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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한국의 ‘외국인 교수’들
진단 : 한국의 ‘외국인 교수’들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06.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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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좋아하고 학생과 격의 없는 또다른 ‘우리’
바야흐로 ‘국제화 바람’이 ‘대학가’에도 불어오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외국인 교수’를 늘릴 것이라 발표했으며, 대학들은 저마다 ‘외국인 교수 모시기’에 비상이 걸렸다. 이래저래 외국인 교수는 늘어갈 추세. 그러나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하나는 외국인 교수로 인해 국내 교수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며, 다른 하나는 외국인 교수들을 ‘초빙’만 해놓고 ‘방치’해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무조건 ‘숫자’만 늘린다고 다반사는 아닐 것. 따라서 이번 기획에서는 ‘한국’이라는 낯선 타지에서 교육부, 대학, 국내교수들,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 선 ‘외국인 교수’의 위상을 자리매김해 보고자 한다.

‘외국인 교수’의 조건은 무엇인가. 안선재 서강대 교수(영문과)처럼 외국인의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한국인 교수’인 경우도 있고, 김지영 경희대 교수(영어학부)처럼 한국인의 핏줄을 타고나 한국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외국인 교수’인 경우도 있듯, ‘우리랑 다르게 생겼다’고 해서 ‘외국인 교수’가 되는 건 아니다.
경북대의 경우 외국인 교수초빙 요건을 ‘외국인(영주권소지자 포함)으로서 영어로 강의가 가능한 자’로 규정하고 있으며, 경기대의 ‘외국인 교수 규정’에는 ‘외국인이라 함은 외국 국적 소지자’라 명시돼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시행 지침에 따르면 초빙 대상은 ‘외국 국적을 소지한 원어민’이 원칙이다. 그러나 오는 9월 외국인 교수 1백3명이 새로이 국립대에 초빙되는데, 이들은 원칙적으로 ‘외국국적을 소지하고 외국에서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이나, ‘외국대학이나 연구소에서 5년이상 근무한 경우’는 한국 국적자도 일부 ‘외국인 교수’에 포함됐다.
결국 엄밀히 말하자면 ‘외국인 교수’의 기준은 외양도, 핏줄도, 국적도 아닌 셈이다.

‘외국인 교수’ 임용 확대 추세
어쨌든 교육부는 국내 대학의 외국인 전임교원이 전체 교수의 2.7%(2001년 4월 기준)에 불과하며, 외국인 전임교원 상위 10개 대학이 모두 사립대라는 사실을 통감했는지 국·공립대를 중심으로 ‘외국인 교수’의 비율을 늘려 나갈 것을 선포했고, 국내 유수 대학들 또한 ‘외국인 교수 모셔오기’ 경쟁에 발이 바쁘다.
서울대는 교육부에 외국인 교수 채용을 위한 60억원의 예산을 요청하고도 모자라 별도기금을 마련하기로 했으며, 외국인 전임교원의 비중이 14.3%로 평균을 훨씬 웃도는 포항공대 역시 ‘저명한 외국인 석학을 객원 또는 정교수로 초빙할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외국인교수 임용확충 계획’의 핵심은 주로 ‘외국어 등의 한정된 분야’에만, 그것도 ‘단기간’으로 외국인 교수를 임용하던 이제까지의 관행에서 벗어나 이공계 등의 분야에서의 저명한 ‘석학’들을 타겟으로 삼고 있다는 데 있다.

한 외국인 교수의 죽음
얼마 전, ㅎ대의 러시아 교수가 숨진 지 열흘 동안이나 시체로 방치됐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외국인 교수가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어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다 결국 한 동료 교수와 연락이 닿아 ‘학교 측에서는 어떻게 교수가 열흘 동안이나 학교에 나오지 않는데도 몰랐느냐’고 질문했더니, “그 교수는 일주일에 한번 강의를 하는데, 어쩌다 한번 강의를 빠질 수는 있는 것 아니냐. 2주째 수업에 나오지 않길래 학생들이 숙소로 찾아가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고 한다”는 대답이다. 그렇다면 그 외국인 교수는 학교생활을 제외한 외부와의 인간적 교류는 전연 없었단 말인가. 그래서 시작된 것이 이번 기획.

교수 연봉에 만족
뜻밖이었다. 음지를 기대하고 시작한 기획에서 한줄기 햇살를 발견할 줄이야. 외국인 교수들과 만나고, 또는 통화를 하며 던진 ‘행복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자신있는 ‘그렇다’였기 때문이다. 그 단면을 몇 가지 소개한다.
풍경1. 압둘 라만 캉 경북대 교수(환경공학과, 파키스탄)수업에는 영어를 사용하지만, 학생들과의 의사소통은 문제없다. 칠판에의 판서를 병행하기 때문. 연봉도 만족스럽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물론’ 김치란다. 그는 세상에 ‘기여’하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존경받고 있으며, ‘발전’하고 있으므로 행복하다.
풍경2. 히라사카 부산대 교수(수학과, 일본)
홈페이지의 광고를 보고 부산대에 오게 됐다. 주말에는 크리스챤인 한국인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간다. 포항공대 시절, 학생들과 축구와 농구를 즐겼었지만, 요즘은 즐거운 ‘바쁨’ 덕에 어림도 없다고. 한국어는 아직 서투르지만, 동료 교수들의 친절한 도움이 있기에 행정적 업무 수행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연봉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Sure”라는 시원스런 대답.

‘그들만의’ 문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한국에서 ‘외국인 교수’로서의 삶을 꾸려나가는 데 몇 가지 난점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물론 문제의 핵심은 ‘언어문제’.
이 문제는 언어분야가 아닌 ‘이공계’ 분야 교수의 경우 더 중요하게 부각된다.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는데, 학생들이 이를 이해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경우 강의 자체가 곤란해지기 때문. 칠판 판서에 의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학과 회의에 참여해 모든 결정들에 관여해야 하는 것도 큰 어려움.
많은 외국대학들이 타국의 ‘저명한 석학’을 모셔올 때 ‘연구교수’로 초빙한다. 연구교수라면 강의와 회의의 부담을 지지 않고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것. 교수의 업적은 대학의 업적으로 연결되므로, 대학으로서는 고려해볼 만하다.
또한, 외국인 교수들을 ‘불러들이는’ 데에만 급급한 나머지 ‘관리’에 소홀해서도 안될 것. 그들의 가족, 여가, 생활비 등의 측면을 세심히 배려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외국인’ 교수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에 온 이상 ‘한국’ 교수다.

내실있는 국제화가 되길
이러저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교수 임용 확대’는 피할 수 없는 국제적 추세다. 외국의 경우 교수채용시 타국에도 공고를 내고 있으며, 다양한 타국 교수들을 임용한다. 그러나 대학들이여, 아무쪼록 ‘겉핥기식 국제화’가 되지 않도록 조심할 것. ‘외국인 교수’를 늘리긴 해야겠는데 예산은 ‘빠듯한’ 대학들의 심정은 이해가 가나, 그렇다고 ‘단가가 낮은’ 나라에서 외국인 교수들을 불러들여 그야말로 ‘명수채우기’가 돼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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