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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 상어의 자유는 작은 물고기에게 죽음 의미”
“바다 속 상어의 자유는 작은 물고기에게 죽음 의미”
  • 임운택 계명대·사회학과
  • 승인 2011.11.0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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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는 불공정무역협정이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비준을 앞두고 다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한미 FTA가 향후 가져올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파장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정부ㆍ여당은 한미 FTA가 체결되면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5.7% 증가하는 경제효과가 있음을 주장하면서 수출과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에 FTA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을 강변한다. 과연 그럴까.

정부가 산출한 방식과 유사하게 표준모형으로 추계한 국제통상연구소의 연구결과를 보면 한미 FTA의 경제효과로 인한 실질 GDP 증가율은 0.20~0.31%p에 불과하다. 결국 자유무역을 통해 기대되는 투자효과와 일자리 창출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수년 동안 정부(이전 정부 포함)는 자유무역협정이 한국경제에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엘도라도’처럼 포장해왔다.

그런데 한국이 맺은 최초의 자유무역협정인 한-칠레 FTA의 현주소를 보면 결코 주장과 사실이 부합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FTA협정 체결 이후 7년이 지난 오늘, 한국의 대칠레 무역수지적자는 89억 달러에 이른다(한국무역협회 자료).

지난 7월에 발효된 한-EU FTA의 성적도 마찬가지이다. FTA협정 발효 뒤 4개월이 지난 현재 한국 대 EU와의 무역수지 폭은 같은 기간에 비해 37억 달러나 악화됐다. 정부의 자화자찬이 무색할 지경이다. 상대적으로 중량급 파트너인 EU는 그렇다 치더라도 경량급 파트너로 선택한 칠레와의 교역에서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미국과의 FTA가 기대처럼 현실화되기란 어려울 것이다.

한미 FTA의 전망을 어렵게 하는 것은 양국 간의 무역협정이 철저하게 불공정무역협정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무역협정은 그 형식이 쌍무적이든, 다자간 형식이든 참여한 국가 간의 철저한 이해득실에 기초해서 맺어지는 것이 기본이고, 철칙이다. 협상은 자유무역의 형식 속에서 철저하게 자국무역의 보호주의를 관철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유무역의 화신으로까지 비유되는 미국의 바그와티 교수는 다양한 특혜무역협정이 일종의 스파게티접시효과(spaghetti bowl effect)를 만들어낸다고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국제적 차원에서의 다자간 무역협정을 추구하는 WTO가 각종 라운드를 통해 의견조정을 해도 합의의 일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현재 한미 FTA협정을 보면 이것이 쌍무협정인지, 단일협정인지 모를 정도로 완전히 미국 일방적이어서 경제적 손실과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불안이 우려되며, 나아가서 국가 주권의 문제마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점에서 심히 걱정스럽다.

그간의 논쟁과정에서 자주 언급된 몇 가지 사례만이라도 다시 한 번 상기해보자.

우선, 이번 국회비준을 앞두고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투자자-정부제소제(ISD)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심각한 독소조항이다. 이에 따르면 미국기업은 언제든지 불공정 무역사례를 근거로 한국정부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에 제소할 수 있게 되며, “미국정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한-미 FTA를 근거로 청구권이나 항변권을 갖지 못하게”되어 있다(한-미 FTA 이행법안 102조 c항). 미국만큼 자유무역의 이해득실을 가지고 있는 EU조차 ISD는 무역규범으로 상정하지 않고 있다.

둘째, 한미 FTA에는 ‘래칫조항'(소위 역진방지조항)을 담고 있다. 일단 시장을 개방하면 결코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규정으로, 이는 정부의 공공정책을 제한하는 심각한 주권침해조항이다.

셋째, 한미 FTA는 주권국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법률행사에서 불평등 지위를 용인하고 있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이는 국내법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상위의 지위를 점하는 반면(이미 상당수의 국내법이 그에 따라 개정을 앞두고 있다), 반국가주의 정서가 강한 미국은 개별 주(state)가 연방차원의 법률을 반드시 준수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주의 법률이 한-미 FTA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무효화되지는 않으며, 개별 주가 반드시 한미 FTA를 준수할 의무를 지니지도 않는다. 실제로 지난달 12일 미국의회가 의결한 법안은 (우리 국회가 비준하려고 하는)한미 FTA협정문이 아니라, 한미 FTA 이행법안(Implementation Act)이다.

넷째,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인 제로잉 조항(수출가격이 국내가격보다 높을 때 마이너스로 계산하지 않고, 0으로 간주하여 덤핑 관세율을 높이는 방식)이 그대로 협정안에 담겨 있다. 이는 WTO 회원국 중 미국이 유일하게 시행해온 무역보복 관행이다.

다섯째, 한미 FTA가 철저하게 실익을 추구한다면서도 이번 한미 FTA 협정문에 개성공단은 배제돼 있다. 한미 FTA를 개시한 고 노무현 대통령조차도 한미 FTA협상은 철저하게 국익을 기준으로 하고, 조건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 중단해도 좋다고 하면서 국익외교를 강조하였건만, 현 정부는 2007년 협상 타결 이래 미국으로부터 수차례의 재협상요구를 수용하면서도 안방의 실익마저 챙기지 못하는 불평등협약을 맺고 말았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의약품, 미국산 쇠고기 수입,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자동차 환경조건 완화 등 소위 ‘FTA 4대 선결조건’을 운운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불평등 조약이 곧바로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한국경제는 한미 FTA와 한-EU FTA가 없이도 이미 경제규모로는 세계 13위에 올라선 국가이다. 따라서 단순히 경제적 실익만을 고려한다고 해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큰 일본이 왜 여타 경제대국과 FTA를 서두르지 않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서 세계화 현상에서 확인되듯, 자유무역협정은 단순한 경제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정치적 차원과 직결된다. 설사 정부ㆍ여당이 주장하듯 한미 FTA가 윈-윈 전략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개방시장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제한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바다 속 상어의 자유는 작은 물고기에게 죽음을 의미한다”는 브레히트의 잠언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만하다.

 

임운택 계명대·사회학과
독일 마르부르크필립대에서 박사를 했다. 「EU의 FTA 사례분석: 투자이슈를 중심으로」, 『한미 FTA와 한국의 선택』 등 FTA와 관련, 다수의 저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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