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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묘지문 분석 시도하는 한국한문학회 하계 발표회
[학술대회] 묘지문 분석 시도하는 한국한문학회 하계 발표회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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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6 11:59:56
 ◇ 세종대왕 신도비
묘지명은 전기와 더불어 역사와 개인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록물 가운데 하나다. 묘지명 중에는 독창적이고 뛰어난 것도 많지만, 내용이 규격화됐기 때문에 혁혁한 가문사와 듣기 좋은 능력과 행적이 나열된 것이 일반적이었다. 정작 죽은이를 잃은 애석함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것.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이해와 달리 묘지명을 재조명하는 시도가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다음 달 4일, 성신여대에서 개최될 한국한문학회 하계발표회의 주제는 ‘묘지명’. 묘지명이 과연 한문학의 연구 대상일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이혜순 한국한문학회 회장(이화여대 국문학과)은 “한문학은 어렵고 딱딱한 학문이 아니라 삶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영역이다. 묘지명도 삶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선택하게 됐다”고 말한다.

묘지명 속에서 여성의 삶 조명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는 1년간 기획된 주제 중 하나다. 기획주제는 ‘한문학 산문의 세계-祭文, 碑誌, 書信 유형을 중심으로’로 제문과 비지, 서신의 문학적 가능성을 점치는 것이다. 기존의 한문학 연구가 한시와 전기 소설에 집중된 것에 반해 일상의 삶에 깊이 접해 있던 소품을 연구 영역으로 끌어낸 것이다. 개별적인 학위 논문에서 이런 주제를 다룬 경우는 있었으나 한문학계가 적극적으로 학술주제로 끌어온 것은 드문 일이다. 춘계 발표회는 제문을 주제로 열렸고, 또 앞으로 열릴 추계 발표회에서는 서신을 주제로 할 예정이다.

흥미로운 기획주제에 발표자들의 접근도 신선하다. 안대회 영남대 교수(한문교육학과)은 ‘조선후기 自撰墓誌銘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자찬묘지명이란 자기자신이 쓴 묘지명을 의미한다. 본래는 사후에 남이 써야할 제문, 묘지명을 미리 써놓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상식에 어긋나 보이는 이런 일들이 조선 후기 문사들에게 자신의 남다른 개성과 문예를 드러내는 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 “묘지문자는 엄숙한 내용과 진지한 서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문인들이 유희정신을 실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습의 완강한 굴레를 뚫고서 조선후기에는 자찬묘지명이 변격과 유희의 세계를 확장시켜 나갔다”라고 안 교수는 말한다.

그가 짚어내는 자찬묘지명의 특성은 일반 묘지명과의 차이에 있다. 즉 자찬묘지명은 “일반 묘지명의 내용이 공허하고 정형화된 서술을 함으로써 생동감을 상실한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시도됐다는 것이다. 또 안 교수는 “규격화된 삶을 살지 않은 문사가 그만의 삶과 ‘마음’을 전하고자 노력한 문학적 결과가 자찬묘지명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조선후기 女性 墓主 墓誌銘의 문학성에 대하여’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강혜선 성신여대 교수(국문학과)는 특별히 여성 묘주 묘지명에 주목한다. 남성의 경우 다양한 묘지명이 나타나지만, 상대적으로 고정화된 여성의 삶에 새로운 내용이 개입된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여성의 삶에 대한 시각과 묘지명의 문체에 대한 관점이 변화하고 있음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죽음을 통해 공식적으로 기록되는 묘지명 속에서 여성의 삶을 문제삼는 당대의 관점을 조명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여성 묘주 묘지명에서 새로운 문학적 욕구를 충족시켜나가고자 하는 과정을 포착하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강 교수는 17, 18세기 여성 묘지명 분석을 통해 “묘지명 속의 여성이 유교적 규범을 철저하게 시현하는 정형으로서 그 덕과 행적이 평면적 서술로 전언되는 양상”과 “인간의 감정과 일상의 체험을 서술, 묘사하는 데에 초점을 둔 묘지명의 새로운 변화 양상”이라는 양면성을 변별해 낸다. “후자의 경우 규범 대신에 일상의 정을, 시간적 순서를 따른 구성 대신에 회상적 구성을 사용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 강 교수의 설명이다.

왕족의 비지문도 서술형식 변해

허원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연구실 선임연구원은 ‘碑誌文에 나타난 王과 王妃의 人物 形象’이라는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해방 이후 학계는 왕실보다는 양반, 양반보다는 민중의 문화에 관심을 가져 왔고. 또 이런 연구 경향으로 인해 우리 문화의 성격이 더욱 폭넓게 이해될 수 있었다. 그러나 허 연구원은 “현재 연구의 공백상태로 남아 있는 부분은 왕실문화”라고 말한다. 중심문화였던 왕실 문화는 문화적 리더쉽을 통해 국가를 경영하려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통 문화를 이해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전략이라는 것. 이를 통해 “오히려 근대문명의 실상과 의미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허 연구원은 왕과 왕비가 비지문에서 어떤 방식으로 형상화되는지를 분석한다. 주요텍스트는 ‘列聖誌狀通紀’이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비지문에 나타난 왕과 왕비들의 형상은 전형적인 형식에 따라 서술되고 있으며, 이것은 조선왕실의 권위와 정통성을 주장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왕실도 시대의 변화를 역행할 수 없었는지 “조선 전기에 비해 조선 후기는 비지문 서술이 유연해지고 형식적 고착성을 조금씩 탈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허 연구원은 “왕에 비해 왕비들의 서술방식이 유연하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왕과 왕비의 비지명을 분석했을 때, 국왕으로는 세종이, 왕비로는 인현왕후가 가장 이상적인 인물형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이번 학술대회는 실증적 조사를 통해 묘지명이 형식적인 기록이라는 관점을 벗어나, 개인의 문학성이 나타나는 장르로 부각시키는 것에 초점을 둔다. 이혜순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묘지명이 새로이 산문 영역으로 포함되기를 바란다”고 주문한다. “제문, 묘지명, 서신 등이 산문 영역으로 확장되기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한문학이 같은 국문학 내에서도 전공자 외에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간주되면서 점차 전공자만의 전유물로 고립돼 가는 현실이 안타까워 비전공자들도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분야를 시도했다”는 한문학회의 의도가 학계에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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