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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사다”…흙과 쇠 그리고 휴머니즘
“나는 동사다”…흙과 쇠 그리고 휴머니즘
  • 윤범모 경원대·회화과
  • 승인 2011.09.0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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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_ 8년만의 임옥상 개인전

8년만에 임옥상이 돌아왔다. 그는 흙을 주제와 재료로 활용했다. 흙판 위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 얼굴을 새겨넣은「흙 살」(작품 위)과 쇠를 이용해 제작한「나도 부처, 너도 예수」(작품 아래) 모두‘공존’의 메시지를 던진다. 윤범모 교수는“이번 개인전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고 작가의 의욕이 지나치게 넘쳐 혼란스러웠을지라도 관객에게 미술을 보는 재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라고 평가한다.
임옥상이 8년만에 개인전을 개최했다. 장소는 서울 가나아트센터 전관이고(8. 26 ~ 9 .18), 전시 제목은 ‘마스터 피스: 물, 불, 철, 살, 흙’, 그것도‘임옥상의 토탈 아트’라 명명했다. 마스터 피스, 모처럼 역동적이면서도 목소리가 강한 이색 전시이다. 토탈 아트, 그렇다, 토탈 아트. 흙, 철, 물과 같은 재료를 활용한 50여 점의 작품은 토탈 아트였고, 이는 관객에게 기를 듬뿍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역시 임옥상, 이는 작가의 저력을 확인케 하는 현장이었다.

토탈 아트 그리고 사라질 준비

임옥상은 말한다. “나는 동사다. 형용사, 부사가 아니다. 예술은 수식어로 인식되고 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무엇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고 예술은 주인공도 아니다. 즉 명사가 아니다. 명사는 개념이다. 개념은 화석이다. 예술은 가장 역동적인 동사의 역할을 해야 한다.”예술은 동사여야 한다. ‘사랑’이 아니라,‘사랑하다’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술은 화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임옥상 예술세계의 본령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에 참가한 이래 그의 예술관이자 인생관이다.예술은 화석이 아니다. 상당수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미술관에서 영구 보존되기를 바란다. 마치 화석처럼.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성주괴공의 진리, 예술작품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일까. 임옥상은 또 이렇게 말한다.

“그 시대에 수용되지 않으면 밖에 놔두는 거죠 뭐.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가게 돼 있잖아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끝까지 소멸되지 않겠다는,죽지 않겠다고 나대는 인간들처럼 쇳덩어리,돌덩어리 갖고‘언젠가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라며 고집 부리는 것도 폭력입니다. 쓰러질 준비가 돼 있어야죠. 시대가 받아주지 않으면 기꺼이 사라질 준비를 하는 그런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멸 정신, 사라질 준비, 이처럼 중요한 발언이 어디에 또 있을까. 달리 표현하여 소멸되지 않겠다고 영구성을 획책하는 태도 자체가 폭력이라는 사실, 참으로 쉽지 않은‘선포’이다. 예술은 영원하다라는 신화에의 도전이다. 미술작품의 유일성 신화에 의한 영웅주의의 배격이다. 대부분의 작가는 다음과 같은 표현에 거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예술작품도 소모품이다.

소모품이를 두고 불경스러운 표현이라고 고개를 돌릴 것이다. 미술관에서 거룩하게 영구히 봉안되어야 할 작품을 두고 소모품이라고? 이미지의 신전, 그것은 바로 미술관이다. 그래서 미술관을 공동묘지와 같다고 야유하는지 모른다. 예술작품도 삶을 위한 하나의 소모품이라고 생각할 때, 예술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때문에 우리는 예술작품 앞에서 주눅들 필요가 없다. 예술품은 즐기는 것, 바로 소비하는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도 흙, 너도 쇠’

이번 개인전에서 눈길을 끄는 주제와 재료는 흙이다. 흙은 지구의 살이다. 임옥상은 이 살을 가지고 흥미로운 작품을 제작했다. 흙 혹은 땅을 주제로 작업한 것은 그의 작가경력과 맞물린다. 그만큼 그는 흙/땅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오랜 세월동안 천착해 왔다. 이번 출품작 가운데 눈길을 끄는 작품「흙 살」의 경우도 그렇다. 사각형 상자처럼 생긴 사벽의 토판, 그것은 캔버스이기도 하지만 대지의 가슴이기도 하다. 그 평면에 작가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얼굴을 새겨놓았다.

