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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만 좌파
브라만 좌파
  • 이옥순 연세대 국학연구원·인도근대사
  • 승인 2011.11.2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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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순 연세대 국학연구원·인도근대사

이즈음 ‘강남 좌파’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일찍이 강준만 교수는 ‘한국생활문화사전’에서 강남 좌파를 “생각은 좌파적이지만 생활수준은 강남에 사는 사람 못지않은 이들”이라고 정의했는데요, 정치적 성향은 진보적이나 고급 승용차로 이동하는 미국의 ‘리무진 진보주의자’나 고급요리를 먹는 프랑스의 ‘캐비어 좌파’와 비슷한 의미일 겁니다. 오늘은 인도의 브라만 좌파를 소개하면서 사회상황은 다르지만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유학중이던 어느 날 네루도서관에 갔다가 한 인도인학자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인도가 개혁개방을 하기 이전이라 세계정세에 어두운 그는 ‘미국의 식민지에서 온 불쌍한 동지’라고 호칭하며 기선을 제압하더군요. 미군들이 서울거리를 활보하면서 행패를 일삼는다고 믿던 그는“미군들하고 어울려 사는데 영어가 신통치 않다”고 제 자존심에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벵골지방 브라만인 그 역사학자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따로국밥인, 이른바 심정적 좌파이자 멋으로 ‘하는’ 마르크스주의자였습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재산을 무산자들과 나눌 의향이 없다고 덧붙였지요. 그와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은 브라만 좌파들이 중심인 공산당이 올해 5월까지 34년간 벵골 주를 다스렸습니다. 인도에서 가장 먼저 마르크시즘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벵골의 브라만들이었으니까요.

마르크스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프롤레타리아의 운동을 통해 기존의 사회조건을 전복함으로써 획득됩니다. 카스트의 상층인 인구의 5퍼센트 가량의 브라만은 프롤레타리아가 아니고 사회하층도 아닙니다. 인구의 약 70퍼센트인 노동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기층민의 입장에선 특권을 가진 브라만이 투쟁할 대상인데요, 기득권자인 브라만들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소외계층을 방어해주겠다고 나선 겁니다.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말한 마르크스의 통찰과 달리 그 아편에 깊이 중독된 브라만들이 마르크시즘의 신봉자가 됐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정치에선 종교를 부정해도 생활에선 종교적 속성을 유지했답니다. 벵골지방은 지금도 종교적 축제가 많고, 특히 칼리 여신과 두르가 여신을 숭배하는 행사로 유명하지요. 여신을 숭배하기보다 인간을 숭배해야한다고 선언한 브라만 좌파들이 마르크스의 이름으로 마르크스가 비난한 힌두교를 보호한 셈입니다.

마오(毛)와 마르크스를 논하지만 여전히 미신과 카스트인식이 강한 벵골인의 성향은 1920년 10월 타슈켄트에서 인도 공산당이 창당했을 당시 집행위원회의 구성에서도 엿보입니다. 무슬림들을 제외한 5명의 발기인이 다 벵골브라만이었거든요. 더욱이 창당의 산파인 M.N. 로이는 한때 힌두근본주의단체의 열혈회원이었습니다. 그는 1930년대 불가촉민 출신의 암베드카르가 노동당을 결성하자 강력하게 반대했는데, 노동자들로만 구성된 노동당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였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다원적인 인도라서 그럴까요. 브라만 좌파들은 합리적 이데올로기와 복잡다단한 사회의 현실을 결합시키는 딜레마를 넘어 종교적 전통을 벗어 나거나 브라만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도 밖에서 들어온 마르크시즘을 지켜왔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그들의 위선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지만 인도 정치에선 이념이 편의성에 밀리는 경우가 많고, 벵골지방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그들의 정권은 지속됐습니다.

허나 가진 것이 없는 민중을 위한다고 공언하고도 실제로는 가진 것이 많은 자들, 즉 상층 카스트들이 거의 모든 것을 차지했으니 사회개혁이나 변화가 제대로 이뤄지긴 어려웠지요. 부자가 되는 것이 새로운 만트라(呪文)가 된 오늘날의 인도에서 사회경제의 발전에 한계를 드러낸 벵골의 공산당은 마침내 아래로
부터의 지지를 놓쳤습니다. 영어를 적대시하고 컴퓨터를 노동자의 일자리를 쫓아내는 악으로 규정하면서 이론적으로는 계급투쟁을 장려했으나 실제로는 태어나면서 획득되는 카스트를 용인한 이중적 가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지요.

겉과 속, 앎과 삶이 크게 다른 엘리트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판을 받았습니다. 중국의 묵자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고요. “ 그대, 사악한 지식인이여! 땋은 머리와 사슴가죽옷을 지니면 뭐하는가. 뱃속은 분노와 걱정으로 가득하거늘”이라는 부처의 말씀도 생각나네요. 언뜻 보기에 강남 좌파도 언변이 뛰어난 브라만 좌파처럼 진정성이 부족한 ‘무늬만 좌파’처럼 보입니다. 많이 쓰는 칼이 무뎌지듯 넘쳐나는 말에서 지혜가 나오기란 어렵지요. ‘창백한 지식인들’이 주목받는 세상이 아름다울 수도 없고요.

이옥순 연세대 국학연구원·인도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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