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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시대 영어권 문학을 읽는 한 방법
탈식민시대 영어권 문학을 읽는 한 방법
  • 교수신문
  • 승인 2011.09.1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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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책갈피_『제국과 민족국가 사이에서』이석구 지음|한길사 |2011.6

내부의 목소리를 틀어막는 관행은 디아스포라 문학비평에서도 발견되는데, 디아스포라 문학은 평자에 따라서는 문화 게릴라의 무기로, 또는 오리엔탈리즘에 영합하는 문화상품이 된다. 소수민의 내부에서도 출발국의 문화에 대한 충성도나 메트로폴리스와 동일시하는 정도는 현지에서의 개인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런데도 이들의 정체성이나 정치적 신념을 출신국이나 도착국의 문화로 환원시켜 이해하거나 또는 모두 혼종이라는 단일하고도 추상적인 범주로 묶어버리는 것은 소수 집단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나 차이를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소수민 문학 연구는 개인을 유형화하는 인종주의 담론 못지않은 보편화의 과오를 저지르는 셈이다.

디아스포라나 혼종성이 추상적인 범주, 즉 고도로 일반화된 범주로 사용될 때 이는 다양한 형태의 역사적 궤적을 그리는 디아스포라들 간의 차이를, 지역에 따르는 정착 역사들의 특수성을 질식시킬 위험이 다분히 있다. 그러한 점에서 개인의 정치학, 즉 '마이크로 정치학'을 표방하는 이민자들의 담론은, 반인종주의적 연대도 내부의 차이에 유의하지 않을 때에는 서구의 인종주의와 유사한 정체성의 폭력을 저지를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쿠레이시에 대한 비평이 그 예다. 특정 인종이 특정한 식으로 재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그런 작품을 써야 할 것을 충고하는 작가를 두고 반식민저항을 논하는 것은 작가를 '저항적인 소수민'이라는 집단의 이름으로 '호명'하는 셈이며, 또한 탈식민주의 비평가의 개인적인 의제를 작품에 투사한 꼴이 된다.

통상 '반식민 저항'이라는 용어는 제국의 약탈이나 파괴로부터 보호해야 할 유?무형의 토착 자산의 존재를, 즉 민족문화와 정체성의 존재를 확립할 필요성을 상정한다. 이는 또한 식민주의의 영향을 벗어나 돌아갈 곳, 보호해야 할 곳을 상정하는 용어다. 그러나 작가가 반식민적 입장에 서 있다고 보기에는 출신국의 문화나 전통을 옹호하거나 대변하려는 의지가 쿠레이시 같은 이민 2세대의 텍스트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문학 연구가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비평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개별 담론의 역사성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이크로 정치학을 표방하는 작가들을 두고 반식민 담론의 사례로 읽어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개별 담론의 역사성을 인정한다는 말은 디아스포라 문학의 의제를 하나의 의제로 인정하고 논의를 그것에 맞춘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 의제에 무조건 동의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문학 연구는 특정한 담론이 발화되기 위해서 어떤 다른 담론이 침묵됐을 가능성을 항상 열러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개인의 진실을 존중은 하되, 진실이 어디까지나 '개인의 것'임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문학 비평가는 작품이나 작품이 그려내는 세상만을 볼 것이 아니라 작품이 그려내지 않는 세상도 볼 수 있어야 한다.

□ 이 책의 저자인 이석구 연세대 교수는 미국 인디애나대(블루밍튼)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옮긴 책에는 『어둠의 심연』이 있으며, 저서로는『탈식민주의: 이론과 쟁점』(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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