐬러 마당에 나와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놈들이 후루룩후루룩 머리 위를 휙휙 헤치고 날아대니 낢이 너무 빨라 눈이 따라가기 바쁘다. 그러나 어쩐지 꺼림칙하고 섬뜩한 것이 기분이 영 안 좋다. 이들은 길짐승이 있는 곳에서는 날개를 접어 ‘나는 짐승’이라 하고, 날짐승들한테서는 날개를 쭉 펴서 ‘나는 새’라 해 언죽번죽 제 편의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이리 붙고 저리 붙는 유달리 反覆無常한 지조 없는 행세를 한다. 이렇게 ‘박쥐 족’, ‘박쥐의 두 마음’을 가진 인간말자들도 쌔고 쌨다. 희지도 검지도 않은 회색인간들 말이다.

하늘을 나는 유일한 젖빨이동물

박쥐(bat)는 머리와 몸통이 쥐를 빼닮았지만, 앞ㆍ뒷다리 사이에 있는 얇고 넓은 飛膜(thin webbed wings)으로 날 수 있어 영판 새로 ‘날개와 손’, 둘을 다 가졌다는 뜻으로 翼手類(Chiroptera, ‘cheir’는 ‘손’, ‘pteron’은 ‘날개’란 뜻임)라 하며, 날다람쥐 같이 나는 것은 진짜 날개 짓을 해 나는 것이 아니라 滑降(gliding)일 뿐이다. 새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헤집고 다니면서 입으로 능수능란하게 벌레를 잡기도 하지만 비막에 예민한 촉각기관이 나 있어 날개로 채기도 한다. 짧은 앞다리는 엄지발가락을 제하고 발톱이 모두 숨겨져 있고, 뒷다리는 5개의 발가락이 죄다 밖으로 불쑥 튀어나와 박쥐는 머리를 아래로 둔 채 동굴 벽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박쥐와 거미랑은 나름대로 쏙 닮았다.

북극과 남극을 제외한 모든 곳에 자그마치 1천240종이 서식하며 한국엔 기록상으로 ‘붉은박쥐’를 포함해 15종이라지만 과연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중국어로 ‘박쥐’를 ‘??’이라 하는데, 편복의 ‘?’과 행복을 뜻하는 ‘福’자 발음이 같아서 중국 사람들은 박쥐를 장수와 경사, 행운의 동물로 여겨 공경해 받들지만(우리도 그런 편임) 서양에서는 악의 상징이거나 악마의 대명사로 생각한다고 하니 나라마다 보는 눈이 다르다.

박쥐는 수천 마리가 큰 무리를 이루는 것과 몇 마리가 모여 사는 종이 있으며, 주로 인적이 드문 동굴에 서식하지만 허름한 廢坑, 廢家, 다리 틈새, 고목에 생긴 구멍 따위에도 산다. 과일, 꽃물, 척추동물에다 더해 피를 먹는(vampire bat) 것도 있지만 4분의 3은 모두 곤충을 먹는 食蟲무리다. 해충을 잡아먹으니 사람에게 유익한 동물로 한 시간에 수천 마리, 하룻밤에 체중의 3분의 1 무게의 곤충을 잡는다고 하니 응당 박쥐가 없다면 곤충이 한없이 는다.

박쥐는 冬眠(hibernation)하는 동물을 대표하며, 이때는 근방에 흩어져 살던 놈들이 한 곳에 빼곡히 모여와 다닥다닥 여러 겹으로 우글우글 똘똘 뭉쳐 커다란 덩어리를 이룬다. 근 5~6개월간 지친 잠에 푹 빠지면 체온이 6℃까지 떨어져 양분의 소비가 팍 준다. 주변 환경에 따라 새끼를 한해에 1~3배를 낳으며, 한 배에 한 마리씩 낳는다.

영리하면서도 억척같은 생식 작전

박쥐 암수는 가을에 짝짓기 하지만 난자와 정자가 곧바로 수정하지 않고 생식기관에 머물고 있다가 봄이 돼서야 수정을 하니, 이를 지연수정(delayed fertilization)이라 하고, 이것은 북극곰 등 절박한 겨울나기를 하는 동물들의 공통특성이다. 또 난자와 정자가 수정이 되더라도 발생(난할)을 않고 受精卵 상태로 머무는 지연착생(delayed implantation)도 한다.

봄이 왔다 해도 겨우내 굶어 까칠하고 ‘발라낸 생선 뼈 같이’ 앙상하게 여윈 몸이라 생식에 정신을 팔수가 없으니 이토록 살이 찐 가을에 미리 채비(짝짓기)해 뒀다가 따뜻하고 먹을 것이 많은 봄철에 차차 낳아 걷어 키우겠다(6~8개월간)는 영리한 박쥐의 억척같은 생식 작전이다!

박쥐(수명은 20년)는 오랜 동굴생활에 가뜩이나 눈은 당달봉사가 됐지만 귀는 초롱초롱 무척 밝다. 생뚱맞게도 콧소리로 먹이와 짝을 찾고 적을 알아낸다. 소리(17가지의 신호가 있다함)의 메아리(echo)로 장해물이나 먹이, 천적의 방향·위치(location)를 탐지하니, 코에서 초음파(5만~10만Hz)를 매초 수회~수십 회씩 연거푸 쏴 그것이 장애물이나 먹잇감에 닿아 돌아오는 反嚮探知(echolocation)를 예리하게 발달한 귀로 듣는다. 놈들은 잠잘 때를 빼고는 줄곧 콧구멍에서 구시렁구시렁 소리를 쏘아대니 쉴 때는 보통 1초에 5회, 날 때는 20~30회 정도라 한다. 불세출의 이 영명한 동물이(도) 다랍고 같잖은 인간꼬락서니가 보기 싫어 깡그리 저승의 뒤안길로 줄행랑치고 있다니 저 일을 어쩌나. 큰일 났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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