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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섭과 내재적 발전론
김용섭과 내재적 발전론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06.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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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속 자본주의 맹아’ 반세기 외길
김용섭 前 연세대 교수(사학)는 조선후기 농업사에 대한 치밀하고 방대한 연구를 통해 해방 후 우리 역사학계의 가장 큰 과제였던 식민사관 극복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식민사학이 정체기의 표본으로 간주했던 조선시대를 농업 변동을 중심으로 치밀한 실증에 기초해 체계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중세 사회의 해체 과정을 내적 발전 과정으로 정리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김 교수는 농업사 연구를 통해 자생적 근대화론 즉 내재적 발전론을 부각시키며 일제 식민사관 극복에 기여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는 ‘1년 365일을 연구실에서 보내는 학자’로 알려질 정도로 고집스러우리만치 하나의 문제의식을 이끌어 나갔다.

‘조선후기농업사연구 1·2’(일조각 刊, 1970·1971)에서 김 교수는 경제과정을 농업을 통해 그 내적 발전과정의 입장에서 해명할 수는 없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보였다. 조선 후기 수전 농업의 실상과 변동을 구조적·발전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전통사회와 근현대사에서 재확인하게 되면 우리 민족사 발전의 내적 계기를 확인할 수 있다는 탁견이 발휘된 것. 이 저작은 한국사학이 실제로 식민사학을 극복하고, 식민지 유제를 청산하는 학문적 기초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같은 시기에 출간된 강만길 現 상지대 총장(사학)의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일조각 刊, 1973)은 무역 주체를 경성상인으로 설정하는데 단순히 개성상인을 상업자본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19세기 인삼재배업과 홍삼가공업에 투자, 이들에 의해 홍삼수출이 이뤄졌음을 밝혀 냈다. 경강상인의 토착 자본의 경제적 수준과 그 존재 양상을 실증하고 개성상인의 실체와 성장 규명에 초점을 뒀다. 그러나 전체적인 추이와 조선 정부의 무역 정책 및 의미 분석은 다루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밖에 조선후기 수공업에 대한 저서로는 故 송찬식 국민대 교수(사학)의 ‘이조후기 수공업에 관한 연구’(서울대 출판부 刊, 1973)가 있다.

20여 년이 지난 후 김 교수는 ‘한국근현대농업사연구’(일조각 刊, 1992)에서 다시 한말과 일제 강점기의 지주문제를 중심으로 농촌문제를 조명했다. 그 시기동안 지주제가 발전· 변동하는 과정과 지주층의 수탈로 인한 농민의 몰락과 파괴 및 지주와 소작농의 갈등과 대립을 다루면서 한국농업의 전개 과정을 살폈다. 이 과정 역시 내부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 초점을 둠으로써 한국 농업의 자생성을 증명하고자 했다.

김 교수는 최근에는 연구의 지평을 고대와 중세의 농업사로 넓혀 ‘한국중세농업사연구’(지식산업사 刊, 2000)를 발간했다. 이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고대, 중세의 토지제도 특징과 발전과정을 상세히 분석하는 한편 중세 농업정책이 조선후기 농업생산력 발전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상세히 해명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중세농업사연구’에는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근간이었던 토지제도의 변화 과정을 총정리한 ‘토지제도의 사적 추이’, 토지제도의 구체적인 운영 원리를 밝힌 ‘고려시기의 양전제’, ‘고려전기의 전품제’, ‘결부제의 전개 과정’, 우리 역사상 최대 변동기의 하나인 고려말·조선초의 농업개발 정책을 조명한 ‘조선초기의 권농정책’, ‘세종조의 농업기술’ 등 7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이번 저서는 조선후기 사회의 변동을 해명하는 데서 출발해 개항기와 일제시대를 다루었던 ‘김용섭 사학’의 연구 범위가 드디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중세의 사회 구조를 밝히는 데까지 미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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