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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解 방법 놓고 머리 맞대니 '文明'이 보이네
註解 방법 놓고 머리 맞대니 '文明'이 보이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11.16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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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 100회째 콜로키움 열다

 

11월 7일 오후 3시 서울대 대림관 5층 인문학연구원 대회의실. HK사업단 가운데 가장 많은 고급 두뇌가 포진된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단장 송용준·중어중문학과, 이하 문명사업단)이 100회째 콜로키움을 시작했다. 50여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대회의실의 공기에는 유머와 긴장감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두 명의 발제자를 내세워서 발표를 듣고, 회중이 다시 질문과 대답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 콜로키움은 6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공식 명칭은 '문명의 텍스트' 콜로키움이다. 문명사업단이 핵심연구사업인 '문명의 텍스트' 주해를 위해 발표와 토론의 방식으로 운영해 온 학술행사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인문학 연구는 각 분과 학문의 울타리에 갇혀 있었고, 설사 공동연구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개별 연구자들이 단독으로 연구한 것들을 모아 놓은 ‘일련의 연구 성과’라는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문명의 텍스트' 콜로키움에서는 매주 1~2명의 연구자가 주해내용을 발표하면, 다양한 분과 학문의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학문체계에서 가질 수 있는 의문과 의견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발표자는 설명, 또는 반박을 한다. 이러한 과정이 거듭되면서, 학문의 경계를 넘어선 공통의 주해 방식이 자연스럽게 모색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지난 6월 7일 출간된 ‘문명텍스트’ 총서 1차분(한길사 刊, <교수신문> 605호, 2011.6.13 참조)은 다양한 학문 분과의 목소리가 담기게 됐다. 한마디로 문명의 텍스트 콜로키움은 인문학이 할 수 있는 학제간 공동연구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려는 모색(시도)이라고 할 수 있다.

집단지성으로 '막다른 길' 헤쳐나가기

 이번 100회 특집의 주인공은 서양 중세사와 프랑스 도시사를 전공한 박용진 연구교수와 중국 근현대사상사를 전공한 이혜경 연구교수였다. 이들은 각각『산티아고 순례안내서』와 중국 근대 사상가 양계초의『新民設』주해 작업을 소개했다. 앞의 책은 오늘날에도 순례자들과 여행객들을 사로잡고 있는 스페인 북부의 도시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을 문명사적으로 더듬어볼 수 있는 문헌으로, 중세 기독교 문명의 고전으로 꼽히는 『성 야고보 記』가운데 제5권이다. 양계초가 1902년 내놓은『新民設』은 한국 개화파에게도 사상적 영향을 미쳤을 정도로 동아시아 지성 판도에서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는 책이다.

그렇다면 박용진 연구교수는 이 낯선『산티아고 순례안내서』를 어떻게 우리말로 주해하려는 걸까. 12세기 초의 문헌으로서 순례를 통해 형성되는 기독교 문명을 살펴보려는 것을 주해의 목적으로 내세운 그는 기독교에 대한 중세인들의 생생한 생각, 문명의 흔적을 읽어내기 위해 이들 중세인들 사이에 형성된 성유물과 성인숭배 의식에 시선을 맞췄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지방의 도시로서, 예루살렘 및 로마와 더불어 중세 3대 순례지였다. 그는 "『산티아고 순례안내서』는 지방에 따라 어떤 성유물과 성인을 숭배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료이므로, 중세인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콜로키움의 특성인 多聲的 대화의 가능성은, 이 순례 안내서가 '길'을 따라 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길은 중세의 다양한 도시들로 이어져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박 연구교수는 이 점을 강조한다. " 『안내서』는 여러 도시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도시들은 순례를 통해 연결돼 있었다. 즉 순례는 도시를 만들고 중세의 상업망을 구축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안내서』에는 도시들의 이름만 언급됐을 뿐 도시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문명의 텍스트' 콜로키움이 지닌 특성을 짐작할 수 있는 '막다른 길'이다. 각 문명의 고전을 단순 번역하지 않고, 이들을 적극 '주해'하겠다는 문명사업단의 애초 목표는 이러한 '막다른 길'을 헤쳐나갈 때 견고해진다.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안내서』 제 9장은 성당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의 성당건축에 대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줄 것이다. 또한 순례길을 따라 대규모의 성당이 건축됐으므로(Burgos) 이 성당들의 특징을 비교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전공으로 무장한 會衆의 집단지성이 길을 열어줄 수 있다. 박 연구교수는 건축학, 이슬람학, 종교학 등 다른 분야 연구자들의 참여 가능성을 시사했다. 아니나다를까. 발표를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질문이 쏟아졌다. 궁금증과 조언이 뒤섞여 있었다.

