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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건축’을 살리자
‘중간건축’을 살리자
  • 김성홍 서울시립대ㆍ건축학부
  • 승인 2011.11.21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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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_ 건축의 양극화를 넘어서

세계 최빈국에서 50년 만에 경제규모 세계 11위, OECD 9위 국가로 도약했던 나라. 세계 1위의 조선업 강국, 세계 3위의 IT 강국에 오르며 세계 최고 품질의 휴대전화까지 만들어냈던 나라.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이 이룩한 눈부신 경제적 성과는 한반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진취적이고 성공적이다. 고도성장의 추동력이 건설업이었고 건축인이 숨은 주역이었다. 1980년대 후반 서울올림픽 개최를 전후해 괄목할 만한 변화를 겪었던 건설업은 1997년의 외환위기와 2008년 국제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건설업계 내부에서도 이 추세가 계속되리라고는 내다보지 않는다. 2009년 10월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국내 건설산업은 산업의 수명주기상 이미 성숙기 단계에 진입했으며, 2015년 이후 성장 둔화가 본격화 되고 2020년에는 GDP에서 건설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11% 정도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대규모 신도시 개발, 기본적인 사회간접자본시설(SOC) 확충 등의 프로젝트는 줄어들고, 대신 도심 재생이나 주택 리모델링, SOC 시설 유지 보수 등과 같은 기존 건축 및 시설물의 재생과 유지관리 분야의 프로젝트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한편 건축에도 ‘문화’가 붙고, ‘제도사’, ‘설계사’란 정체불명의 이름 대신 ‘건축가’라는 말이 일반화된 시대가 왔다. 15년 전에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안전모를 쓰고 공사장을 누비던 현장기사가 곧바로 제도판에 앉아 설계를 구상하는 건축가로 변신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이 방영되곤 했다. 반면 최근 드라마에서 건축가는 시간과 돈이 많아서 염문을 뿌리는 고상한 예술가로 등장한다. 건축의 소비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건축잡지가 재정 악화로 폐간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10여개에 이르는 건축잡지가 발간된다. 적어도 겉으로는 한국 건축계가 풍성해 보인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산업’으로서의 건설과 ‘문화’로서의 건축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크기만하다. 2000년 이후 건축이 급격히 대형화하면서, 건설-건축의 종속구도는 더욱 심해지고 건축사 사무소는 대형-영세로 양극화되고 있다. 규모의 경쟁을 벌이는 기업형사무소는 실상 기술력과 경험을 체계적으로 축적하지 못하고 있다. 규모가 큰 만큼 정치권, 정책과 제도, 경기의 흐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반면 소규모 건축사 사무소는 더욱 영세해진다. 2010년 전국의 건축사 사무소 수는 9천787개인데 그중 약 3천개는 건축사 혼자서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며 일하는 ‘나홀로 사무소’다. 또 2009년 한 해 동안 실적이 한 건도 없는 사무소가 25%(2천432개)에 이르는데 이들은 거의 폐업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소규모 사무소 가운데 ‘작업실(아틀리에)’을 운영하는 극소수 건축가들의 고군분투 덕분에 건축계가 풍성해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건설업의 비율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형 건축사 사무소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몸집을 키우려 든다. 반면 일거리가 줄어든 작업실 건축가들은 소수 문화소비층의 요구에 더욱 민감해질 것이다. 작품성을 추구하는 건축가들은 대형 사무소가 상업자본에 종속적이라고 비판하고 예술적 자율성을 주장하지만 스스로도 문화자본에 기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대형 조직에 속한 건축가와 엘리트 건축의 양자구도의 사이를 채우는 중간지대의 건축가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중간지대의 공동화는 건축이 지식서비스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기반이 무너지고 있음을 뜻한다.

196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의 건축계도 우리에게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비춰졌었다. 근대주의의 거장 건축가들이 사라진 빈자리를 실험적 성향의 소수 건축가들이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대학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실제 지은 건물보다는 대중매체나 글을 통해 담론의 장을 형성해나간 부류였다. 이른바 ‘페이퍼 아키텍트’들이다.

한편 저널과 기술과 조직을 바탕으로 한 대형 사무소는 건축의 절대적 원칙을 고집하지 않고 비즈니스와 마케팅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전 세계의 상업건축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해외에는 두 부류의 건축가 집단 사이에 탄탄한 건축가층이 형성돼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들은 작은 규모에서 새로운 공간, 형태, 구축의 실험을 축적하면서 서서히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 일단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 이들은 최고 수준의 기술자문을 받으면서 더욱 과감한 혁신을 주도했다. 미디어에 등장하기 전에 그들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을 분이다. 최근 국내에 진출한 해외건축가들 대부분은 오랜 무명기를 거친 사람들이다.

현재 한국 건축계는 이러한 건축가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점차 무너지고 있다. 우리 도시를 이루는 가장 보편적인 건축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중간건축’이라고 부른다. 중간건축이 살아나야 중산층의 경제도 살아나고, 젊은 건축가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생긴다. 그래야 기술과 디자인을 융합한 혁신건축도 생겨나고 산업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간건축이 살아나야 우리 도시의 문화가 다양해지고 풍성해진다.

이 글은 한국경제를 떠받쳐 오던 건설신화가 걷히면서 경제 양극화와 함께 찾아온 ‘건축 양극화’를 꼬집은 신간 『길모퉁이 건축: 건설한국을 넘어서는 희망의 중간건축』(김성홍 지음, 현암사, 2011.11)에서 발췌했다.

김성홍 서울시립대·건축학부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박사를 했다. 2007~2010년 한국현대건축전을 총괄기획했다. 저술로 『도시 건축의 새로운 상상력』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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