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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불확실’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 김정현 경희대ㆍ정치학
  • 승인 2011.11.2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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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김정현 경희대ㆍ정치학
얼마 전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큰 아이가 보고 싶은 책을 한 권 사기 위해 서점에 갔다. 서점의 다른 세션은 관심도 없다는 듯이 자기가 알고 있는 세션으로 달려가더니 나한테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곤 책 한권을 집어 들고 무척 즐거워했다. 호기심에 무슨 책인가 훔쳐봤더니 제목이『피라미드에서 살아남기』1권이었다. 제목이 좀 특이하다 싶어 녀석이 서 있는 곳으로 좀 더 가까이 가보니 커다란 글씨로 광고문구가 붙어 있었다.‘ 살아남기 시리즈 신간 출간.’

책꽂이 한쪽이 전부‘~에서 살아남기’라는 제목을 가진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좀 불쌍하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어렸을 때에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훌륭한 것인가 혹은 올바르게 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어떤 것이 있는가 등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닌 어떻게 사는가에 관심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우리 세대는 실제 생활은 더 불편하고 부족한 것들이 많았지만 사회 구성원의 다수가 절망보다는 희망을 품고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적어도‘살아남기’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어떻게 살아 남아야 하는가’라는 두 질문의 근본적인 차이는 살아간다는 행위에 대한 뚜렷한 목적의 수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진 잠정적인 답(삶의 목적들)을 상정할 수 있지만‘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살아남았는지, 살아남지 못했는지’처럼 두 가지 경우의 수만 답으로 상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답을 상정할 수 있는 첫 번째 질문을 답하기 위해선 나름대로의 철학적, 논리적 혹은 경험적 기준이 필요하다. 반면 0(살아남지 못함)과 1(살아남음)로 답의 유형이 한정된 두 번째 질문을 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순간순간의 작은 결정(decision-making process)의 과정 속에서 살아남을 확률을 높이는 결정들을 얼마나 했느냐 하는 것이다.

확률과 관련된 것을 다루는 학문 중 대표적인 분야인 통계학은 학문적 기본 전제로서 현실세계의 기본적 특성을 불확실성(uncertainty)으로 본다. 다시 말해 통계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불확실성에 대한 연구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인간 자체를 불완전한 존재로 보고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특징은 현실세계에 대해 불완전하게 인지한다.

불완전한 인지능력에 대한 통계학적 혹은 과학적 명칭을‘Error’라고 한다. 통계학을 포함한 거의 모든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의 궁극적 목적은 Error의 질과 양을 연구해‘Error=0’을 현실화 하는 데 있다. 하지만 ‘E=0’이라는 것은 인간의 영역에선 불가능하다. Error가 0에 최대한 가깝도록 만드는 것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Error가 0에 가까워진다는 의미는 특정 행위를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순간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모든 변수들을 빠짐없이 가려내 각 변수들의 질과 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이해한 상태에서 0 또는 1의 결정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인간의 삶이 Error가 0에 가까워질수록 그것은 소위‘성공’한 삶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하는 점은 Error가 0에 가까운 인간들의 숫자만큼 Error가 100에 가까운 인간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에서 살아남기’라는 제목의 책은 마치‘Error50’ 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에게 필요한 책들이라고 보면 아들 녀석에게 강력하게 권하고 싶지는 않은 책이다. 오히려 모집단의 정규분포 그래프에서 양쪽 가장자리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중간지점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들을 소개해 주고 싶다. ‘~에서 함께 살아가기’라는 제목의 책들이 더 많은 사회에서 살게 하고 싶다.

김정현 경희대ㆍ정치학
미국 테네시대(녹스빌)에서 비교정치와 국제정치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HK환동 해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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