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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대학을 위협하는 것들
[대학정론] 대학을 위협하는 것들
  • 논설위원
  • 승인 2002.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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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25 16:58:27
1997년 말 IMF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싫건 좋건 ‘변화’라는 건,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변화당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편으로 무섭기조차 하다. 한국 대학 역시 이러한 변화의 강박을 안팎에서 경험하고 있다.

최근 우리 대학들이 모색하는 발전 방향은 비록 외형적인 확장에 치중하긴 했으나, ‘내실있는’ 교육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기초학문육성책을 챙겨주는 것도 그렇고, 대학마다 우수 신입생을 유치하거나, 훌륭한 교수를 모시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우울한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와 대교협이 밝힌 바에 따르면, 2002년 정시모집에서 4년제 대학들은 모두 38만3천5백33명을 모집하게 돼 있는데, 2만7천1백82명의 신입생이 모자란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미충원을 감안해 대학마다 정원을 늘렸기 때문에 ‘미충원’ 문제는 다른 각도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지방대의 경우, 이런 사정을 감안해 정원을 낮게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큰폭의 미충원율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있다.

갈수록 악화되는 지방대 현실을 보면, 신입생 유치 실패는 앞으로의 대학 운영에 커다란 차질을 빚을 악재가 분명하다. 불 보듯 뻔한 심각한 재정난에서부터, 학문 재생산 문제, 지역 문화에 기여하는 인재 육성 등 대학 고유의 기능이 크게 위축될 것이다.

이 우울한 소식에 이어, 몇몇 대기업이 우수인재를 해외에서 구한다는 소식도 결코 달갑지 않다. 이들 대기업이 ‘우수인재’를 해외에서 구한다고 해서 탓할 이유는 없다. 세계 경쟁력을 기치로 내건 비즈니스의 세계일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산업 현장의 특성을 반영한 인력 채용은 응당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국내의 고급두뇌가 남아돌고 있는 상황에서 입도선매식으로 해외에서 입맛에 맞는 두뇌를 모셔온다고 야단을 떠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해외대학 졸업자로 연구 인력을 채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질수록, 국내 대학은 척박해진다. 우수학생들의 외국 유학이 이어질 테고, 결국 국내 대학·대학원 교육은 갈수록 질적 저하가 일어날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 대학의 지적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하고, 백년대계의 안목에서 학문후속세대와 고급두뇌를 육성하는 방책을 찾는 작업은 대학과 관련 당국만의 일이 아니다.

대학은 결국 한 사회의 미래로 가는 지적 山林인데, 이게 지금 황폐해진다면 그토록 우려하고 두려워했던 지식 종속화가 심화될 것이다. 학계 곳곳에서 머리를 맞대고 ‘우리 학문’을 모색한다거나, 제대로 된 학문후속세대 육성을 위한 고민들을 짜내고 있을 때,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한 주축에서 손쉬운 인력 조달 방편을 생각해내고, 거기에 무게를 실어버린다면 결과가 두려울 따름이다.

차제에 대학은 세상의 흐름을 선도적으로 변화시켜나가고 있는 관련 분야 학문의 골격을 점검하고 프로그램의 내실을 기해야 한다. 언제까지 ‘바깥’의 목소리에 끌려 다니는 참담한 꼴을 보일 것인가. 깊고 단단한 학문의 천착 없이는 이런 휘둘림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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