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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교양대학 통합네트워크(안)을 제안하며
국립교양대학 통합네트워크(안)을 제안하며
  •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미학
  • 승인 2011.09.0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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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과 기초학문, 통섭을 만나다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미학
‘반값등록금’공약 실현을 요구하며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서고 법인화 저지를 위해 서울대 총학생회가 총장실 점거에 나서는 등 투쟁이 본격화됐다. 그러자 정부는 일시적으로는 등록금 인하의 제스처를 쓰면서 구조적 위기를 심화시킬 국ㆍ공립대 축소와 법인화를 밑으로 강행하고 있다.

교수 3단체와 교육운동 단체들은 이에 맞서기 위해 아래로부터의 대학개혁안을 준비해 왔다. 그간 분리해 추진되던 ‘국ㆍ공립대학 통합 네트워크(안)’과 ‘국립교양대학(안)’이 최근 단일안으로 통합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대학입시 폐지를 통해 초중등 교육을 정상화하면서 국ㆍ공립대는 모두 공동학위제로 단일 네트워크로 묶어내 대학서열화 폐지의 토대를 마련한다. 단기적으로는 부실 사립대를, 장기적으로는 다수의 사립대를 국ㆍ공립대로 전환한다. 통합 학문적 성격의 새로운 교양과정을 3학기 동안 의무적으로 수강한 후에 전공과정으로 진학하게 해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것이 주안점이다.

공동학위를 통해 대학서열화 폐지에 역점을 뒀던 평등주의적 관점과 대학입시 폐지와 교양대학을 통한 초ㆍ중등 교육과 대학교육의 발전에 역점을 뒀던 질적 발전의 관점이 하나로 통합돼 ‘평등+ 발전’을 동시에 모색하려는 방안이다.국ㆍ공립대 확대가 사실상 반값등록금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공동학위제는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고 지역 간 교육적 균형 발전의 기반이 될 것이다. 또 새로운 통합안에서 교육기회의 평등만이 아니라 학문과 교육의 질적 발전을 동시에 모색하려는 것은 이미 극도로 ‘산성화’된 학문적 토양 자체를 새롭게 일궈 미래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자립적 토대를 구축해 가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기 때문이다.

교양교육의 전면적 확대를 통해 위기에 처한 기초학문을 새롭게 일구고 기초학문 강화를 통해 교양교육의 질적 발전을 다시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교양교육은 본래 ‘liberal arts’라는 의미다. 자립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으로 성장해 자유로운 자아실현을 하도록 하는 데 필수적인 지식과 지혜를 쌓고, 대화와 협력의 자세를 확고하게 갖춘 민주적 시민을 육성하려는 토론식 교육을 의미한다.

이는 분과학문적 지식을 입문식으로 소개하는 정도이거나 장식적 지식으로 전락한 현행의 교양교육과는 판이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세계적인 대학들도 교양교육의 본래 의미를 되찾기 위해 새로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야만 창의력이 신장될 수 있음을 다양한 연구결과가 확증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창의적 민주시민 육성을 목표로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설립해 교양교육 혁신의 선두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경희대의 사례는 우리도 정책만 바꾸면 양질의 교양교육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 준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장 잘못된 선입견 중의 하나는 ‘협력을 통한 상향평준화’는 불가능하다는 ‘미신’이다. 그러나 아이폰, 아이패드와 더불어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일상적으로 상용화되고, 소셜 네트워크가 본격적으로 개화하기 시작하면서 ‘창의적이고 민주적인 집단지성’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성공과 발전의 관건이 되고 있는 오늘날 그와 같은 미신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인지과학이 풍부한 경험적 사례를 통해 밝혀주고 있듯이 창의력은 IQ를 넘어 EQ, 그리고 사회적 지능 간의 시너지, 다양한 개인들 간의 협력의 산물이다. ‘분야와 영역을 가로질러 재구성된 통합적 형태의 새로운 교양교육과 새로운 기초학문’을 통해 창의적이고 민주적인 역량을 촉진하는 교육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초ㆍ중등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요구되는, 과다한 지식의 양을 줄이는 일이 현재의 분과학문 중심의 대학체제로는 불가능했다면, 학문간 통섭에 기반을 둔 교양교육-기초교육 강화는 초ㆍ중등 교육과정이 창의력 신장을 위한 통합교과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새로운 학문적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전국적으로 모든 대학에서 3학기 동안 양질의 교양교육을 실시하려면 새로운 교수 충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재 6만명이 넘는 비정규직 교수들을 정규적 국가교수로 전환하고, 이후 국가박사제를 도입해 박사학위의 질을 높여나가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이를 위해 초기에는 3천억 원 정도, 필요 정원을 다 채울 경우 8천억 원 정도의 예산이 추가된다. 사립대를 국공립대로 전환하고 고교와 대학에서 무상교육을 실현해가는 데에는 10조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될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예산이 아까워서 새로운 백년지대계를 세우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ㆍ미학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과 미래교육준비단장을 지냈다. 1992년부터 계간 <문화/과학> 편집인을, 올해부터 한국문화연구학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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