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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지방도시에서 '첫번째'로 열렸다 이유는?
동아시아의 지방도시에서 '첫번째'로 열렸다 이유는?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1.11.21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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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부산 세계인문학포럼 '숨은 노력자' 이지훈 박사

제1회 한국-유네스코 세계인문학포럼이 오는 24일부터 사흘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다. ‘다문화 세계에서의 보편주의’를 주제로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도전과 과제를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성찰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는 취지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와 정치철학계의 권위자인 프레드 달마이어 노트르담대 교수,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기조강연을 한다. 소주제별 전문세션과 함께 이번 포럼을 함께 주최한 유네스코(뉴 휴머니즘을 향해), 교육과학기술부(한국인문학의 부흥), 부산시(지역성의 인문학적 성찰)도 각각 특별세션을 마련했다.
첫 세계인문학포럼이 제 3세계의 나라에서, 그것도 수도가 아닌 지방도시에서 열리게 된 배경과 의미는 무엇일까. 공동 주최 기관의 면면도 복합적인 성격의 행사임을 예고한다. 이번 부산 세계인문학포럼의 숨은 노력자인 이지훈 박사(45세)를 인터뷰했다. 이 박사는 부산지역 자문회의 위원으로 이번 행사를 준비해 왔다.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다시 미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필로아트랩’(PhiloArt Lab) 연구소를 세워 철학과 예술에 기반 한 통섭적 문화연구·기획을 하고 있다. 또 부산문화의 비평 및 대안 제시를 위한 '커뮤니티아트 포럼'(CAF)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최근에는 담론을 넘어, 또 예술가/시민, 무대 갤러리/생활공간의 분리를 극복하려는 뜻에서 거리예술 창작단체 ‘랄랄라 스트라다’를 만들었다. 『존재의 미학』 등 세 권의 저서가 있고, 『우리가 만드는 문화도시』 등 13권의 공저가 있다.
△ 제1회 한국-유네스코 세계인문학포럼이 부산에서 열린다. 어떻게 준비해 왔나.
“이번 행사의 성격은 복합적이다. 전체일정을 주관하는 기관이 한국연구재단과 유네스코한국위원회라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연구재단은 순수학술 연구를 지원하는 기관인 반면, 유네스코는 범시민 차원에서 인문학적 가치를 공유하는 활동을 벌여온 기관이다. 그래서 이번 행사가 학술적인 전문성을 놓치지 않는 동시에 ‘퍼블릭 액세스’의 이상을 실현하는 행사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논의 과정에서 부산지역 자문회의는 '인문학 릴레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지난 9월부터 현재까지 부산문화재단과 협력해 지역 인문학 단체들, 또 대학 동아리들과 더불어 이번 행사 주제와 연관한 공공 담론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이번 인문학포럼은 단순한 학술심포지엄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시민축제의 성격을 띨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부산지역 세션 주제를 ‘지역성과 인문학’으로 맞출 것을 제안했다. 전체 주체가 '다문화 세계에서의 보편주의'인데, 이 주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하려면 무엇보다 지역성 범주로 출발하는 것이 실질적인 성과를 낳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다문화 세계‘를 이루는 근원은 지역성이다. 또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생활세계와 ’보편적 표준‘의 갈등 속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다문화 세계에서의 보편주의'는 결국 지역 사람들에겐 추상적인 학술문제가 아닌 구체적인 삶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삶의 문제를 인문학적으로 사유한다면 다른 수도권 담론보다 실질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으며, 그게 바로 지역 인문학 담론 몫이라고 생각했다.”

△ 첫 세계인문학포럼이 어떻게 부산에서 열리게 됐나.
“일단 부산시의 의지가 크게 반영됐다. 부산시는 행사를 유치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고, 또 국제행사를 위한 기반시설 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시는 이 행사를 상설화해서 해마다 부산에서 열 의지도 갖고 있다. 부산시가 이렇게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지역발전 의제를 들 수 있을 듯하다. 가령 유네스코 ‘영화영상 분야 창의도시’ 선정을 비롯해 도시 브랜드 가치 제고 등과 같은 지역발전 의제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유네스코 입장에서 볼 때 굳이 세계인문학대회를 유럽이나 미국 등이 아닌 동아시아의 한국, 그것도 수도가 아닌 지방 부산에서 최초로 개최한 이유는 뭘까? 다양성과 소수성의 가치를 존중해온 유네스코 이념에 부합하는 결정이었다고 본다. 이것은 단지 상징적인 차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추론을 덧붙이자면, 나름대로 절박한 결정이기도 했다는 의미다.

