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6:25 (금)
탈냉전의 기로에 선 濟州…누가 평화의 깃발을 처량하게 만드나
탈냉전의 기로에 선 濟州…누가 평화의 깃발을 처량하게 만드나
  • 고성빈 제주대 정치학
  • 승인 2011.09.05 14: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론_ 제주 해군기지 건설 추진을 보며

 21세기 동아시아의 세력판도가 미국과 중국 양대 제국의 대결구도라면 제주도는 불운하게도 경계에 위치한다. 이것이 더욱 심각한 의미로 다가온 것은 근래 제주에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면서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4ㆍ3 사건이래 처음으로 육지의 전투경찰 병력이 시위진압을 위해 바다를 건너 파견되는 초유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2003년 대통령이 4ㆍ3 당시 자행됐던 폭력으로 발생한 모든 희생에 대해 사죄하면서 제주는 한반도의 탈냉전을 알리는 곳이 됐다. 이어서 도민들의 열망에 따라 2005년 한반도의 번영·평화를 위해 정부는 제주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취지는 “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평화정착을 위한 정상외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서”였다. 나아가 2006년에는 특별자치도가 됐다.

 이는 홍콩, 싱가포르와 같이 경쟁력 있는 국제자유도시로 육성하기 위한 기본구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올 가을에는 국제학교가 개교하는데, 이는 2007년부터 제주도와 정부가 함께 추진하고 있는 영어교육도시 조성방안의 첫 번째 결실이다. 이 사업은 외국 유학이나 어학연수로 인한 외화 유출을 막고 교육분야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추진되고 있다. 

   이렇게 제주는 4ㆍ3의 비극이래로 반세기가 지나면서 21세기 국가발전구상을 선도하는 모델지역으로 등장했다. 제주와 본토와의 역사적인 애증관계와 지리적인 고립에서 나오는 독자성은 국가와 지역 간의 탈위계주의적인 발전의 실험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세기가 지향하는 것과 제주도의 발전프로젝트를 비교하면 이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탈냉전과 세계평화의 섬, 탈국가주의와 국제자유도시, 탈중심주의와 지역자치, 세계화 다문화주의가 상응하면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유무형의 발전추세를 보면 제주는 그 동안 동아시아를 지배하던 제국, 식민, 냉전이 조성한 사고와 체제를 극복하는 모범적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약자의 꿈’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탈냉전과 함께 저만치 떠났던 제국은 다시 시대의 파도를 거슬러 제주에게 냉전적 사고로 무장해 적과 대치하는 전초기지로서 식민의 역할을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주의는 다시 돌아와 중앙정부의 권위에 복종하는 속방으로 남아 줄 것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해군기지와 그것이 가져올 경제적 파급효과를 사탕발림으로 내놓으면서 제주의 평화정신과 아름다운 자연을 모욕하고 있다. 제국과 국가주의가 합작해 구축한 해군기지가 있는, 그래서 다른 제국의 직접적인 공격목표로 편입된 지점에서 어떻게 인류의 보편적인 자산인 평화가 확산 될 수 있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 보존될 수 있다는 말인가.

   촘스키 등 내외의 진보적 지식인과 시민들은 “제주도는 러시아, 중국, 일본을 연결하는 동북아 삼각 축에 전략적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르면 한국군의 군사기지는 언제든지 미국에 공여되도록 돼 있다”며 “전략적 군사기지가 설치된다면 미국의 대중국 전진기지로 활용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를 더욱 참담하게 하는 것은 미국 국방부 보고서에 의하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핵심 목적 중 하나는 ‘일본 방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 직면한 중국이 얼마 전에 항공모함을 바다에 띄우며 무력시위를 한 사건은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제국과 국가의 압력에 대해 평화주의로 저항하면서 식민과 냉전의 사고를 청산하려는 제주. 제국과 국가가 나서지 않는 순간에도, 북한에 밀감을 보내며 한반도의  통일에 작은 힘을 보탰다고 즐거워하던 제주인은 순진하고 소박한 ‘동막골’ 사람들이다. 장래에 제국간의 경쟁이 첨예화 되면, 이들의 꿈과 환상의 섬 이어도는 최전방 ‘고지전’으로 초토화되어 한줌의 먼지로 영영 사라질지 모른다.  

   이제 제주가 상징하는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의 실험이 파국을 맞을 위기에 처해 있다. 바람 많은 이곳 ‘세계평화의 섬’에 휘날리는 ‘평화’의 깃발이 어찌 이다지도 처량하게 보이는 것일까.

고성빈 제주대·정치학
런던대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한국과 중국의 동아시아 담론: 상호연관성과 쟁점의 비교 및 평가」 등의 논문이 있다. 현재는 동아시아 지성사를 연구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