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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의 순간을 담은 로마시대의 漂石, 폼뻬이
멸망의 순간을 담은 로마시대의 漂石, 폼뻬이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 승인 2011.11.28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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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유랑·상상·인문학> ⑦폼뻬이, 종말의 잔해를 가로지르며

나폴리에서 폼뻬이로 가는 도중에 바라본 베수비오 산. 사진=최재목

로마에서 나폴리로, 나폴리에서 다시 폼뻬이로 갔다. 비운의 死者들과 만나고 싶어서다.

2300년 전 쯤 형성돼, 그리스의 지배를 받은 뒤 로마 통치 하에 들어갔다는 폼뻬이. 매몰 당시 농상업의 중심지이고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였다.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의 화산 폭발로 엄청난 화산재와 암석이 쏟아졌고, 미처 피하지 못한 2000여명 정도가 2~3m나 되는 화산재 밑에 생매장되었단다.

고대 로마 제국과 시간을 같이 하던, 그들 욕망의 꼬리는 ‘동작 그만!’ 화산재에 밟혀 봉인되었다. 인근 헤르쿨라네움, 스타비아이도. 이 스토리는 자칫 “아담이 밭 갈고 이브가 빨래하던”것처럼 전설로나 남을 뻔. 다행히 로마의 작가 小플리니우스처럼 그런 순간에 입회한 사람들이 죽은 자를 招魂할 기록과 기억을 전했다.

마리나문 입구 모습. 뽐뻬이 빌라 데이 미스테리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사진=최재목
폼뻬이는 줄곧 잊혀 졌다가, 16세기말에야 소규모로, 174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발굴이 시작된다. 여기에 독일의 고고학자·미술사가 빙켈만이 제대로 된 발굴을 건의하기도. 이후 발굴은 계속되어 오늘에 이르나, 미완 상태다.

종말의 순간, 그 백미러에 비친 로마시대 사람들의 절정의 순간은 어땠을까.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입 다문 상처의 껍질을 벗겨내, 그 진실에 가 닿고 싶다. 내 생각 속에서 따사로이 데워져(溫故) 다시 새로이 살아나는 그들의 몸짓엔 로마시대의 아이덴티티가 꼭꼭 숨어 있겠다(知新).

이런저런 생각 중, 기차는 이미 폼뻬이 빌라 데이 미스테리역에 도착. 거기서 얼마 안 되는 거리의 마리나문(왼쪽 사진)을 지나면, 바로 이오니아식 원주가 보이고 권력에 봉사한 이런 저런 ‘신전’이 나타난다. 그리고 도시의 중심지로 각종 행정기관, 공회당을 갖춘 너른 광장 ‘포로’(Foro)(아래 사진)도. 어디서 많이 본 풍경 아닌가.

 

포로(광장). 왼쪽으로 이오니아식 원주가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이고, 정면에는 신전이, 그 너머로 베수비오 산이 보인다. 사진=최재목

그렇다. 로마에서다! 그들에게 ‘공간’은 권력 곁에 ‘부재=비존재’의 성스러움을 바싹 끌어당겨 놓은 팽팽한 거미줄 구조와 같다. 물건의 배치=디자인을 통해, ‘그 너머’를 표상하는 문맥에 발을 담구고, 이단 옆차기를 해대던 권력.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로 하여금 없는 것들을 떠들어 대도록 해놓은 항구적 장치. 그들은,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라는, ‘은유’법에 기댔다. 공간 속에 놓인, 연관 있는 다른 물건을 빌려서(=換喩), 또는 한 부분으로 전체(혹은 그 반대거나)를 둘러서 엮어대는(=提喩), 이런 문법의 구사력. 요게, ‘신의 이름으로’란 화법 아닌가.

신전 너머로, 그리 멀지 않게, 베수비오 산이 보인다. 아, 저 산인가! 저곳 화산으로,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묻힐 때까지, 신은 손도 하나 까딱 안 했단 말인가! 그렇다면,『千字文』의 ‘天地玄黃’의 天, 존 레논의「이메진」속 (천국도 신도 없는) “오직 머리 위에서 푸른” 하늘과 뭐가 다른가. 신은 무용지물이었다.「내가 죽어버리면, 신이여! 당신은 뭘 하겠소?(Was wirst du tun, Gott, wenn ich sterbe?)」라는 등, 오히려 신을 위로하는 릴케의 시가 와 닿는다. 

뜨거운 유독가스부터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사람. 사진=최재목
길을 지나면서 본다. (거의 모조 재현품이지만)뜨거운 유독가스부터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사람, 아기를 끌어안은 여인, 서로 껴안은 사람들. 다급했던 멸망 직전의 순간을 증언하는, “살려 달라” 몸부림쳤던 손짓, 몸짓들. 참, 애잔하다.

유독, 한 골목길에 관광객들이 줄지어 섰다. “사랑을 팔고 사는” 성매매 업소다. 벽엔 야한 그림들도. 그런 집들을 가리키는 것은, 길바닥과 벽에 붙은 남자 성기의 양각. “꼴리면 오라!”는 말. 참, 마케팅 전략이 원색적이다. 대·소극장을 지나면, 도시의 중앙쯤엔 천장이 잘 채색된 목욕탕. 난방 설비가 있는 탈의실, 냉온열탕 등등이 있었다니 놀랍다. 출렁이던 그들 욕망의 뱃살 그 쾌락의 때를 밀어대던 곳. 찜질방, 뱃살방이 발에 채이는 우리사회와 뭐 그리 다르겠나.

고대 로마 제국과 시간을 같이 하며, 가까운 바다의 물결과 함께 나부끼듯, 수많은 가게의 처마, 남녀가 서로를 몸을 비벼대던 곳. 그 인풋·아웃풋의 온갖 물을 실어 나르던, 완비된 상하수도 시설. 도시 외곽으로 가면 로마의 꼴로세움 내부를 닮은 원형 경기장. 거긴 노예 끼리, 노예와 맹수 사이 싸움이 있었겠고. 로마의 레퍼토리와 비슷.

너른 도로. 밑으로 상하수도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진=최재목

긴 시간이 여기까지 운반해 온 漂石, 폼뻬이. 떠날 때까지 내내 잊히지 않던 한 가지. 유곽 벽면의 맨 살을 맞댄 남녀 그림처럼, 서로 껴안고 죽어간 그들의 사랑은, 아름다웠을까?

“달리는 고속버스 차창으로/곁에 함께 달리는 화물차/뒤 칸에 실린 돼지들을 본다/서울 가는 길이 도축장 가는 길일 텐데/달리면서도 기를 쓰고 홀레하려는 놈을 본다//화물차는 이내 뒤처지고/한치 앞도 안 보이는 저 사랑이/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중략)//생은 아름다울지라도/끊임없이 피 흘리는 꽃일 거라고 생각했다”(윤재철,「생은 아름다울지라도」). 내 책갈피에 끼워 두었던 시 한편에 문득, 눈이 머문다.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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