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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반론] 정영섭 교수의 국립대학지원 위헌소송에 대해
[재반론] 정영섭 교수의 국립대학지원 위헌소송에 대해
  • 교수신문
  • 승인 2002.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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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6 23:55:33
‘학벌없는사회만들기’(대표 정영섭 건국대 경제학과)가 정부의 국립대학 지원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한 것을 계기로 국립대학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교수신문 226호, 228호, 230호). 현재의 국립대학 정책이 시장원리를 위반한 것이라는 정영섭 교수의 재반론에 대해 이제환 교수가 ‘우리나라 대학현실을 무시한 위험한 처방’이라고 답변해 왔다.

‘학벌없는사회만들기’(대표 정영섭 건국대 경제학과)가 정부의 국립대학 지원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한 것을 계기로 국립대학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교수신문 226호, 228호, 230호). 현재의 국립대학 정책이 시장원리를 위반한 것이라는 정영섭 교수의 재반론에 대해 이제환 교수가 ‘우리나라 대학현실을 무시한 위험한 처방’이라고 답변해 왔다.

참으로 딱하다. 정영섭 교수의 ‘재반론’을 접하자니 가슴이 답답해 온다. 도대체 논점이 무엇인가. 공론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 ‘근거도 없는’ 동일한 주장을 반복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사립대 교수가 국립대 폐지론을 주장하여 얻고자 함이 무엇인가. 국립대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사립대로 돌려 작은 혜택이라도 얻고자 함인가. 아니면, 국립대를 ‘개혁’하겠다는 교육부의 정책을 앞장서 대변하고자 함인가. 설마 그렇진 않다고 믿고 싶다. 정교수는 아마도 이 나라 대학의 장래가 염려스러워 그렇듯 ‘무리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다 하더라도, 정교수의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문제를 치유하려면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적합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진단과 처방은 아무나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전문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의 견해를 존중한다. 비록 대학에 몸담고 있다고 할지라도, 필자와 정교수는 대학정책의 전문가가 아니다. 따라서 ‘잘못’을 지적하고 원인을 규명하는데 한계를 갖는다. 당연히 섣부른 처방을 제시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교수의 글에는 ‘그릇된’ 진단과 ‘위험한’ 처방이 난무하고 있다.
정교수는 작금의 사립대 위기가 경쟁(?) 상대인 국립대의 ‘턱없이’ 낮은 등록금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등록금 경쟁을 공정하게 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데, 국가가 국립대에만 ‘편파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사립대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진단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가 제시하는 처방 또한 단순하다. 국 사립대 가릴 것 없이 시장논리에 따라 공정한 경쟁을 하자는 이야기이다.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결국은 국립대의 폐지를 통해 사립대의 위기를 극복해 보자는 발상이다.
정교수의 이러한 진단과 처방은 너무도 자의적이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사립대의 위기는 교육부의 무책임한 대학정책과 일부 사립대 소유자의 ‘자질 미달’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교육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사립대의 설립을 마구잡이로 허가하고 직업수요조차 고려하지 않고 학과와 정원을 증설해 온 교육부의 잘못된 대학정책이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며, 대학장사에 몰두하고 있는 일부 사립대 소유자의 몰지각한 행태가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진단에 대해 정교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정교수는 국립대 폐지의 당위성을 예의 시장논리에서 찾고 있다. 그의 시장논리에 있어 자유와 평등은 ‘대체적’ 개념이다. 그는 평등을 부르짖던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은 강조하면서도, 평등을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노력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필자는 경제이론가도 사회사상가도 아니지만 자유와 평등은 인간사회의 가치를 최대화하기 위한 ‘보완적’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자유 못지 않게 평등도 중요하고 시장 못지 않게 복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교수의 주장대로라면, 평등과 복지를 구현하기 위한 각종 ‘공공기관’을 시장논리에 따라 모두 폐지하여야 한다는 말인가.
정교수의 ‘근거 없는’ 주장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정교수는 “지방소재 국립대 학생들의 대부분은 대학입학을 위해 과외를 받았을 정도로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재력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필요성을 상실해버린 국립대를 유지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와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참으로 갑갑하다. 제자들의 어려운 생활을 접할 때마다 자신의 경제적 무능력에 진저리를 치곤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찌 사회과학자가 객관적 근거도 없는 이야기를 무책임하게 늘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정교수는 아직까지도 서울대가 이 나라의 유일한 국립대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교수의 주장대로 지방소재 국립대가 민영화된다면, 서울의 일부 사립대는 분명히 이득을 볼 것이다. 지방학생들의 서울소재 사립대에 대한 선호도가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방소재 국립대의 경쟁력은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들 국립대가 학생충원을 못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면 그것은 오판이다. 지방인들에게 지역의 국립대는 단순한 고등교육기관이 아닌 지역의 역사이자 문화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히려 국립대에 비해 지명도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지방소재 주요 사립대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이쯤에서 정교수에게 권고하고 싶다. 정교수가 이 나라 대학의 장래를 진정으로 염려한다면, (국립대 문제는 전문가와 당사자들에게 맡겨두고) 국가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고도 경쟁력의 제고는커녕 부실로 얼룩져 가는 사립대의 개혁방안을 강구해 봄이 어떠한가. 정교수의 전공인 ‘시장논리’를 적용하면 될 것이다. 부실 사립대에 대한 교육부의 직무유기를 나무라면서, 부실 사립대는 시장논리에 맡겨 과감히 정리하고 건실한 사립대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강화하라고 호소하면 될 것이다. 사립대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시장논리’에 분명히 어긋나지만, 거기까지는 애써 눈감아 주련다.

이제환
부산대·문헌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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