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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학술공동체’ 아니던가요?
대학은 ‘학술공동체’ 아니던가요?
  • 천선영 경북대·사회학과
  • 승인 2011.11.2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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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 천선영 경북대

 

천선영 경북대·사회학과
오늘 우리 대학들은 어느 정도나‘학술공동체’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자각하고 있을까. 융합이니 통섭이니 말이 무성하지만 정작 대학이‘학문적 공동체’라는 사실 자체는 망각되고 있는 것 아닐까.

대학이 기본적으로 학술공동체라면 그것을 긍정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늘 있었다. 내 직장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라는, 당연하지만 잊혀진 사실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하고 싶었다. 그 방법으로 선택된 것이‘학술’, ‘잔치’였다. 노래하는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행사가 공연이듯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가장 큰 잔치가 전시회이듯,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인 대학 내의 행사 중 가장 즐겁고 가장 의미 있는 행사는‘학술적인 형태’여야 하지 않을까 했다(배우고 익히는 학생의 행사도 마찬가지다. 축제의 꽃은 아이돌 가수 공연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배움을 나누고 자랑하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 학술적인 자리는 공연장과 전시장이 그러하듯 신나고 재미있는 잔치마당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아 다른 선생님들은 뭐하고 사시나 늘 궁금하기도 하던 차에 인문대부터 공대까지, 예술대에서 의대까지 서로 달라 보이는 전공을 가진 전문가들이 한솥밥을 먹는다는 것이 대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아닐까. 그리고 이런 본질적인 특성을‘훌륭한’장점으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전교의 선생님들이 참여하는 학술잔치를 기획했다. 학문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선생님들이 동일한 주제를 놓고 벌이는 말잔치! 근사하지 않은가. 전교의 교수들이 하나의 주제를 본인 연구와의 관련성 안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참으로 다양한 과정을 몇 시간에 걸쳐 ‘감상’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림’이 그려졌다. 마침 우리학교 교수회 내에서 그런‘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름하여‘교내 전교수진이 참여하는 학술잔치 큰 마당’이 지난 10일 열렸다. 판을 거창하게 벌렸다. 융합, 통섭을 쉽게 이야기하는 요즘이지만 같은 단과대학에 근무하는 사람들끼리도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수십명의 서로 다른 전공을 가진 교수들이‘시간, 공간 그리고 인간’이라는 주제 아래 함께 모여 6시간 가까이 학문 나눔의 자리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특별하고도 근사한 일이었다. ‘間’의 의미를 다시 새기면, 이는‘관계’의 다른 말일 터이고 결국 세상살이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이 화두를 갖고 다양한 전공의 선생님들이 모여 펼친 한바탕 말의 향연.

과문한 탓일까. 여느 대학에서 이런 시도가 있었단 얘길 들은 바 없다.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되는 행사였다. 새로운 형식의‘종합 학술콘서트’였으며, 교수합창동아리의 데뷔 공연까지 함께 한, 말 그대로‘잔치’였다. 얼마나 귀한‘자원’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지 확인하는 기쁜 자리가 됐다. ‘복현학술공동체’의 능력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도 자체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는 왜 강연 섭외를 하지 않았냐고 섭섭해 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실만큼 내부 평가도 비교적 좋았다. ‘무늬만 융합’보다 훨씬 생산적인 작업이었다고 믿는다. 이 잔치가 앞으로 좀 더 발전적기획으로 더 풍성한 자리가 되길, 그래서 경북대 학술공동체의 대표 브랜드, University Identity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랑이 지나쳤다 싶어 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느 한 대학 내부의 일이라 치부하지 말고 대학인 모두가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학술공동체로서의 대학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세월이 흐른 뒤에 누군가 내게 학교에서 치른 이런 저런 행사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지난 11월 10일의 ‘교내 전 교수진이 참여하는 학술잔치’이야기를 하게 되지 싶다. 즐거운 판을 함께 만들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천선영 경북대·사회학과
독일 뮌헨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는「‘노약자석’을 통해서 읽는 공간의 일상 정치: 사회적 범주, 공간의 분할과 격리, 규범과 일탈」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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