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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그곳에서 ‘지구정치경제’적 시각으로 오늘을 살핀다면?
30년 전 그곳에서 ‘지구정치경제’적 시각으로 오늘을 살핀다면?
  • 장석준 시민운동가
  • 승인 2011.11.08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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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장석준 지음, 『신자유주의의 탄생』(책세상, 2011.10)

『신자유주의의 탄생』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소장: 홍기빈)와 책세상 출판사가 함께 내는 GPE 총서의 한 권으로 기획, 출판된 책이다. 부제는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인데, 어찌 보면 이 부제가 책의 주제를 제목보다 더 잘 드러내준다고 하겠다.

이 책의 특징은 한마디로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에 걸쳐 신자유주의가 처음 등장하여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을 ‘지구정치경제’적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데 있다. 이제까지는 신자유주의를 주로 좁은 의미의 경제(학)적 시각에서 다루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와 그 지구화 과정은 경제적 현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과정이기도 했다. 그것은 생활 세계·국민국가·지구 질서라는 정치의 세 층위가 서로 엇물려 들어가면서 전개된 거대한 정치 변동이었다. 이 책은 1970년대 칠레, 영국, 프랑스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전환 과정을 주요 사례로 삼아 이러한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정치’사적 측면에 주목한다.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필연적이었나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런던으로 확대되면서 런던 시내 곳곳에 이와 같은 포스터가 나부끼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칠레, 영국, 프랑스 등의 사례를 개별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만 다루지 않고 지구 질서 전반의 변동이라는 맥락 안에서 고찰한다. 그래서 1970년대의 정책 전환이 단순히 국민국가 ‘안’에서의 변화일 뿐만 아니라 지구 질서 안에서 국민국가 ‘자체’의 위상 및 작동 방식이 변화하는 과정이었다고 지적한다.

현재 신자유주의는 지난 1970년대의 태동기만큼이나 커다란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이미 신자유주의로부터 케인스주의로의 정책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관찰도 나오고 있다. 이런 시점에, 신자유주의의 초기 확산 과정에 대한 이 책의 분석은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독자는 우리 시대의 정책 전환 과정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데서도 정치와 경제를 통일시켜 바라보는 시각, 국민국가의 변화를 지구 질서의 전반적인 맥락 안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모두 7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이 책을 꿰뚫는 다음의 질문을 던진다.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과연 필연적인 현상이었는가? 주요한 정치적 결정들이 실제와는 다른 식으로 전개되었다면 신자유주의는 충분히 저지될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즉,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저지 가능했던 것 아닌가?” 이것은 신자유주의 지구화 과정이 ‘정치’적 과정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도발적인 물음이다. 이 물음에 답하자면, 신자유주의적 정책 전환을 저지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던 정치 세력의 현실 대응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정치 세력으로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 활동하던 좌파 대중정당들(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등)에 주목한다.

2장에서는 위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일정한 역사적 개괄을 시도한다. 우선 19세기 이후 세계 자본주의 전개 과정에서 ‘생활 세계·국민국가·지구 질서’라는 정치의 세 층위가 등장하고 이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 맺어왔는지 살펴본다. 이를 통해, 대공황과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서구의 주류 좌파 정치세력들이 국민국가 수준의 정치에 적응(‘과잉’ 적응)하게 됐음을 밝힌다. 그리고 1970년대의 세계 경제 불황을 앞두고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좌파와 우파에서 각각 탈자본주의 구조개혁론과 신자유주의라는 정책 대안이 대두하게 됐음을 살핀다.

남은 과제는 우리 시대 ‘정치’의 재발견

3장, 4장, 5장에 걸쳐서는 1970년에 등장한 칠레의 인민연합 정부, 1974년에 집권한 영국의 노동당 정부, 1981년에 시작된 프랑스의 사회당 정부의 정책 집행과 그 변천 과정을 살펴본다. 분량으로나 내용으로나 이 세 장이 이 책의 주요 부분을 이룬다. 사실 이 부분이야말로 이 책에서 독자들이 읽기에 가장 흥미로울 만한 대목이다. 구체적인 역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1976년 영국의 외환 위기가 1997년 한국 사회가 경험한 사태의 원형임을 확인할 수도 있고, 1980년대 초반 프랑스를 다룬 대목에서는 깡드쉬와 같은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을 좀 더 흥미진진하게 읽는 방식으로, 3, 4, 5장을 먼저 읽고 서론과 결론을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3, 4, 5장이 다루는 1970~1980년대 초의 좌파 정권들은 집권 전에 탈자본주의 구조개혁 대안을 준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집권한 뒤 이 정책 패키지를 집행하려(혹은 집행을 미루려) 시도했다. 하지만 당시의 국내외 변수들에 직면하여 강제적으로 혹은 자발적으로 신자유주의 쪽으로 정책을 전환하게 된다. 개별 국가의 사례를 지구 질서 전반의 맥락에서 조망하기 위해 1970년대 초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와 함께 시작된 신자유주의 확산의 전반적 과정도 함께 추적한다. 각 나라의 사례를 다루면서 그 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사료들을 발굴, 소개하여 역사서의 성격도 겸비하도록 했다.

6장에서는 주로 영국 노동당의 사례를 중심으로 1970년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전환으로부터 비롯된 좌파 정당의 정체성 혼란을 짚어본다. 이러한 정체성 혼란이 단순한 노선 문제가 아니라 결국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추동한 정치 구조 변동과 연관된다는 게 이 장의 주된 관심사다.

마지막으로 7장에서는 1장에서 던진 물음에 대한 일정한 답변을 제시한다.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분명히 하나의 ‘정치’적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항 세력인 좌파 정당들이 신자유주의 지구화를 실제 저지하지 못한 것은 서구의 주류 좌파 세력들이 그간 국민국가 수준의 정치에 ‘과잉’ 적응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추구하려 한 탈자본주의 구조개혁의 정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생활 세계·국민국가·지구 질서’라는 정치의 세 층위의 새로운 재편이 필요했었다.

이것을 신자유주의가 30여 년  만에 위기에 봉착하게 된 현재 상황에 적용해본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단순히 30여 년 전의 정책으로 돌아가는 게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문제는 정치의 기본 구조 자체를 새롭게 짜는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의 몰락과 함께 등장하고 있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같은 새로운 대중운동의 과제는 우리 시대에 맞는 ‘정치’를 재발명해내는 일이다.

물론 정당을 만들고 집권하는 일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이 책이 검토한 70년대-80년대 사례는 그것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7장 결론 부분에서 제시하는 생태(사회)주의의 생활 정치 복원 시도나 라틴 아메리카 진보 세력의 지역통합 시도는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려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는 시장지상주의의 문명적 프로젝트에 포획되어 버린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재)점령’하는 운동으로 확대돼야만 하는 것이다.

장석준 시민운동가
필자는 전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을 지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자문위원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혁명을 꿈꾼 시대』등이 있으며, 옮긴책에는 『안토니오 그람시-옥중수고 이전』(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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