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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학술동향] 독일-‘미디어 능력’ 개념 정초한 디이터 바아케
[해외학술동향] 독일-‘미디어 능력’ 개념 정초한 디이터 바아케
  • 강진숙 / 독일 통신원
  • 승인 2002.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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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6 11:53:21
1999년 7월 23일, 향년 64세로 갑작스레 세상을 뜬 디이터 바아케(Dieter Baacke, 1934~1999)는 우리에게 아직 낯선 독일의 미디어교육학자이다. 하지만, 이미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위르겐 하버마스의 이론과 철학에 관심 있는 이라면, 그의 연구에도 눈길을 돌릴만 하다. 하버마스가 사회학과 철학적 접근을 통해 그의 저서 ‘소통행위이론’(1981)을 집대성했다면, 바아케는 동시대에 미디어교육학적 접근 속에서 하버마스의 소통행위 개념과 니클라스 루만의 체계 개념을 연관시키고, 나아가 ‘미디어능력’이라는 개념을 그의 저서 ‘소통과 능력’(1973, 1980)에서 체계적으로 정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는 어떠한 이력의 소유자인가.

미디어를 해방적 소통의 장으로
독일 빌레펠트대학의 교육학 교수였던 바아케는 1984년부터 세상을 뜨던 해인 1999년까지 미디어교육과 커뮤니케이션문화학회(GMK)의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이 속에서 오랜 동안 미디어교육과 커뮤니케이션문화 연구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그는, 이론적 연구뿐 아니라 아동구호사업과 청소년영화센터 등의 문화예술분야에도 참여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국제적인 강연활동을 통해 새로운 문화현실에 대한 진단과 방향설정, 특히 그 동안 연구가 미진했던 아동과 청소년 문화현실에 눈을 돌림으로써 하위문화 연구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활발한 활동을 기리는 의미에서 빌레펠트주는 작년에 그의 이름을 내건 ‘디터 바아케 상’을 신설한 이래, 미디어 교육학적 연구들, 특히 아동, 청소년, 가족에 관한 교육·사회·문화연구 분야를 대상으로 현상공모해서 우수작을 선정, 상금(3천 유로에 해당)을 수여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디이터 바아케의 생전 활동은 학자로서뿐 아니라 사회적 실천가로서 시대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물론 그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미디어능력 개념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제시했다는 점뿐 아니라 중요하게는 소통능력의 지향점을 ‘해방적 소통’에 둠으로써 대안적 미디어 이용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그의 저서를 통해 본격적으로 제기된 ‘미디어 능력’개념은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미디어교육과 관련한 분석 연구를 통해 발전적으로 전개되어 언론학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가 정립했던 ‘미디어 능력’은 어떠한 이론적 사유 과정을 밟고 있는가.
우선, 그는 미디어 능력 개념을 새롭게 미디어 교육학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능력’개념과 ‘커뮤니케이션’ 개념을 역사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그의 성찰은 데카르트의 고기토 논리에서 제시된 ‘인간의 사유능력’을 언어철학 속에서 새롭게 정립했던 촘스키에서 출발한다. 촘스키가 사유하는 인간의 능력 개념에서 나아가 고유의 ‘보편적 규칙체계’에 근거로 잠재해 있는 수많은 문장들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언어능력을 제시했다면, 이러한 언어능력을 소통의 공동체 속에서 이상적 담론상황과 소통행위로 발전시킨 것은 하버마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바아케는 하버마스의 이상적 담론상황의 가정에 주목한다. 그것은 모든 대화자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담론 상황으로서 언어이해와 언어습득의 선험적 기초로서 소통공동체의 제한 없는 언어게임을 가정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소통공동체를 전제로 하는 이유는 그 속에서 대화자들이 제시하는 주장의 의미를 적합하게 이해하고 그 주장의 진리를 판단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나 언급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이상적 소통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상반된 사실에 기반한 가정이나 초현실적인 구조”로서는 존재할 수 있다는 하버마스의 지적에 공감한다. 이것은 곧 역으로 이상적 담론상황이라는 가정이 대화자 간의 권력관계와 예속관계로 인한 현실의 왜곡된 담론상황들을 드러내주는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바아케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대우받고 동등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이상적인 능력’의 사유 아래 ‘미디어 능력’ 개념을 정초한다. 곧 미디어 능력 개념은 기술적 도구들, 특히 미디어를 능동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누구나 의식의 억압으로부터 ‘개인의 해방’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그가 지적하는 바, 미디어의 ‘능동적 이용’이란 단순히 미디어의 ‘수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디오 제작 등 미디어의 내용을 ‘생산’하는 것도 포함된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비판적인 몰입이나 생산이 아니라 미디어의 내용에 대한 비판적 능력과 지식을 습득하는 것, 나아가 기존 매스미디어의 공론장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적 공론장’을 창출하는 것에 있다. 그가 연구활동의 후반기에 사이버스페이스의 공론장과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미디어능력의 함양을 다른 누구보다 강조하면서 미디어 교육학의 현대적 지평을 개척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사유 속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강의실 뛰쳐나온 실천활동
그의 사후 3주기를 맞는 오늘날에도 그의 동료들과 제자들은 “우리의 벗, 동료, 도전자 그리고 선생이 세상을 떴다. 우리는 당혹스럽고 그의 예기치 않은 죽음이 남긴 공허를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함없는 추모와 애정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지식을 생산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실제 역동적인 실천활동을 병행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그에 대한 애정은 박제화된 지식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실천들을 해온 그의 열정적인 삶 속에서 스며 나온 것이 아닐까.

강진숙 / 독일 통신원·라이프찌히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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