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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교육·철학 분야 중량감 있는 번역…편집 맛깔스러워
문학 ·교육·철학 분야 중량감 있는 번역…편집 맛깔스러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11.23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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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넷, 한국연구재단 명저번역총서 잇따라 출간

 

아카넷이 내놓은 한국연구재단 명저번역총서 일부
학술전문 출판사인 아카넷에서 한국연구재단 명저번역총서를 잇따라 출간했다. 헤르만 프랭켈의 『초기 희랍의 문학과 철학 ①②』(김남우·홍사현 옮김), 미셸 페라리가 편저한 『수월성의 교육』(이영만 옮김), 그리고 임마누엘 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백종현 옮김)가 선보였다.

 

고전문헌학자 헤르만 프랭켈의 『초기 희랍의 문학과 철학』(전 2권)은 호메로스부터 핀다로스까지 고대 그리스의 문학 및 철학의 기원과 시작을 다루고 있는 고전적 해설서이다. 그러나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세한 문헌학적 및 역사적 해석과 함께 비판적이고 철학적 성찰이 담긴 학술서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책이다.

특히 기존의 번역에 의존하지 않고 대가다운 탁월한 희랍어 번역과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점은 이 책의 무게감을 보태주는 데 일조한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시문학과 사상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문학사나 철학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상적인 설명에 그치지 않고, 비판적인 입장과 시각을 곳곳에 반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랭켈은 희랍 초기의 철학자들과 시인들을 단순히 인류 문명과 정신사에 있어 최초의 선구자로 이해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이 주요하게 가닿는 대목은, 초기 그리스의 역사적 의미, 즉 초기 희랍이 도달한 정신적 향연의 깊이에 있다. 때문에 프랭캘은 초기 그리스 시기를 인류의 정신사를 통해 이후 찾아보기 힘든 특히 중요한 시기로 이해한다. 마르크스가 인류의 황금시대로 이 시기를 상정했던 것과 비교해서 읽어볼만한 부분이다.

교육에서의 수월성, 사회적 노력으로 달성 가능

캐나다 토론토대 온타리오 캠퍼스의 인간발달 및 응용심리학과 교수이며, 응용인지과학연구소 소장인 미셸 페라리가 편저한 『수월성의 교육』은 사실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잡아끄는 구석이 많다. '수월성'이란 말이 '평등'의 맞은 편에 놓여 있다는, 그래서 대척점에 서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시선 때문이다. 그러나 페라리 교수의 말을 들어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그는 무엇을 주장하는 것일까. "이 책에서 주장하려는 기본 명제는 수월성이 개인의 노력은 물론 특정 사회나 문화권의 노력을 통해서도 개발될 수 있다"라고 그는 말한다.'노력을 통해 개발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래서 그의 문제의식이 향하는 곳은 '어떤 사람이 영재인가?'가 아니라, "수월성을 촉진하는 사회적· 개인적 조건은 무엇이며, 학습자 자신은 물론 사회에도 유익한 방향으로 수월성을 개발하려면'교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페라리는 이렇게 접근한다면 "민주주의 교육의 기본 이념인‘평등(equity)’의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고도‘수월성(excellence)’을 개발시킬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라고 확신한다.

칸트 전문 번역가인 백종현 서울대 교수가 옮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는 사실 1994년 이화여대출판부에서 같은 이름으로 번역된 바 있다(신옥희 옮김).당시 354쪽 분량으로 소개됐으나, 백 교수는 이를 524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백 교수는 "우리는 이 칸트 원서의 훌륭한 한국어 역서(신 교수의 번역본을 말함)를 이미 가지고 있다. 이제 새롭게 펴내는 이 역주서는 기존의 역서를 포함해 지난 한 세대의 세월과 함께 축적된 국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 바로 '역주서'라는 대목이다. 과연 옮긴이는 책의 곳곳에 충실한 역주를 붙이는 작업을 놓치지 않았다.

역주 통해 만나는 칸트 '제4비판서'

백종현 교수에 따르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는 ‘제4비판서’의 성격을 지닌다. 즉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 진, 선, 미의 의미를 각각 밝힌 제1비판서(『순수이성비판』), 제2비판서(『실천이성비판』), 제3비판서(『판단력비판』)의 연장선에서 사변이성과 실천이성, 반성적 판단력 일반에 대한 총괄적 비판 작업을 통해 ‘聖’의 가치를 다룸으로써 인간이 의식하는 궁극의 가치에 대한 철학적 해명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칸트의 이 철학적 종교론은 그의 비판철학의 귀착점을 보여준다.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논고는 칸트가 이미 오랫동안 그의 도덕철학과 역사철학 저술을 통해 부분적으로 피력한 ‘철학적 종교론’의 중추를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은『판단력 비판』의 후반부에서 이미 시도된 종교적 물음(“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에 대한 답변을 완수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아카넷에서 곧 출간될 명저번역총서는 리처드 D. 엘틱의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이미애 옮김), 스티븐 J.굴드의 『시간의 화살』(이철우 옮김), 크세노폰의 『헬레니카』(최자영 옮김), 에드먼드 스펜서의 『선녀여왕』(임성균 옮김), 크리스틴 드 피장의 『숙녀들의 도시』(최애리 옮김), 칼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 총론』(송지영 외 옮김), 안느 위베르스펠트의 『공연기호학-관객의 학교』(신현숙·유효숙 옮김), 헤겔의 『예나체계 기획 Ⅲ-자연철학과 정신철학』(서정혁 옮김) 등이다.

한국연구재단 명저번역총서는 '학문의 기초 이론과 선현들의 사상 등이 담긴 동·서양의 명저를 체계적으로 번역 및 보급하여 인문학 부흥의 계기를 마련하고 인문대중화에 기여'하고, '자연스러운 우리말 번역을 통해 번역 도서의 가독성을 높이고 상세한 譯註를 통해 학술번역의 모범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중점 번역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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