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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학에 취업률로 부실대학 낙인 찍지 말라”
“예술대학에 취업률로 부실대학 낙인 찍지 말라”
  • 옥유정 기자
  • 승인 2011.09.19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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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_ ‘교수 전원 사퇴결의’ 추계예술대

 

추계예술대는 예술대학의 특성을 무시한 부실대학 선정에 항의해 교수들이 전원 사퇴를 결의했다.
지난 5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이주호)가 발표한 ‘하위 15% 대학’이 단단히 뿔났다. 대학들은 내년도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자구책을 내놓으면서도 이번 대학 평가에 사용된 지표 산정이 부당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여러분을 부실 대학생으로 만들어서 미안합니다. 정부의 지원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예술가의 꿈을 키워 온 여러분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한 책임을 교수들 모두 깊이 통감합니다.”

추계예술대 건물 곳곳에는 현수막과 자보가 내걸렸다. 교수들이 전원 사표를 제출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추계예술대 교수들은 대자보를 통해 “취업률 때문에 부당하게 평가받는 이 현실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우리 교수들도 모두 교수직을 내려놓고 예술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추계예술대는 2012학년도 재정지원 제한 및 신입생 학자금 대출 제한 대학에 포함됐다. 하위 15% 대학 중 절대지표 4개 중 2개 이상이 기준치에 미달되면 학자금 대출 제한을 받는다. 명단이 발표되자 학생과 교수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취업률’ 지표 때문이다. 예술분야는 취업을 해도 프리랜서가 많아 건강보험가입자만 반영하는 취업률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교과부가 간과한 것이다.

교수와 학생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이번 발표에 대한 심경을 토로했다. 최진욱 추계예술대 교수(미술학부)는 지난 7일 밤 자신의 트위터에서 “예술가가 예술작업을 모두 접고 직장에 다녀야 한다는 게 교과부의 생각이라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라며 “우리 같은 예술대학에 취업률로 부실대학 낙인을 찍지 말라”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순수예술에 대한 탄압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교과부도 건강보험연계 DB로는 정확한 취업률을 산정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지난 7월 교과부는 “내년도 취업률은 국세청DB도 고려해 취업률 산정 방식을 보완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취업률 산정 방식에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번 평가에 그대로 사용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세청DB 역시 보완이 필요하다. 졸업자가 소득이 있어도 신고를 하지 않으면 취업률로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에 선정된 상명대 정민훈 홍보과장은 “예술계열 특성상 개인적으로 잠깐씩 일하고 받은 돈은 소득신고 안하면 그만이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교과부는 이 같은 반문에 대해 “그건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일축했다.

추계예술대 학생들이 서울시내 곳곳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희재 추계예술대 교수(영상시나리오학과)는 모든 대학에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제도 자체를 비판했다. “우리 학교 학생들 순수예술 하겠다고 온 학생들이다. 우리대학의 목적은 돈을 버는 데 있지 않다”라며 “교과부는 ‘공평성’을 이야기하지만, ‘공평성’이라는 것이 하나의 잣대를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개념이 아니다. 지향하는 바가 다른 지점에 있는 학문에 대해서는 특수성을 인정해줘야 한다”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김영원 전국 미술디자인계열 대학장 협의회 초대 회장(홍익대 미술대학장)은 <교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교과부의 졸업생 취업률 산정 방식이 예술계열의 특성과 실태를 무시하고 있다”라며 정부가 사단법인으로 인정한 예술관련 협회에 등록된 졸업생은 작품 활동을 하는 것으로 인정해주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한편, 추계예술대 학생들은 교과부와 학교를 상대로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자발적으로 모여 서울시내 곳곳에서 1인 시위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추계예술대를 중심으로 홍익대, 고려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예술계열 학생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모이기 시작했다. 이현정 추계예술대 학생(판화과 07학번)은 “우리 대학의 40년의 역사가 다 부정됐다.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심적 고통을 호소했다. 부실대학 학생들을 구제하고 고등교육의 질을 제고하기 위한 교과부의 부실한 구조조정 제도가 대학생들조차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옥유정 기자 ok@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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