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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진보 정당 10% 득표의 의미
[신문로 세평] 진보 정당 10% 득표의 의미
  • 유팔무 한림대
  • 승인 2002.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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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6 13:23:54
이례적인 월드컵 열기 속에서 치러진 6·13 지방선거는 그 결과도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선거결과는 한나라당의 압승, 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의 참패, 진보정당들의 약진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이번에 처음 실시된 광역의원에 대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선거를 통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정당별 득표는 유효득표수 1천6백47만3천4백86표 가운데 한나라당이 과반수인 8백59만1천2백99표(52.2%), 민주당이 4백79만2천6백75표(29.1%)로 집계됐으며, 민주노동당은 1백33만9천7백26표(8.1%)로 3위, 자민련은 1백7만2천4백29표(6.5%)로 4위, 사회당과 녹색평화당은 각각 1.6%와 1.3%를 득표해 그 뒤를 이었다.

각 정당들의 이념적 성향을 보수-중도-진보의 스펙트럼으로 놓고 본다면, 자민련(보수)-한나라당(중도보수)-민주당(중도)-녹색평화당(중도진보)-민주노동당(진보)-사회당(진보좌파) 순서라 할 수 있으므로, 보수정당은 60%, 중도정당은 30%, 진보정당은 10%를 득표한 셈이다.

한나라당과 진보정당의 승리에서 가장 큰 몫을 한 것은 여당인 민주당과 준여당인 자민련의 실패에 따른 반사이익이었다. 민주당 참패의 직접적인 요인은 대통령 아들들이 관련된 게이트 사건, 즉 부정부패였으며, 그 결과는 1인보스 정치와 지역주의의 참패로 이어졌다. 공동정권에 참여했다 빠졌다 해온 준여당 자민련의 ‘기회주의’ 역시 민주당과 동반 참패를 당했으며, 그 결과는 1인보스 정치와 지역주의 정당의 참패였다.

그러나, 이러한 1인보스·지역주의 정당들의 참패가 한나라당과 진보정당들에게 반사이익을 가져다주기는 했으나, 또 다른 1인보스·지역주의 정당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 것 같지는 않다. 거기서 떨어져 나온 표들은 이회창, 혹은 권영길 1인보스(?)나 ‘영남패권주의’를 쫓아간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색깔(보수·진보의 이념과 정책)을 쫓아간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1인보스·지역주의 정당들의 패배, 탈지역주의·이념정당들의 승리였으며, 87년 이후 지속돼 온 3김 시대와 지역주의 시대를 무너뜨리기 시작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는 이변이 없는 한, 월드컵 8강진출보다 더 큰 이변으로 우리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는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우리나라 진보정당은 지난 10여년간, 그리고 지난 선거때까지만 해도 전국평균 1% 득표수준을 맴돌았다. 그것이 이번에는 10%선으로 뛰어 올랐다. 이는 정당명부제 덕이기도 하지만, 인물중심·지역중심 투표행위가 줄어들고 그 대신 정당 자체의 성격이나 이미지, 이념적 성향을 보고 투표하는 경향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 내부에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고, 국민들에게 파급돼 나갔다. 민주당 내의 ‘쇄신파’ 등장, 상향식 공천제도 채택, 대선후보 경선과정, 노무현 돌풍과 ‘색깔론 공방’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색깔을 공공연히 밝히는 풍조가 ‘시민사회’ 공론영역으로도 번져나갔다.

그래서, 연예인 하리수가 커밍아웃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처럼, 이념적인 색깔을 떳떳이 밝히는 ‘커밍아웃’이 국민들 사이에서 진행됐다.

그 사이 언론기관들도 한 몫 했다. 적지 않은 언론기관들이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당신의 보수-진보 색깔을 밝히시오”라는 질문을 던지고, 응답결과를 대서특필해 커밍아웃을 촉진했던 것이다. 설문조사들에서는 예상보다 진보 표가 많이 나왔다. 진보 쪽 사람은 어림잡아 12∼25%에 달했다.

이 진보 쪽 사람들은 그 동안 보스정치, 지역주의 정치에 의해 왜곡되고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들로 잠복해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 선거에서 ‘인의 장막’을 걷고 떨어져 나와 커밍아웃, 진보정당 쪽으로 투표했다. 일부 보수적인 민주당 지지자층은 한나라당 쪽으로 갔다.

전반적으로 보아 정치적인 풍향의 변화는 이번 선거를 통해 그 윤곽이 드러났다. 전망도 드러났다. 이변이 없는 한, 민주당은 향후 ‘쇄신’의 진통을 거듭할 것이며, 3김 시대를 넘어 근대적인 이념정당으로 변화해 갈 것이다. 그러나, 다수파가 되는 일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잘 하면 30% 정도의 지지를 유지할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 보수주의에 반대하는 40∼50% 유권자들의 표 가운데 10∼20%는 진보정당 쪽으로 갈 것이다. 만일 사태가 악화돼 민주당이 두 개의 정당으로 나누어지는 경우, 진보정당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제1야당의 위치를 차지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진보정당들이 어떻게 임하느냐에 따라 그 실현가능성 또한 커지거나 줄어들 것이며, 이 점은 진보정당 하기에 달렸다.

유팔무
한림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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