 

문명의 텍스트를 주제로 HK문명연구사업단 100회째 콜로키움이 열렸다.

 

송유레(헬레니즘 시대 철학 전공자): 라틴어로 쓰여 있는데, 누구를 위해 쓰여진 책인가?

발표자: 평신도를 이끄는 성직자를 위해 쓰인 책. 산티아고 순례는 지방 중심의 성인 숭배를 억제하고 로마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한마디로 중앙집권화된 기독교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김능우(이슬람학 전공자): 이슬람에서 순례가 상업망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는데, 유럽은 어떠한가?

발표자: 유럽에서도 순례를 통해 상업망이 생기고, 도시가 성립한다. 건축양식으로 볼 때에도 순례길을 통해 건축 양식이 전파됐다.

고일홍(고고학 전공자):(연구원 주해서) 전체 주제가 '교류와 충돌'인데 『안내서』는 어떤 점에서 교류와 충돌의 측면을 가지고 있나?

발표자: 건축양식을 보면 스페인에서 프랑스쪽으로 건축양식이 전파됐음을 알 수 있다.

이혜경(중국철학 전공자): 중세 성당이 신체에 비유되는 등 건축에 많은 상징들이 사용됐다고 했는데, 그러한 방식이 유럽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가, 그리고 오늘날에도 그러한가?

발표자: 수많은 상징이 사용됐다. 그러나 이러한 양식의 지리적 범위는 스페인과 프랑스까지라고 할 수 있다.

서정일(건축학 전공자): 건축 관련 용어의 기원을 밝혀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아울러 교회의 머리 부분(동쪽 예배당)이 발달하게 된 것은 순례를 위해서이다.(조언)

김주관(인류학 전공자): 로마 달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떤 기념일을 중심으로 시간을 계산하는 것은 호피족(아메리카 원주민) 등에게서도 나타나는 시간 표현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기념일을 중심으로 시간을 구분하는 방법이 인류의 보편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발표자: 인류의 보편적 현상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이교의 전통인 로마력을 사용하는 것은 중세의 기독교가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안재원(로마 문헌학 전공자): 번역 용어에 대한 의견제시. ‘복자 칼릭스투스’라고 돼 있는데, ‘복자’라는 말은 사후에 붙여주는 칭호이므로 이 책이 칼릭스투스 교황이 죽은 뒤에 쓰였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나? 그렇다면 이 책을 쓴 사람은 누구인가?

발표자: 옳다. 그러므로 이 책은 교황 사후에 쓰인 책이다. 저자는 에메리 피코라는 사람으로서, 교황 칼릭스투스의 비서쯤 되는 사람이다.

유원수(몽골학 전공자): 몽골의 전통 시가에도 ‘목이 잘려서 신체와 분리된 용사’이야기가 있다.

발표자: 목이 잘린 이야기는 기독교 사회에서 꽤 많은 이야기이다.

강성용(인도철학 전공자):산티아고 순례를 통해 중세 당시의 사람들이 실제로 얻은 것은 무엇인가?

발표자: 순례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죄를 지은 데에 대해 면벌(면죄)을 받으려는 목적과 병을 고치려는 환자라는 두 종류이다. 산티아고 순례의 경우 1/3을 감경받을 수 있다.

안성찬(독일문학 전공자): 현실적인 제안을 하겠다. 이 주제는 현실적으로도 관심이 매우 높은 주제이다. 그러므로 산티아고 순례를 체험하고 전문 학술서와 교양서를 동시에 집필하는 것은 어떤가?

발표자: 체력을 기른 후, 고려해보겠다.

송용준 단장, "주해서 3백권 내놓겠다"

이혜경 연구교수는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중국지식인의 국민 만들기'라는 제목으로 양계초의『신민설』주해 계획을 발표했다(도표 참조).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접점에서 가장 왕성하게 근대국가를 추구하며 돌파구를 찾으려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 전공자 누구라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고 양계초를 소개한 이 연구교수는 '신민설 소개'에서부터 '생각할 문제들'까지 조목조목 항목별로 접근했다.

주해 구상을 발표하면서도 군데군데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을 요청한 것도 인상적인 대목이다. 예컨대 "자유주의에서 '공덕-사덕'에 관한 논의를 소개해 주면 좋겠다", "공법과 사법의 구분도 도움을 줄 연구자가 필요하다"라고 직접적운 도움을 호소했다. 협력에 의해, 조직화된 팀 플레이에 의해 문명 텍스트를 정리한다는 문명사업단의 방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콜로키움은 학회나 세미나와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문명사업단의 100회 콜로키움을 엿보면, 젊은 연구자들에 의해 '고전'들이 어떤 방식으로 국내 학계로 유입, 정리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3백권의 주해서를 내놓겠다"라는 송용준 단장의 말이 허세로 들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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