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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故하동호 교수와 역시집『新月』
원로칼럼_ 故하동호 교수와 역시집『新月』
  •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11.10.04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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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학술원 회원
지금은 고인이 된 하동호 교수는 출신교가 휘문고등학교였다(당시는 6년제 휘문중학). 연세대 국문과를 나와 공주사대에서 정년을 하기 전에 작고했다. 전공이 한국현대문학이었고 그 연배로는 이름 있는 장서가였는데 그가 전공을 택한 동기의 한 가닥이 재미있다.

교수가 아닌 학생 하동호가 휘문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이 바로 시인 정지용이었다. 영어 담당인 그는 시간에 들어와서 수업을 하는 대신 자주 자습을 시켰다고 한다. 그리고는 망연하게 창가에 서서 무엇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당시 하동호는 반장이었다. 정지용 선생님의 그런 모습에 궁금증이 생긴 나머지 하루는 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지금 시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정지용 시인은 반장 하동호의 느닷없는 말에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뺨을 갈겼다는 것이다. 훗날 하동호 교수는 국문학 전공을 택하고 특히 일제치하에서 간행된 시집과 그 주변 자료 수집에 열을 올렸다. 그 동기의 한 부분이 영어시간의 체벌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말 시집들 출간 여건은 매우 열악했다. 그들은 모두가 조선총독부의 각박하기 그지없는 검열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우리 시인들의 작품집은 거의 모두가 삭제, 발간 보류가 됐다. 그 가운데는 압수, 폐기처분을 받은 것도 적지 않았다. 8·15를 맞고 나자 그런 시집들 대부분이 구해보기 어렵게 돼 있었다. 하동호 교수는 강화도 출생으로 휘문 때부터 서울에서 하숙 생활을 했다. 여유가 있을 리 없는 생활여건 속에서 그런 시집을 구입, 수집하는 데 온갖 정성을 다 바쳤다.

하동호 교수의 시집 조사 1차 보고서인 「한국현대시집의 서지적 고찰」이 <新東亞> 지상을 통해서 발표된 것은 1960년대 말기였다. 거기에는 1921년 廣益書館판 『懊惱의舞蹈』, 1923년 以文堂판, 타골의 『기탄자리』 이하 210여 권의 시집의 이름이 나온다. 그런데 하동호 교수의 이 1차 조사보고에서 빠진 일제시대 간행 시집이 몇 권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안서 김억의 손으로 된 R. 타골의 『新月』이었다.

학교를 달리한 채 나는 하동호 교수보다 조금 지각해 학부에 진학했다. 그 나머지 구간 시집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시기도 몇 걸음 뒤쳐졌다. 그런 내가 역시집 『신월』을 입수하게 된 것이 하동호 교수가 논문을 발표하고 난 직후였다.

지금 보면 역시집『신월』의 내표지에는 라빈드라나드·타고아 작, 안서 김억 역 표시와 함께『신월』이라는 제목이 고딕체로 박혀 있다. 하나 이색적인 것은 이 내제면 상단에 에스펜트어로 Rabindranath Tagore’a / La Luno Krescenta / Tradukita de la angla lingvo / de / Verda E. Kim이라는 표기가 나오는 점이다. 여기서 Tradukita 이하의 로마자 표기는『신월』을 김억이 영어판을 통해서 번역했음을 뜻한다. 김억은 한때 에스페란토 보급운동에 참여했다. 그 결과가 역시집 내제에 위와 같은 에스페란토어 사용으로 나타난 셈이다.

이 역시집을 나는 지금은 없어진 인사동 소재의 한국서원에서 구입했다. 그 주인이 대구사범을 나온 김씨였다. 그는 나를 보기만 하면 구입가격이라고 하면서 구간 시집과 잡지들을 내 손에 쥐어 줬다. 그날 나는 하동호 교수의 목록에 누락된 『신월』을 보자 흥분이 돼 가슴이 뛰었다. 서점 주인이 말하는 가격에서 얼마를 더 붙여 주고 이 역시집을 인수했다. 서점 주인이 말하는 가격에서 얼마를 더 붙여 주고 이 역시집을 인수했다.

역시집『신월』은 종서로 조판돼 있고 1면이 12행이며 마지막 면에 110면의 숫자가 붙어 있다. 그러나 실제 이 역시집의 총 분량은 101면이다. 그 사이 사정이 표지와 내표지에 삽입된 <주의> 표시로 드러난다(본문 중 57페이지에서 66페이지 사이에는 빠진 것이 아니고, 부주의로 페이지가 뛴 것이다).

『신월』을 입수한 다음 얼마 동안 들뜬 기분이 돼 있었다. 한번은 하동호 교수에게 내가 그의 서지목록에서 누락된 『신월』을 입수했노라고 자랑까지 떠벌렸다. 그런데 그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까닭이 궁금한 나에게 그의 註釋발언이 이어졌다. <신동아>에서 현대시집 서지 보고를 마친 직후에 그도 내가 가진 것과 같은 형의 『신월』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실망을 넘어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이제는 하동호 교수와 나누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아쉽다.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국문학(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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