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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과학철학 연구, 앤솔로지를 넘어서다
30년 과학철학 연구, 앤솔로지를 넘어서다
  • 김준성 명지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1.11.24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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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 박영태 외 지음,『과학철학: 흐름과 쟁점, 그리고 확장』(창비, 2011.10)

최근 10년 동안 국내에서는 과학철학에 대한 많은 책이 발간됐다. 1980년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처음에 과학철학을 공부하고자 할 때 참고할 수 있었던 우리말 책은 3권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들 모두 번역서였다. 그들 중 아마도 가장 많이 읽힌 책이 『현대의 과학철학』(A.차머스 지음, 신일철ㆍ신중섭 옮김, 1985)일 것이다. 그 책의 저자는 증보판을 내었고 『과학이란 무엇인가?』(신중섭ㆍ이상원 옮김, 2003)로 번역돼 출판됐다. 이 책은 과학철학의 주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다. 그러나 그 책은 쿤, 포퍼, 라카토슈 등 과학사를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과학철학의 논의만을 제한적으로 다루었다.

1995년에 ‘한국과학철학회’가 출범하고, 이 학회에서 1998년부터 전문학술지<과학철학>을 발간하기 시작하면서 국내에서는 과학철학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급격히 커졌다. 이를 계기로 그 동안 과학철학에 대한 다양한 저서와 번역서들이 출판됐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0월에 출간된 『과학철학: 흐름과 쟁점, 그리고 확장』(박영태 외 18인 지음, 창비, 2011)은, 두 가지 관점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30년 동안 이루어진 국내 과학철학 연구의 한 세대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책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이 책은 한국과학철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던 송상용 선생의 정년퇴임을 계기로 기획됐다. 송상용 선생은 과학철학 뿐 아니라 과학사와 과학사회학 연구의 근간을 국내에 마련하신 대표적인 학계 원로다. 송상용 선생을 비롯해 한국과학철학회의 초석을 닦아 과학철학 연구의 발전을 이끌었던 18명의 학자들(강신익·고인석·김국태·김유신·박영태·박은진·백도형·손화철·신중섭·윤용택·이상욱·이상원·이영희·정병훈·정상모·조용현·최종덕·홍성욱)이 이 책을 집필하는 데 참여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국내에서 그 동안 이뤄진 과학철학 연구의 결과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둘째, 이 책의 구성은 과학철학의 태동과 기본 쟁점들, 그리고 세부 분야에서의 주요 쟁점들을 망라하고 있다. 1980년대 과학철학에 대한 책들이 과학철학의 발생 등에 관한 제한된 주제를 다뤘지만 이 책은 그 주제를 포함해 그것에서 확장되고 발전된 다양하고 깊은 논의들을 다루고 있다. 1부 ‘흐름’에서는 과학사와 관련된 과학철학의 쟁점들을 통해 과학철학에서의 고전적인 이론과 논의들을 소개했다. 2부 ‘쟁점’에서는 과학적 실재론 등 과학철학 일반의 주요 쟁점들을 논의했다. 3부 ‘확장’에서는 현재 새롭게 부각된 내용을 포함해 세부 주제들을 논의했다. 

일반적으로 저명한 학자의 업적을 기리는 책의 내용은 연구 논문들의 앤솔로지(anthology)가 되기 쉽고, 따라서 일반인들이 관심을 갖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기획 의도와 목차 및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철학에 주목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기술돼 있다. 과학철학이나 과학사 또는 교양과학 과목에서 교재로 이용될 수 있고 주교재가 갖는 내용의 빈약함을 채울 수 있는 부교재로 이용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양대에서 교양 교과목의 교과서로 발간한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는 매우 다양한 주제와 높은 가독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배경지식이 없는 1학년을 주 독자로 삼아야 하고 다양한 논의를 접하게 해야 하므로 분량의 제약으로 보다 구체적인 논의를 담기가 어려웠다.『과학철학: 흐름과 쟁점, 그리고 확장』은 그 책의 부교재로 또한 강의를 맡은 교수자의 안내서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이 책에 대한 개정판이 나온다면 구성과 내용에서 일부 수정이 필요하다. 3부 확장에 있는 「논리, 역사, 사회: 과학철학의 변모」(송상용)는 이 책의 서문이나 맺음말에 위치했다면 그 글의 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2부 쟁점에서 「과학방법론」(이영의)은 글의 성격상 2부보다는 1부에 위치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또한 1부와 2부를 분리하기 보다는 함께 묶어 하나의 부로 만드는 편이 내용의 일관성 뿐 아니라 분량의 분배에 있어서 더 짜임새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3부로 이뤄져 있는데 각 부를 시작할 때 그 부에 실린 글들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서문이 없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각 부마다 서문이 없으므로 각 부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전체를 구체적으로 조망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발간사에서 이 책에 실린 글에 대한 전체적인 안내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각 부에 보다 구체적인 안내가 있다면 관심이 되는 내용을 선별적으로 읽기를 원하는 독자들이 보다 쉽게 책의 내용에 접근하고 그 내용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대해 언급한 아쉬운 부분들은 이 책이 갖고 있는 큰 의미와 탁월한 유용성 그리고 풍부한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사소하다. 독자 여러분이 과학철학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서점을 둘러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한다면 과거와는 반대로 이제는 너무 많은 책과 자료가 여러분을 오히려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여러분이 현재 그와 같은 상황이라면『과학철학: 흐름과 쟁점, 그리고 확장』이 좋은 안내자의 역할을 할 것이다.       

김준성 명지대 철학과
필자는 미국 위스콘신대(매디슨)에서 철학박사를 했다. 『확률과 인과』등의 저서와 「비결졍적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가」, 「인과를 해명하는 확률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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