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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과학과 인문학의 만남3 - 인지과학과 인공지능
[연재]과학과 인문학의 만남3 - 인지과학과 인공지능
  • 교수신문
  • 승인 2000.12.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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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18 15:14:18
인공지능 연구 새 장 연 ‘마음’의 연구


박승수 / 이화여대·전자계산학

미국 유학시절 MIT대학의 촘스키(N. Chomsky)교수가 특별강연을 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강연장을 찾은 적이 있다. 촘스키는 컴퓨터학도에게는 거의 신적인 존재로 인식될만큼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로서 컴퓨터 이론, 특히 프로그래밍 언어 이론을 정립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의 명성 때문인지 넓은 강연장의 좌석은 거의 찼고 서서 듣는 사람도 꽤 많았다.

잠시 후 촘스키 교수는 강단에 올라 청중을 둘러본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에게서 컴퓨터 강의를 듣고싶은 분 손을 들어주십시오.” 얼른 손을 들고 돌아보니 십 여명 정도만 손을 들고 있었다. “언어학이나 언어철학 강의를 듣고싶어 오신분?” 이번에는 좀 더 많은, 한 삼사십명이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나의 반정부 연설을 듣고자 하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이 질문에 대부분의 청중이 환호하며 우레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온다. “앞의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대부분이 원하시니 할 수 없군요.” 그리고 그는 정부가 매스컴을 이용하여 어떻게 여론을 교묘하게 조종하는가에 대하여 언어학자의 입장에서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가 인문학자였다는 사실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를 분석하여 이를 수학모형으로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모형이 인간의 언어 뿐만 아니라 기계언어, 즉 프로그래밍 언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은 후일 내가 인공지능을 연구할 때에도 해당분야 뿐만 아니라 학제를 넘어선 다양한 분야들을 참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사람의 인식능력을 규명하고자 하는 인지과학은 이미 오래전부터 철학, 수학, 물리학, 생물학 등에서 부분적으로 다루어졌지만 이것이 독자적인 학문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초기의 인공지능은 컴퓨터에 의한 피상적인 인간의 흉내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차츰 문제의 핵심에 대한 해결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문제의 핵심이란 바로 컴퓨터가 어떤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수렴됐다. 이 문제가 대두된 것이 촘스키 식의 의미가 분리된 분석만으로는 사람의 언어를 구문분석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이해’에 대하여 사람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컴퓨터에 ‘이해’의 능력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은 학제를 초월하여 다각적으로 진행됐다. 어떤 개념을 컴퓨터가 이해한다는 것 - 그것은 개념 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다른 의미와의 관계까지 포괄적으로 다루어져야 된다. 그래야만 모든 가능한 상황에서 그 의미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이해’ 능력을 컴퓨터에 구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공지능은 크게 세 가지 모형을 다른 학제로부터 빌려온다. 첫 번째는 심리학에서 심리 모형으로 제안됐던 의미망(semantic network)으로서 이것은 초창기 인공지능의 가장 일반적인 지식표현방법으로 채택됐는데 몇 차례 중요한 기능이 부가되어 지금도 프레임이나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등의 형태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의미망은 추론방법의 제한성 때문에 간단한 개념 이상을 다루고자 할 때 한계를 드러낸다. 두 번째는 논리학 모형으로서 철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추구해온 기호에 의한 지식표현 및 추론방법을 컴퓨터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의 추론 능력이 기호의 연산으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에 계산에 적합한 컴퓨터로서는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외 없는 진리만을 다루는 논리학이 모순투성이의 실세계를 표현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노출됐다.

세 번째로 생물학적 모형을 흉내낸 신경망 모형이 있다. 이것은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올바로 반응하는 패턴을 학습시킴으로써 그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것으로서 패턴인식 등 몇몇 특정 분야에서는 탁월한 효과를 보이고 있지만 일반적인 ‘이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이 있다.

이처럼 인공지능 연구에는 학제간의 연구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됐고 그러한 장을 마련한 것이 인지과학이다. 즉, 인지과학에서는 철학, 심리학, 언어학, 신경과학, 뇌과학, 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학제를 초월해 인간의 마음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의 언어정보연구센터(CSLI)나 MIT의 인지과학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성공사례라고 볼 수 있다. 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인지과학이 독립된 학과로서 존재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대부분 몇몇 관련 학과의 협동 프로그램 형태로 대학원과정으로만 제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컴퓨터의 개발방향이 빌 게이츠가 예측한대로 사용자 편의중심의 대화가능한 컴퓨터라고 본다면 인지과학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인간과 컴퓨터의 소통(HCI)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는 역시 기계의 ‘이해’능력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21세기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로봇분야도 인지과학이 꼭 필요한 분야이다. 이미 소프트웨어 로봇이라 불리는 지능형 에이전트는 인터넷 환경에서 정보를 검색할 때나 전자상거래의 중계자로서 그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학제간 연구에 근거한 인지과학의 경우 학문적 폐쇄성에 익숙한 우리 현실에선 활성화에 어려움이 크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의 과학 및 교육 정책 수립에 이러한 내용이 반영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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