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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음악과 나와 커피 바리스타로 취업?
실용음악과 나와 커피 바리스타로 취업?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1.11.21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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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률 낮다’는 실용음악과 찾아가보니
실용음악과는 전혀 실용적이지 않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평가기준에 의하면 그렇다. 교과부 대학평가가 내세우는 ‘실용’은 ‘취업용’의 다른 이름이다. 음악적 실용과는 무관하다. 실용음악과 교수들은 “‘취업용음악과’로 명칭을 바꿔야할 판”이라며 혀를 찬다.

입시는 대박(!)을 치는데 대학평가에선 ‘쪽박’ 신세다. 지역 사립대의 한 입학처장은 “예전에는 대학입시에서 지원자가 많이 몰리는 전공이 ‘인기학과’였다. 이들 학과에 입학정원을 늘려왔지만, 올해부턴 확실히 달라졌다. 취업률 높은 학과가 입학정원을 가져간다. 대학평가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대학은 올해 실용음악과가 소속돼 있는 문화예술학부 입학정원을 18명(실용음악 10명, 공연예술 7명, 기독교미술 1명) 줄였다. 입학정원이 줄어든 세 전공의 경쟁률은 지난해와 올해 모두 수시모집 교내 평균을 웃돌았다.(위 그래프 참조) 입학정원이 가장 많이 줄어든 실용음악 전공은 이번 수시전형에서 40명 모집에 814명이 지원했다. 경쟁률 20.4대 1. 문화예술학부 안에서 모집단위가 가장 많았음에도 경쟁률이 월등히 높았다. 소위 말하는 인기학과다.

인기학과에서 빠져나간 입학정원은 어디로 갔을까. 취업률 혜택을 톡톡히 누릴 수 있는 보건계열로 옮겨갔다. 취업률이 낮은 학과에서 줄인 정원을 취업률 높은 학과에 배정하면 대학 평균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학은 취업률 100%에 육박하는 간호학과에 올해 50명을 더 배정했다. 보건계열에는 또 물리치료학 계통의 학과를 신설하고 20명을 선발했다.

입학할 땐 우등생, 졸업할 땐 무직자(?) 

“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한 실용음악과 학생들이 4년 동안 어떤 교육을 거쳐서 ‘무직자’가 되냐는 말씀이시죠?” 수도권 대학의 한 실용음악과 교수는 기자의 질문에 멋쩍게 웃었다. 실용음악과 학생들은 입학 때는 우등생인데 졸업반이 되면 열등생이 된다. 대학평가의 그늘이다. 이름에 걸맞지 않게 의외로 취업률에 취약점을 보이는 실용음악과의 실상을 들여다 봤다.

우선 실용음악과는 보컬·밴드·작곡 등으로 나뉜다. 각각 전공실기와 연주테크닉을 익힌다. 컴퓨터 음악이나 영상음악도 가르친다. 실용음악과 학생들은 빠르면 중학생 때부터 실용음악학원을 통해 기초실력을 다진다. 경쟁률이 높은 만큼 고교 진학을 기점으로 수년 간 입시준비에 돌입해야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약 3년은 경력을 만드는 기간이다. 실용음악학원에 출강하거나 전국 각지의 대회 상금 등으로 콘서트, 녹음 비용을 마련한다. 실용음악학원은 주 3회 강습에 100만~150만원을 벌 수 있다. 웬만한 풀타임 아르바이트나 직장일보다 음악활동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비교적 많다. 졸업생들은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독보적인 음악세계를 알려야 한다. 그래야 음반회사든 기획사든 방송국이든 ‘취직’의 기회가 주어진다.

여타의 예술분야도 그렇겠지만, 실용음악과 학생들에게 취업은 일단 자신을 ‘알리는 것’부터가 시작인데, 졸업하고도 수년이 걸린다. 자신의 음악세계와 존재를 한 분야에 심는 일은 한두 해만에 결정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용음악과 교수들도 졸업 후 3년~5년의 음악활동을 주목한다. 그러나 엄연히 교육적인 관리이지 취업률 지표관리와는 거리가 있다. 

대학평가에서 실용음악과 학생들의 취업률이 말썽을 일으키는 부분은 이 지점이다. 실용음악과 학생들이 걸어가는 길은 교과부가 제시하는 취업률 지표(졸업후 1년 이내, 직장건강보험 가입자)와 동떨어져 있다.

수도권의 한 실용음악과 A교수는 최근 같은 예술대학의 피아노과가 취업률 0%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취업률을 찾아봤다. 실용음악과는 7%로 0%는 면했다고 안도했다.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 취업률 통계에 잡힌 학생 2명은 일찌감치 전공을 포기하고 핸드폰 관련 업체와 일반 기업체에 입사한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취업률 높여줘서 고마워해야 할지… 웃을수도 울수도 없는 노릇이다.” A교수는 난감했다.

지역 B대학 실용음악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취업률 통계에 잡힌 학생들은 화장품 회사에 취업한 학생이거나 대학 조교, 커피 바리스타 등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교수님, 그냥 음악하면서 살랍니다”

물론 전공을 살려 취업률 통계에 잡히는 길도 있다. 음악 관련 회사나 방송국 등에서 음악선곡을 담당하는 프로듀서나 스튜디오 엔지니어, 음향기사 등이다. 실용음악과 교수들은 그러나 “졸업 1년 이내에 이런 일자리를 얻는 졸업생은 극소수”라는 데 입을 모은다. 최우혁 백석대 교수(실용음악과)는 “음악 분야는 프리랜서 시스템이라 스스로 다양한 활동을 찾아다니면서 경력을 만들어가는 만드는 시스템이다. 일반적인 기업체와 채용방식, 규모, 승진 체계가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대학평가를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하면서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최근에는 국세청DB까지 활용해 취업률을 산정하기로 했다. 1인 창업자, 해외 취업자 등이 취업자로 인정된다. 공연, 행사, 음반 활동이 활발한 실용음악과 학생들은 크게 와 닿지 않는 기준이다.

교과부가 제시한 취업기준 마감(12월 31일)이 한 달 남았다. 이달 말까지 취업이 되면 12월 31일 전까지 건강보험료를 낼 수 있어, 대학마다 막바지 취업률 끌어올리기에 온힘을 쏟고 있다. 실용음악과 교수들은 현실적인 고민에 깊숙이 빠져있다. 여느 교수들처럼 학생들을 불러 전공지도를 하면서 전공을 포기하는 학생들을 기업체에 연결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이마저도 먼 길을 내다보고 음악세계를 다져가려는 학생들에겐 공허한 수사로 들릴 뿐이다. 취업기준 마감이 코앞에 닥쳤어도 학생들에게 중요한 건 취업률보다 음악이다.

글ㆍ사진=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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