사실 유네스코는 유럽 중심 조직인데, 최근 유럽發 다문화 논의는 위기를 맞았다. 유럽 곳곳의 인종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테러는 그런 위기의 징후일 듯하다. 다시 말해 유네스코는 지난 1980년대 이후 미국 중심 보편주의 즉 미국 식 표준을 강요하는 ‘세계화’의 대안으로 꾸준히 다양성 가치를 강조해왔는데, 현실적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이 점에서 단순히 “유네스코나 교과부가 들고 나온 주제는 익숙한 것이다. 신선도가 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제 자체는 매우 고전적이지만, 새로운 위기상황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에 유럽중심 혹은 미국중심으로 이뤄진 보편주의를 다시 반성하는 동시에, 보편주의 자체를 해체하려던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서는 새로운 보편주의 담론을 요구한다. 즉 ‘포스트’ 담론 이후의 담론을 요청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 점에서 '다문화 세계에서의 보편주의'라는 주제의 행사를 과거 보편주의 및 포스트 담론 발신지인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 여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제3세계, 그것도 지방도시에서 여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이번 행사가 부산에서 열리는 데는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세계인문학포럼의 의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일단 시기와 장소의 적합성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유럽에서 다문화 가치가 새로운 혼란에 직면한 상황에서 제1회 세계인문학대회를 제3세계, 그것도 수도가 아닌 지역에서 개최함으로써 새로운 기운을 충전할 가능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개최지 입장에서 부산은 지역-인문학을 연동하는 발판을 갖게 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기존 포럼과 달리 ‘부산인문학 릴레이’란 이름으로 시민참여 형 공공담론의 장이 미리 마련됐다는 점, 또 부산 세션을 통해 지역성을 인문학 주제로 강조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부산인문학 릴레이’처럼 지역 인문학 소집단들이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주제로 집결된 경우는 아주 드물 것이다. 세부주제도 다양했고 참여집단 성격도 다양했다. 정치적 입장도 다르고 연령대도 달랐다. 비록 이것이 새로운 보편주의 구성까지는 도달하지 않았지만, 인문학 영역에서 이질적 연접을 이루려 했다는 시도 자체가 의미 있는 성과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제 첫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지만.”

△지역성의 인문학적 성찰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나.
“지역성의 인문학은 지금-여기, 소집단, 사적 계기(private motivation)에서 출발한다. 이때 사적 계기로는 가령 자신의 거주지 주변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거나 혹은 이웃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계기가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지역성의 인문학이 다른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삶의 질을 성찰하는 것이며,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삶의 질을 개선해나가려는 노력과 더불어 성립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해 구체적인 개인의 삶 혹은 절실한 사적 계기가 없는 지역성의 인문학은 공허한 담론으로 전락하며, 지속가능한 추동력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지역성의 인문학적 성찰은 '다문화 세계에서의 보편주의'란 대주제에 가장 적합한 논의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보편주의는 지금-여기에 바탕을 둔 구체적이고 이질적인 연접을 통해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즉 일차적으로 사적인 계기를 지닌 소집단의 움직임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하나의 새로운 보편주의를 구성하며 퍼져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처럼 자연과 사람,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지는 도시를 꿈꾸고, 그 꿈을 다른 도시, 다른 나라와 함께 나눌 때 ‘또 다른 보편주의’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인문학자들이 이런 목표를 세우고 현실과 소통하고 청소년들과 소통하기를 희망한다. 또 폐쇄된 학제를 넘어 시민 인문학 운동과 예술 현장과 결합하며, 긍정적인 상호 작용을 얻어내기를 희망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 인문학은 독자적인 모델을 마련하리라 믿는다. 말하자면 지역 인문학이 그 자체로 문화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스스로 청년문화로 태어나는 것이다. 지역 인문학 운동은 청년문화혁명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인문학의 성과와 지향성은.
“나는 부산의 인문학을 세 가지 유형으로 본다.

첫째, 대학교 인문학. 전국적인 상황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고립은둔 형 인문학 연구와 더불어 '인문한국지원사업(HK)‘으로 구성된다. 후자는 학문의 공공성, 실용적 효과를 기대하는 대형 집단연구 프로젝트다. 대학교 중심 지원 정책이라는 한계가 있다. 또 전시용 사업이 많고 ‘경제적 진보주의’ 패러다임에 비판의식 없이 편승한다는 문제가 있다. 즉 일반시민들이 인문학에 기대하는 내용이나 인문학 본연의 연구보다는 산업연계나 국가•도시 경쟁력 제고에 맞춰진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처럼 대학교 인문학은 소통부족과 더불어 부적합한 방향성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한계가 있다.

둘째, 전위적 인문학. 대학교 인문학의 위기가 깊어지는 한편 대학교 외부에서 '지식을 위한 지식'을 판매하는 강좌 인문학이 성행하자, 이에 대한 비판적 성격으로 대안적 성격의 인문학 연구와 소통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1996년 한국인문학회(김영민, 구모룡, 이지훈 등)가 부산의 효시이며, 기존 학회, 대학 체제를 넘어 전문적이고 자유로운 인문학 담론을 시민과 함께 나누는 시도를 했고, 그 시도는 지금도 여러 소집단들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셋째, 200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시민 밀착형 인문학. 2005년부터 '고전아카데미'(KBS부산), '인문고전대학'(부산가톨릭대 인문학연구소) 등이 있다. 백년어서원, 인디고서원, 빈빈 등 인문학 공간들도 시민 친화적 인문학 운동을 펼치고 있다. 대학가에서 인문학 진지를 구축한 카페 헤세이티, 공연예술과 인문사회학의 결합을 추구하는 생활기획공간 통은 청년문화 혁명을 이끌고 있다.

