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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님? 여기는 대검찰청 입니다”
“김 교수님? 여기는 대검찰청 입니다”
  • 김지혜 기자
  • 승인 2011.11.28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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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보이스피싱 ‘카드론’ 사기 조심하세요

사진=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김 교수님? 여기는 대검찰청입니다.”

오후 2시. 연구실에 있던 김 교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검찰청에서 김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올 이유는 없었다. 의아했다.

“우선 본인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주민등록번호와 휴대폰 번호, 제가 불러드린 내용이 맞습니까? OO대학교 재직 중이시고, 아내와 따님, 아드님 이렇게 네 식구시네요.” 개인 신상정보를 늘어놓는 정체불명의 목소리, 의심스러웠다. 혹시 보이스 피싱일까? 김 교수는 걸려온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검찰청 번호가 맞았다.

 “김 교수님의 통장이 대포 통장으로 범죄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검찰청으로 출두해 주셔야 겠습니다.” 불안했다. 당장 대검찰청으로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낯선 목소리’는 이번 사건과 연관된 사람이 워낙 많아 가벼운 수사는 전화로 하고 있으니, 통화 내용을 녹취하겠다고 했다.  “우선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 같으니 개인정보침해 신고를 해주세요.” 목소리의 지시대로 검찰청 홈페이지에서 신고를 마쳤다.

“피해자임을 입증하고, 다른 피해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사이트는 별도로 마련돼 있습니다.” 그가 불러주는 주소를 인터넷에 입력했다. 대검찰청과 동일한 사이트가 떴다.  "현재 사용하고 계신 은행, 카드번호, 비밀번호, CVC값을 입력하면 범죄자들이 김 교수님의 계좌를 돈 세탁에 사용했는지, 복사카드를 만들었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정보를 입력하자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의 도착을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문자 왔죠? 정보가 확인됐다는 뜻입니다. 현재 작업이 진행 중이라 전산에 오류가 생길 수 있으니 문자는 나중에 봐주세요. 수상한 돈이 입금돼 있을 수 있으니 통장을 확인해주세요.”

통장에는 모르는 돈 1천 740만원이 입금돼 있다. “40만원은 수사 협조비입니다. 나머지 1천700만원만 제가 말씀드린 계좌로 보내주세요.”  이체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빠르고 건조하게 몰아치다가도, 괜찮다며 안심시키는 목소리에 정신없이 끌려 다니기를 한 시간 가량. 김 교수는 숨을 길게 내뱉으며 조금 전에 받은 문자를 확인했다.

"카드론이 완료됐습니다.”김 교수의 통장에 입금된 1천740만원은 수상한 돈이 아니었다. 김 교수의 카드로 대출받은 돈이었다.

교수, 연구원 등의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가 의외로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와 주변의 시선을 고려하다 보니 대외적으로 알리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만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 최아무개 연구원도 동일한 방법으로 보이스피싱을 당해 2천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이전에도 몇 번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법이 교묘했다. 불안을 조장하다가도 위로를 하는 등 심리적인 완급을 조절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철저하게 짜인 각본 덕에 피해자 중에는 전직 은행장도 끼어있다. 최 연구원은 또 “교수나 연구자들은 대개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을 싫어한다. 나로 인해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니 마음이 급했다”라고 덧붙였다. 최 연구원이 피해를 입은 당일 같은 지역에서만 교사와 대학 강사를 포함한 7명이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카드론을 이용한 보이스피싱이 급증하는 원인은 카드사의 ‘편의주의’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카드사는 현재 카드 대출 한도를 이용자 동의 없이 자의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대출을 받을 때 필요한 개인 정보가 너무 간단한 점도 문제다. 실제로 올해 초 카드론 한도를 높인 국민카드와 신한카드의 경우,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에게 두 카드를 소지했는지 여부를 직접 물었다. 대출에 필요한 본인 확인용 정보는 하나SK 카드의 경우 카드번호와 비밀번호, 국민카드는 카드번호, 비밀번호, CVC값뿐이다.

눈앞의 이익만 좇는 카드사들에 대한 비난이 들끓고 있지만, 카드사들은 피해 금액을 무이자로 분할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뿐이다. 금융감독원도 지난 24일 카드론 취급 시 본인확인 절차를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지만, 기존 피해자들을 위한 수습 방안은 전무한 상황이다.

피해자들이 보이스피싱을 당한 사례를 보면, 낮 시간에 집에 혼자 있는 주부이거나 회사원이라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개인 공간을 확보하도록 유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 연구실에 혼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은 교수들은 보이스피싱에 피해를 입을 소지가 크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김지혜 기자 har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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