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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언론의 무차별적 ‘대선후보 검증’에 일침 가한 ‘신문과 방송’
[돋보기] 언론의 무차별적 ‘대선후보 검증’에 일침 가한 ‘신문과 방송’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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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6 11:56:55
최근 발간된 한국언론재단의 ‘신문과 방송’ 6월호에서는 최근 들어 몇몇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대선후보 검증’ 방식에 대한 평가를 진지하게 다뤄 이목을 끌고 있다.

조선일보의 경우 이미 지난 4월에 후보검증위원회를 출범시켰으며 동아일보, 세계일보 등에서도 사설을 통해 후보 검증에 대한 당연성을 피력, 각자 후보검증 작업에 들어갈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 한 바 있다.

‘사상 검증 악용 가능성 우려’라는 글을 기고한 성균관대 이효성 교수(언론학)는 “대선 후보들이 오래전에 행했던 각종 발언과 행적은 물론, 그들의 사상과 경험을 담은 저서와 기록물 등을 발굴해서 언행의 일관성과 진실성을 추적할 것”이라고 말한 점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 교수는 “과거 언행을 추적하는 방식은 전후 맥락을 생략한 채 단편적인 일부 발언이나 기록만을 끄집어냄으로써 현재적 시점에서 문제삼을 때 유권자에게 심각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실장은 이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사상 검증이란 말 자체가 전근대적”이라고 비판한다. 언론사들이 자의적인 기준을 정해놓고 기준에 해당되지 않으면 사상이 의심스런 후보처럼 보도하는 경향이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이념 검증은 메카시즘적 이념공세로 비쳐질 뿐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반박하는 후보가 없음에도 특정후보에게 불순한 사람으로 덧칠해서 불이익을 주고자 하는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

‘국가 비전과 민주적 신념이 중요한 기준’이라는 글을 기고한 이호철 인천대 교수(정치학) 역시 지금과 같이 후보들의 인적인 사항을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삼는 데 대해 커다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 선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를 키워갈 뿐인 개인정보의 폭로적 공개보다는 정책중심적인 후보검증과 평가가 우선해야 한다”며 “21세기 초반의 세계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적절한 국가발전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 실현가능한 구체성을 갖고 있는지를 비교분석해서 언론이 제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외국의 언론들은 어떻게 대통령 후보를 검증하는지를 소개하는 두 편의 글이 실려 눈길을 끈다. 미국의 사례를 다룬 강미은 숙명여대 교수(언론학)가 소개한 ‘허용가능한 거짓말’이라는 개념이 눈길을 끈다. 용서받은 클린턴의 추문을 예로 들면서 미국의 민주적인 정치과정에 대한 훼손 여부에 따라 ‘허용가능한 거짓말’과 그렇지 않은 거짓말로 나눈다는 것. 한편 미국언론은 대선후보를 평가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준을 만들었는데 이중 대표적인 것이 위버 교수가 하버드대 저널에 발표한 10가지 기준이다. <표>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등의 신문이 앨 고어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미국의 신문은 사설과 논평에서 특정 후보의 정책에 대해서 분명하게 지지와 반대의 입장을 밝히지만 정치기사의 항목 선택이나 접근 면에서는 최대한 공정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프랑스의 사례를 소개한 파리 제2대학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성욱제씨의 기고도 흥미롭다. 프랑스 역시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에 인물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지만 원칙은 그가 가진 생각들이 우선이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르몽드는 후보들의 정책을 분야별로 비교, 분석하는 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르몽드지 역시 16개 분야에 걸친 정책 주제를 선택, 평가를 내리고 있다.<표>이효성 교수나 이호철 교수 등은 이구동성으로 인물의 사상이나 과거행적과 같은 추상적인 항목보다는 국가발전에 대한 전략이나 실현가능한 정책과 같은 구체적인 항목에 더욱 초점을 둘 것을 주문하고 있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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