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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적 발전론, 어떻게 전개되고 평가받았나
내재적 발전론, 어떻게 전개되고 평가받았나
  • 권진욱 기자
  • 승인 2002.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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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화론과 대결 속 성장…민족 논리 한계도

●내재적 발전론의 시작과 전개

해방 직후 한국사학계는 커다란 진통을 앓고 있었다. 분단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은 북으로 가게 되면서 균형을 잃고 있었다. 일제 시대의 영향을 받은 식민사관과 문헌고증 사학이 한국사학계의 대종을 이루는 가운데 식민사관이 덧씌우고 있던 ‘한국전통사회의 정체성과 타율성’이라는 인식체계를 반박할만한 역량이 비축돼지 못한 상태였던 것. 특히 민족 논리로 비판이 가능하던 타율성론에 비한다면 실증적 자료와 체계적 연구가 뒷받침돼야만 반박할 수 있던 정체성론은 당시로서는 거의 벗어나기 힘든 굴레와도 같았다.

일제시대에 마르크스주의 사학자였던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1933)를 통해 사회경제사의 방법론으로 과거의 전통에 이미 자본주의의 萌芽가 있었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북한 학계에서는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중반에 최병무, 김석형, 홍희유 등의 사학자들에 의해 자본주의 맹아론이 꽃피기도 했다. 그러나 식민사관의 영향력이 여전했던 남한에서는 사정이 크게 달랐다. 정연태 가톨릭대 교수(사학)는 “195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타율성론에 대해서는 비판적 관점이 있었지만 정체성론에 대해서는 오히려 이를 수긍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한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생적인 한국사학 체계를 연구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당시 학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식민사관에 대해 본격적인 비판의 포문을 연 사람이 김용섭 前 연세대 교수였다. 그는 식민사관의 극복은 史實을 부분적으로 시정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오로지 “세계사적인 보편성 위에 한국사적인 특수성을 살린 한국사 像의 수립”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봤다.

김용섭 교수는 정체성론을 실증적으로 타파하기 위해 일제시대 이전 시기인 조선 후기, 가장 비중이 컸던 산업인 농업에 대한 연구에 주력한다. 특히 그의 연구 중 백미는 ‘경영형 부농’.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양안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조선 후기 借耕地 경영을 통해 부농이 된 이들을 ‘경영형 부농’이라고 명명, 조선 후기 농업사에서 자본주의적 萌芽를 확인했다. 자본주의 맹아에 대한 연구는 강만길 前 고려대 교수, 故 송찬식 국민대 교수 등에 의해 각각 조선후기 상업, 수공업, 광업 분야에서도 이뤄졌다. 또한 내재적 발전론은 사회경제사 분야뿐만 아니라 김철준, 이기백 등에 의해 문화사, 사상사 등으로 확대, 한국사학계의 주류이론으로 자리잡게 됐다. 박현채의 사회주의적 전망을 담은 민족경제론과도 대칭되는 내재적 발전론은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전망을 담은 이론으로 평가된다. 김 교수는 오늘날까지도 전통사회의 주산업이었던 농업을 연구, 조선전기, 고려말기 등으로 시기적 범주를 넓혀왔으며 그 성과물로 한국농업사 전체를 담은 개설서를 준비하고 있다.

●내재적 발전론과 경제 성장론의 대립

내재적 발전론은 일단 식민사학을 넘어서는데 성공했지만 경제성장론 즉, 식민지 근대화론의 도전을 받아들여야했다. 논의에 불을 지핀 학자는 안병직 前 서울대 교수였다.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제시했던 그는, 1990년대에 들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제시했다. 후일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지칭된 경제성장론을 통해 그는 ‘침략과 개발’이라는 용어를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 일제시대에 침략목적으로 이뤄진 경제개발의 유산이 본격적인 경제성장의 모터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내재적 발전론은 안병직, 이대근 등의 학자에 의해 제기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거세게 비판했다. 정연태 교수는 파편적·부조적 역사인식과 일본내 보수주의자에 의한 이용 가능성을 비판했다. 이 점은 안병직 교수가 나카무라 사토루 등 일본학자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일본학계의 가설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는 사실이나 일본의 보수 언론 산케이 신문의 “한국에서 일본통치에 대한 긍정론이 대두하고 있다”는 곡필보도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확인된다. 정태헌 고려대 교수(사학) 역시 “민주화나 통일, 민중적 삶의 질의 향상 등 본질적 과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해서 일제통치를 평가해야 할 것”이라며 보수적 함의를 비판한다.

반대로 내재적 발전론에 대해서도 민족주의적 가치에 집착한 나머지 한국자본주의의 성격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전통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를 발견, 자생적 근대화의 가능성을 타진했던 자본주의 맹아론을 전체 구도에서 원하는 부분만을 추출한 이론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1990년대에 들어 미국의 한국사학계에서도 같은 목소리를 보탰다. 특히 에커트는 ‘제국의 후예들’에서 자본주의 맹아론의 방법을 “오렌지 밭에서 사과를 찾는 부질없는 노력”으로 일축하고 한국자본주의 1876년 이후에 발생한 수입품으로 단언하기까지했다. 전상인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일제시대 자본주의적 근대화에 대한 기원에 관한 이론이지 원인에 관힌 이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재적 발전론에서는 이를 혼동하고 있다”라고 비판한다.

●내재적 발전론의 의미와 한계

미시사나 풍속사, 맑시즘 등과 같이 ‘탈근대 지향’ 이론이나 비판 이론 진영에서는, 내재적 발전론이나 식민지 근대화론이 모두 자본주의 지향의 근대화론이라는 점에 대해 공박을 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국사학계 일반에서도 내재적 발전론 이후에 대해서 모색을 계속하고 있다.

서양사 전공인 임지현 한양대 교수는 “한국 사학계가 민족 패러다임에 갖혀있다”고 비판한다. 정태헌 교수나 정연태 교수는 ‘열린 민족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반면 박찬승 충남대 교수(사학) “내재적 발전론에 담긴 근대주의와 일국사적 시각을 지양해야겠지만 다원주의적 시각과 비판적 시각이 공존하게 해야한다”고 말한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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