정리하자면 근래 부산에서는 이처럼 시민 주도형 인문학 운동이 늘어났고 인문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크게 늘어났다. 다만 지역성의 인문학이 추구하는 미래의 희망은 경제적 진보주의 패러다임의 낙관주의와 일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미래의 희망은 무분별한 도시 확장(urban sprawl)이나 토목건축에 연관된 개발주의와 일치하지 않으며, 지역의 고유한 역사를 문화콘텐츠란 이름으로 정형화하는 문화적 개발주의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도시빈민들과 노숙자를 위로하고 사회적 통합에만 주력하는 반면, ‘지금-여기’ 지역의 현실을 스스로 사유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관(官) 주도의 ‘달콤한 인문학’에도 일치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지역 인문학 운동은 현재사회에 ‘적응’하는 인문학보다는 ‘대안’을 주는 인문학을 지향해야 할 텐데, 이때 지역성의 인문학은 '다문화 세계에서의 보편주의'란 주제에 가장 어울리는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을 듯하다. 앞으로의 과제는 학술성을 놓치지 않는 동시에 퍼블릭 액세스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로아트랩을 비롯해 부산지역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의 범위를 고전인문학으로 제한하기보다 예술, 영화, 건축 등으로 확장하고 있다. 다만 조건이 있다. 최근 한국에는 경제적 성공을 목표로 하는 자기 계발을 비롯해 일상적인 여가활동조차 인문학 교육이란 이름으로 각색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문학 교육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대중소통 강화와 더불어 진정한 삶의 가치와 미래 사회의 모델을 고민하게 만드는 전문적 교육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 부산에서 급증하는 대학 외부 인문학 공간들은 대학교 인문학에 대한 ‘대안공간’ 성격을 띤다. 따라서 대중접근성을 높이고 내용과 형식을 개방해야 한다. 동시에 인문학 본연의 비판적 힘을 지키고, ‘지금-여기’ 지역 현실을 스스로 사유할 수 있도록 역량을 길러나가는 것이 근본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대학교 인문학’의 과제는.
"대학교 인문학의 위기는 현 시대 한국의 대학 자체가 자본, 시장과의 경쟁이라는 이 시대의 우상에 종속된 데서 발생한다고 본다. 대학이 기업운영을 모델로 삼는 상황에서 인문학이 설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인문학 내부 책임도 있었다. 시대 현실에 대한 통찰을 잃은 인문학이 대학 안에서 스스로 제 역할을 상실한 것이다.

특히 지난 2006년, 전국 인문대 학장들이 작성한 성명서는 실로 대학교 인문학의 종말을 알렸다. 인문학 위기는 국가 경쟁력에도 부정적이므로 정부가 인문학을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였는데, 자가당착이었다. 국가 경쟁력, 즉 ‘글로벌 경쟁력’ 정책이 바로 인문학 위기를 불러온 원인이 아니던가. 즉 대학이 기업처럼 돈을 벌고, 영어로 강의하는 과목을 늘려 영어 경쟁력을 높이며, 교수들은 영어논문을 많이 쓰고 기업이 원하는 학생들을 만들어내 국제대학평가 상위 랭킹에 오르는 것. 이게 대학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이라면, 인문대 교수들은 이런 경쟁력 개념 자체부터 문제 삼았어야 했다.   

결국 성찰 없는 대학의 인문학 위기론은 가뜩이나 취약한 인문학 기반을 뒤흔드는 한편, 인문대 교수들의 밥그릇 지키기나 학교발전을 위한 돈 따먹기로 연결됐던 것이다. 이렇게 HK사업을 예로 든 것은 대학교 인문학이 이처럼 시대 현실에 대한 통찰을 잃으며 스스로 설자리를 잃어간 상황을 말하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교 인문학은 더 이상 학문담론의 생산자나 발신자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대학교수들은 먼저 대학 외부보다는 대학 내부에서 스스로의 상황을 점검ㆍ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교육부터 실천하면 좋겠다. 가령 TV 토론에서 막연하게 사회를 비판하기 전에, 먼저 연간 수업료 1천만 원을 요구하는 자신의 학교를 비판하고, 또한 아무도 읽지 않을 논문을 쓰느라 교수들을 몰아세우는 현실을 비판하고, 6만여 시간강사들이 최저생계비도 못 받는 상황을 비판하며, 나아가 대학을 마치 대기업 사원연수원 같은 기관으로 만드는 현실을 비판했으면 한다. 이때 대학교 인문학, 즉 전문적인 학술연구로서의 인문학은 구체적인 현실과 결합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정리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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