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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물을 바라보는 방법
원로칼럼_ 물을 바라보는 방법
  • 금장태 서울대 명예교수·한국유교
  • 승인 2011.11.2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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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장태 서울대 명예교수·한국유교
“정치의 治는 물을 다스림(治水)에서 나온 말이다. 法이라는 글자에도 물의 뜻이 있으니 법을 맡은 사람들은 물처럼 투명해 사심이 없고 물처럼 평평해 치우침 없게 하라는 가르침을 찾아낼 만하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려면 산이 높거나 물이 맑은 곳을 찾아가게 된다. 공자는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보면 마음에 고요함과 안정될 수 있으니 인자한 사람이 산을 좋아할 것이요, 맑고 깊은 물을 바라보면 생각도 맑고 깊어질 수 있으니 지혜로운 사람이 물을 좋아한다는 말로 이해된다.

공자는 시냇물을 바라보며 “가는 것은 이와 같도다! 밤이나 낮이나 그치지 않는구나”라 했다. 쉬지 않고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인생에서 배움의 길은 잠시도 중단됨이 없어야 함을 배워야 한다는 말로 이해된다. 그렇지 않으면 무궁하게 변화하며 전개되는 이 우주에서 그 변화를 일으키는 불변의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흘러가는 물에서 쉬지 않고 나아감의 의미를 깊이 음미해보라는 가르침 인듯하다.

노자는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만물을 적셔줘 숨 쉬고 살아가도록 잘 도와주지만 만물의 위에 올라서려고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다. 올라서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가서 머물고 있는 사실을 눈여겨보라고 한다. 이렇게 물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은 모든 생명을 살아가도록 도와주면서도 결코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낮추기만 하는 겸허한 미덕을 물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물을 보면서 물이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을 보는 공자의 눈길과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는 노자의 눈길은 다르다. 그러나 중단함이 없이 노력해 배움의 길을 가는 것도 중요하고, 모든 생명을 살아가도록 도우면서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허함의 덕도 소중하니, 양쪽 다 우리가 물을 바라보며 배워야할 좋은 덕목임에는 틀림없다.

물은 인간이 살아가는 생활 속에 이미 깊이 침투해 있다. 정치의 ‘治’도 물을 다스림(治水)에서 나온 말이다. 물을 다스린 전설적 영웅은 禹임금이다. 우임금은 인간의 욕심에 따라 제방을 쌓아 물이 넘치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려 하는 물의 성질을 실현시켜 물길을 터줘 바다로 잘 흘러가게 해 치수에 성공했다. 그래서 정치도 백성의 뜻을 따라 모두가 고르고 편안하게 살게 해주는 것이 올바른 정치라는 것이다. ‘法’이라는 글자에도 물의 뜻이 있으니, 법을 맡은 사람들은 물처럼 투명해 사심이 없고 물처럼 평평해 치우침 없게 하라는 가르침을 찾아낼 만하다.

맹자는 “물을 구경하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여울져 흐르는 물결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누구나 물 구경을 좋아하는데 그 방법으로 ‘여울져 흐르는 물결’을 보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잔잔한 물보다 세차게 포말지어 흐르는 물을 보면, 물이 흐른다는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물이 흐른다면 어디서 흘러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근원을 돌아보기도 하고 종착지를 내다보기도 한다면 눈앞에 여울져 흐르는 물결을 보면서도 시야를 무한히 넓힐 수 있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에서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나 사태를 바라보면서도 눈앞의 현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 현상의 원인이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 폭넓게 사유하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일은 근원이 있고 ‘결국’이 있기 마련이니, 세상 살아가는 이치가 바로 흐르는 물에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물가에 나가 물을 바라보면서도 상쾌한 기분만 즐길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바탕도 물처럼 맑은지 되돌아보고, 내가 살아가고 배워가는 길도 성급하게 건너뛰는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는지 되짚어볼 만하지 않은가.

금장태 서울대 명예교수ㆍ한국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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