거기에 등장한 인물들은 뉴스메이커,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거리의 사람들이다. 임옥상 형식의『만인보』다. 바로 우리 시대의 단면이다. 여기서 인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땅을, 대지를, 아니 지구를 들어올려, 화판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니 살아가야할 민초의 진솔한 얼굴을 그린 것이다. 마치 농부가 밭갈이를 하듯 작가는 발언을 대지에 파종을 한 것이다. 흙은 생명의 자궁이자 생명의 무덤이다. 흙을 떠나 어떤 생명체도 온전할 수 없으리라. 흙을 만지고 있는 작가의 항변이다.

임옥상은 일찍이「철기시대」전시를 개최한 바 있다. 쇠의 의미를 환기시킨 작업이다. 그 가운데 충격을 준 작품은 미군의 사격 연습장인 매향리에서 수집한 대포알이나 탄피 같은 살상용 무기 잔해를 모아 만든 입체작업이었다. 거대한 음경의 아메리칸, 그것은 폭력의 상징이기에 충분했다. 선사시대에 있어 쇠는 힘이었고, 바로 권력이었다. 흙과 쇠는 대칭적 속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번 작품 가운데 쇠를 이용한「나도 부처, 너도 예수」(나는 이렇게 제목을 바꾼다. 「나도 흙, 너도 쇠」)는 종교 권력화 시대에 화합과 공존을 의미한다. 쇠가 무기가 되어 내 것만 최고라고 우길 때, 불행은 시작된다.

임옥상은 철판에 쓴 문자 형태를 활용해 입체작업을 제작했다. 그것은 부처의 얼굴이 되기도 하고 주련처럼 문장(책)이 되기도 한다. 「가마솥은 어머니, 어머니는 가마솥」과 같은 작품은 문자들의 숲이 가마솥을 이고 있는 형상이다. 쇠의 숲, 그것의 꼭대기는 모든 것을 익혀내는 솥이 올려져 있다. 「산수」라는 작품은 수묵산수화를 철판으로 만든 것이다. 작가는 일필휘지하듯 겹치는 산을 표현하고, 나무와 숲이 있어야할 자리는 문장으로 대신했다. 작가는 고급 액자 속의 산수에게 해방을 줘 벽면 밖으로 나오게 시도했다. 산수는 그야말로 흙과 물의 결합이다. 이를 전혀 다른 속성의 쇠로 산수를 담았다는 것, 특이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예술은 동사이다

임옥상은 캔버스에 꽃 한송이를 가득 채웠다. 모양도 다양한 꽃송이 안에 작가는 눈, 코, 입, 귀 같은 감각 기관을 그려 넣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하나의 의미되었다라는 말,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꽃이라고 하여 아름다움만 뽐낼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듣고, 보고, 느끼는 행위, 바로 꽃 속에서도 찾을 수 있으리라. 하기야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이 아닌가. 꽃이 아름다운 것은 이같은 생식기능이 있기 때문에 점수가 더 올라가는 것이다. 작가가 물, 불, 철, 흙을 다루면서 마지막 부분에 각별히 꽃 연작으로 마무리한 것, 그 속에 숨은 의도가 있다. 바로 휴머니즘의 현현인 것이다.

전쟁과 갈등의 땅을 꽃밭으로 만들기, 그러기 위해서는 꽃도 나름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 아름답다고 멍하니 세월만 보낼 수 없다. 뭔가 행동을 해야한다. 예술은 명사가 아니다. 예술은 동사이다. 행동하는 것이 아름답다. 꽃은 활활 타오르는 불이 되기도, 격류의 물이 되기도, 칼날과 같은 쇠가 되기도, 모든 것을 품어주는 흙이 되기도 해야 한다. 꽃은 동사이다. 예술은 동사이기 때문이다.

임옥상은 대형 작가다. 무엇보다 그가 다루는 재료는 제한이 없다. 흙을 주물러 그림을 그리고 입체작품을 만든다. 무엇보다 임옥상하면 행동하는 작가, 현실 속의 대형 작가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떠오른다. 그는 민중미술가로 화려하게 등단했지만, 그가 생각하는 민중미술은 인간사회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꽃도 그에게는 민중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인전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고 작가의 의욕이 지나치게 넘쳐 혼란스러웠을지라도 관객으로 하여금 미술을 보는 재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기록할 가치가 있다.

윤범모 경원대·회화과
필자는 동국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지은 책으로는『김복진 연구』등이 있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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